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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영상 녹화

by 피라

아침부터 종일 배설하듯 그렇게 글을 싸질러 놓았으니 마음 편히 잘 줄 알았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담대하지 못하다. 나는 옹졸하다. 이런 저런 생각들이 꼬리를 문다.


이참에 지역 시민사회단체들과 벤처기업을 꿈꾸는 청년들, 뜻있는 강사들과 협업해서 단체를 하나 만들까 싶다. 나라장터에 뜨는 교육사업 입찰을 모니터링하는 조직. 질 낮은 사업 진행 등의 이상 징후를 발견하는 AI 감시 시스템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임시로 사람들이 모니터링하는 조직. 뜻있는 강사들이 중심이 되어 그들이 모니터링하고 그들이 그룹별로 네트워킹해서 좋은 교육 프로그램 개발도 하는 하이브리드 조직. 기왕이면 초중고 대학의 모든 외부교육 진행 현황을 공개하는 사이트. 강사 프로필, 프로그램 상세 내용, 그리고 교육 영상까지 녹화해서 모조리 공개하는 사이트. 진정성을 가지고 세바시처럼 교육할 자신 없으면 아예 이 바닥에 발을 못붙이게 만드는 문화를 만드는데 초석이 되는 그런 사이트. 그런 어플. 그런 네트워크 조직. “우리의 세금으로 아이들이 이런 교육을 받고 있습니다!”라는 모토로 학부모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조직. 좋은 강사들이 성장할 수 있게 돕고 그렇지 않은 강사들은 더 적성에 맞는 일을 찾게 도와주는 조직. 더 나아가 공교육, 대학 교육도 모니터링해서 대중에게 공개하는 조직. 그 정도는 해야 교육이 살 것 같다. 자신 없으면 교육계를 떠나고 자신 있으면 미래 세대를 위해 교육에 기여하고. 이 정도 당연한 생각이 꿈처럼 느껴지는 걸 보면 우리 교육은 영 가망이 없는 것 같다.


교육 영상 녹화를 생각하니 옛 추억이 떠오른다. 인크루트. 그때도 인크루트였다.

인크루트랑 아직 계산하지 않은 것이 있는 것 같다.


2009, 2010년 즈음이었다. 취업계의 드림팀이라 소개받던 맴버들. 엘지, 두산, 롯데, 현대 등에서 채용을 했던 전직자들이 모여 제대로된 취업 교육을 하자 의기투합했던 때. 그때 인크루트와 함께 일했다. 취업캠프에 참여한 학생들의 취업률이 놀라울 정도로 높아 최고의 인정을 받던 때. 그때 인크루트에서 말했다. 우리가 진행하는 모든 교육 과정을 녹화하고 싶다고. 하라고 했다. 자신 있었으니까. 몇몇은 나중에 콘텐츠만 쏙 빼먹으면 어떡하냐고 우려하기도 했지만. 녹화하라고 했다. 녹화하고 취준생들에게 도움되면 얼마든지 써먹어라고 했다. 그 정도로 우리는 자신 있었다. 컨텐츠를 따라한다고 우리와 똑같이 할 수 없다는 걸 잘 알았으니까. 수백 시간 넘게 녹화를 떴던 그 영상들이 어떻게 쓰여졌는지 우리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우리 일은 제대로 교육하는 것이고, 그 영상들이 어떻게 쓰여지든 우리 알바 아니었으니. 그때 우리는 그랬다. 그 맴버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사라졌다. 하지만 기억은 사라지지 않았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정리할 것은 정리하고 계산을 좀 해야겠다.

정리할 것이 많다.

하지 않은 일들이 너무 많다.

아니다.

아직 하나도 한 것이 없다.

이제 시작이다.


좋은 게 좋은 것이 아니다. 이제부터는 계산을 좀 하고 살아야겠다.

아니다. 계산으로 접근해야 할 인간인지, 그렇지 않은지 구분해야겠다.

수천명 채용을 하고서도 아직 사람 보는 눈이 이렇게 없다.

자다 벌떡 일어나 또 반성한다.



P.S : 취업 교육에 대해서 이렇게 할 말이 많은데, 그 동안 어떻게 참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병이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수십년 쌓인 이 하고 싶은 말들을 어디에 어떻게 담을지를 복식호흡을 하며 차분히 생각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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