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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멋진 가을날에

by 피라

지향은 기다림이다. 봄은 기다림의 계절이다. 따뜻함을 기다리고, 꽃을 기다리고, 만물이 피어나길 기다린다. 생명은 지향의 존재다. 봄은 생명의 계절이다. 잠자던 존재들이 깨어나고 쑥, 달래, 머위 같은 봄나물이 올라온다. 인간은 입에 넣을 것을 찾아 들로 산으로 향했다. 봄을 먹은 인간은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린다. 기다림은 살아 있는 것들의 운명이다.


가을은 돌아봄의 계절이다.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타인을 바라봄으로써 나를 돌아본다. 나란 내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스쳤던던 흔적들 속에 머물러 있다. 내 속에 온전한 내가 있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주고받았던 기억들 속에 내가 있다. 추억이라 부르든, 아쉬움이라 부르든, 생각만 해도 아직 설레는 이루지 못한 바람이라 부르든, 말하지 못한, 이루지 못한 꿈이라 부르든, 이루려 했으나 쉬이 포기했던 수줍은 의지라 부르든. 그 기억들 속에 내가 머문다.


추억은 내가 머무는 집이다. 죽음을 맞이하는 자는 말한다.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라고. 집을 나서는 이유는 과거의 추억으로부터 멀어져 미래의 추억을 기약하기 위함이다. 과거만 머물지 않겠다. 미래만 바라보지 않겠다. 현재에 머물며 과거와 미래를 초대하겠다. 과거로부터 미래가 온다. 오늘 미래가 온다. 오늘이 저물면 미래는 과거가 될 것이다.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추억이 미래를 이끌 것이다.


봄에 태어났지만, 가을을 더 좋아한다. 오늘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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