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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을 대하는 마음에 관하여

by 피라

2010년의 일이다. 부산지역 환경단체와 지역신문사(부산일보인지, 국제신문인지), 환경전문가들이 연합해서 환경칼럼란을 만들었다. 필진 5명이 돌아가며 칼럼을 썼다. 나도 한 꼭지를 맡았다. 생활 속 환경문제와 생태철학을 연결시켜 5주에 한 번씩 글을 썼다. 10주쯤 지났을 무렵 일이 터졌다.


2010년 7월 복날 무렵, ’치킨과 월드컵’이란 제목의 환경 칼럼을 썼다. 신문이 발행되자마자 ‘한국가금산업발전협회’라며 ‘문00’ 사무국장이라는 사람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칼럼을 내리고 칼럼 내용에 대해 사과하지 않으면 소송하겠다고 했다. 칼럼의 저자인 나는 사실과 다른 내용의 글을 썼다는 사과, 신문사는 잘못된 글을 올렸으니 사과하고 정정보도하라고 했다.


칼럼을 쓰면서 국회보고자료 일부를 인용했는데, 그게 허위사실이라는 이유였다. 한국가산발전협의회가 어떤 곳인지 알아봤다. 대한민국 음식문화의 산실이었다. 치킨이었다. 국내 치킨 식문화를 돌아가게 하는 닭을 유통하는 곳. 한국 양계산업, 치킨산업을 움직이는 주체들이었다. 하림, 마니커, 등등의 기업들이 연합해 돈을 대주고 만든 이익 단체라 했다. 닭을 키울 때 항생제를 쓴다느니, 말도 안되는 환경에 닭들을 사육하며 동물학대를 한다느니, 치킨은 몸에 좋지 않다느니와 같은 헛소리가 나오지 않게 모니터링을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라 들었다.


그들은 내게 협박했다. 당장 사과하고 꼬리를 내리지 않으면 상상도 못한 일들이 일어날 거라 했다. 몇일 전에는 MBC에서 이마트에서 유통되는 닭에 잔류항생제가 기준치를 넘었다는 보도를 내었는데 자신들이 작업해서 사과보도를 하게 만들었다고 했다. 그런 큰 조직도 자신들에게 꼼짝못하는데 당신 같은 일개 개인이 우리를 버텨낼 수 있겠냐 협박했다. 익숙한 협박과 회유였다. 내가 대기업 다닐 때 산재 처리를 하지 않기 위해서 노동자들에게 말한 수법과 똑같았다. 한 개인이 이렇게 큰 대기업과 싸워 이길 수 있겠는가?


햔국에서 양계농가가 가장 많은 곳이 경남 양산인데, 양계인들 3천명이 내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들고 부산 시청, 신문사, 환경연합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그 시위 기사는 온 나라에 도배가 될 거라 했다. 현대축산신문에는 벌써 나의 인적 사항(이름, 전화번호, 이메일)이 공개되어서 마음껏 유린하는 그들의 먹이감으로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 문제가 되는 국회보고자료의 최초 연구자에게 연락을 했다. 문제가 없다는 회신을 받았다. 친구 변호사에게 연락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소송을 당하면 이길 확율 99%, 내가 먼저 소송을 하면 60% 이상 이기니 소송해오길 기다리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소송에 진다고 해도 내가 쓴 글에 대해 사과할 생각이 없었는데, 이긴다니까 조금 안심이 되었다. 친구는 쫄 필요 없다 했는데 내 심장은 자꾸만 쫄깃쫄깃해졌다.


환경단체와 신문사를 만나 대책회의를 했다. 모두들 자기 살 길만 생각하고 있었다. 원고비 1원도 안 받고 좋은 취지만 보고 시작한 일인데, 조직들은 뒤로 빠지고 참 안타깝지만 나 혼자 알아서 잘해봐라라는 분위기였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신문사와 환경단체는 자기 일 아니라며 꼬리를 내린 것 같다.(외부기고니 신문사와는 상관없고, 환경단체도 자기 일이 아니다. 나만 사건의 당사자가 된 것이다.) 겉으로는 나는 용기있는 척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 말했지만, 속은 후달렸다.


한국에서 치킨 연합 제국과 홀로 맞짱을 뜨야 한다니. 소송에서 이긴다 했지만, 소송이 무서웠다. 법정은 퇴직 후에 외국인 노동자 체불임금 문제 해결한다고 대리인으로 몇 번 들락날락한 것이 다였다. 소송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냥 겁이 났다. 화장실과 법정은 멀리할수록 좋다는 속담이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당당하게 속으로는 덜덜 떨면서 상대가 소송을 하나 안하나 하며 기다렸다. MBC도 KO시킨 곳인데, 간담이 서늘했다. 그때는 나의 첫 책 막바지 작업을 하고 있을 때라 스트레스가 더 심했다. 나와 상대의 갈등이 피크를 찍던 무렵 부산대학교 취업캠프에 갔는데, 식사 메뉴로 커다란 삼계탕이 나왔다. 분명 하림에서 유통된 닭이겠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구멍이 막힌 느낌이 들어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살을 찍어 꾸역꾸역 절반 정도 입에 집어 넣었다. 먹어야 일을 하니까.


부산시청 앞에서 나를 규탄하는 시위를 했다는 소식도 들려왔지만, 버텼다. 시간이 지났다. 15년이 지났지만 난 아직 소송당하지 않았다. 지난 15년 동안 소송에 대한 빌드업을 했다. 이기든 지든 소송이 무서웠는데, 그 두려움이 무엇인지, 소송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요즘 사회는 소송을 밥먹듯이 한다. 미국처럼. 그래야 변호사도 먹고 산다. 일자리 창출. 고용창출이다. 소송을 해야 경제가 산다. GDP가 올라간다. 소송은 현대인이 꼭 알아야 할 생활의 지혜와 같은 것이다. 길가다 서로 어깨가 부딪히면, “이것도 인연인데 게임 한 번 합시다.” 정도의 가벼운 행위로 여겨야 할 것 같다.


15년 전 처음으로 소송에 시달렸을 때 내심 떨렸다. 지금은 즐겁고 설렌다. 상대가 소송을 하든, 내가 하든 상관없고, 상대가 강하고 거대할수록 더 좋다. 이기고 지는 것도 상관없다.(물론 본능적으로 이기는 싸움만 한다.) 내가 많이 바뀌었음을 느낀다. 수많은 판사, 검사, 변호사, 법학교수들을 제자로 둔 친구, 믿음직한 변호사 친구가 있는 탓도 있겠지만, 15년 전과 비교해보면 내가 겁을 상실한 것 같다. 21살때부터의 내 좌우명이 ‘인생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자.‘ ,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였다. 맞다. 니코스카잔차키스. 크레타에 간 이유이기도 하다. 30년 넘는 세월 그렇게 생각하니 어느새 그렇게 되어버린 듯 하다. 소송을 생각하며 진리를 깨닫는다. 뭐든 오래 생각하고 닮으려고 하면 그렇게 된다. 큰바위 얼굴처럼.


2010년 이후로 치킨을 멀리했다. 업계의 대표 기업 ‘하림’을 생각하면 복수심이 타올랐다. 15년 전에 이를 갈며 결심했다. 내가 20년 안에 치킨 소설을 써서 노벨문학상을 받아 너희들을 작살내주마. 분노로 쓰는 글은 결과가 좋지 않다. 아직 소설은 완성되지 않았다.

그렇게 한이 맺힌 기업 하림. 절치부심 복수할 날만을 기다려온 하림에서 몇 년 전 ‘미식‘이라는 브랜드로 프리미엄 라면을 출시했다. 홍보 외주를 맡은 기업의 책임자가 지인인데, 맛이 괜찮다며 그 미식라면을 보내왔었다. 하림이었다. 쓰레기통에 버릴까 불태워버릴까 분쇄기에 갈아버릴까 생각하다가 일주일 뒤쯤 끓여 먹어보았다. 맛있었다. 생각보다 너무 맛있었다. 심지어 건강한 맛이었다. 제대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싫어해도 인정할 건 인정할수밖에 없었다. 그 뒤로도 미식 라면을 몇 번 먹었다. 이 라면이 널리 알려져 많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다는 모순적 바람도 생겼다. 미식이라는 브랜드 제품에 믿음이 확 생겼다. 반했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다른 사람은 다 그래도 나는 이러면 안 되는데… 글을 쓰다보니 교묘하게 기획된 광고글 같다. 누가 하림에 이 글을 보여주고 스토리텔링해서 광고에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도 글써서 돈도 좀 벌고. 소송비 마련하게.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 소송을 두려워하지 말자. 우리는 얼마나 자주 소송한다는 말을 달고 사는가, 그런데도 막상 소송을 한다 생각하면 두렵다. 소송 문화가 바뀌었으면 좋겠다. 가장 좋은 것은 불필요한 소송을 하지 않는 것이고. 그 다음으로 좋은 것은 필요한 소송은 하는 것이다. 소송은 이길수도 질수도 있다. 절대 질 수 없는 소송. 이런 것은 없을 거다. 판사따라 판결이 다를테니. 채용 면접의 면접관처럼. 아무리 매뉴얼, 기준이 있어도 결국 사람이 판단하는 것이다. 사람은 AI가 아니니 항상 같은 판단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판단 조건인 입력값이 다르다. 완벽하게 같은 케이스는 단 하나도 없다.


이번 케이스에 내가 소송을 하려는 이유는 의무감이다. 나도 소송하기 싫다. 바빠서. 하지만 몇 명 보지도 않는 이런 공간에 구체적 사업체를 특정하지 않은 공익 목적의 글을 올렸다해서 도둑이 제발 저리듯 캡쳐해서 허위사실 유포로 문제제기를 하겠다니. 그런 행태가 괘씸하다. 묵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지금 문제삼지 않으면 또 어디선가 저런 행태를 이 사회 곳곳에서 할 것이니까.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하겠다…… 데자뷰를 보는 것 같다.

2010년 가산발전협의회 치킨 사건.

내가 왜 그 말에 급발진했는지 이제 이해가 되는가?


P.S : 그 문제가 되었던 칼럼 검색이 되지 않는다. 그 사건 뒤로 다 내렸나 보다. 나중에 어딘가에 저장된 파일이 있는지 확인해봐야겠다. 대신 다른 칼럼이 보여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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