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때 육상부였다. 4학년때인가? 릴레이 시합을 했는데 4주자였던 내가 2명인가를 제치고 일등하는 모습을 보고 육상부를 하라고 했기 때문이다.
대회에 나가면 각 학교의 내노라하는 경쟁자들을 보았다. 특히 토성초등학교 선수들은 몸집이 대학생만하고 보기만 해도 무시무시한 선수들이었다. 우리 학교 동신은 서구에서 맨날 꼴찌 혹은 꼴찌 다음 정도하는 비실비실한 학교였다. 대신초등학교에 강철같은 체력을 가진 선수가 한 명 있었는데 나와 성이 같았다. 중학교에 올라 그 친구와 친해졌다. 시간만 나면 여기저기 먼 동네까지 떠돌며 이야기하며 놀았다. 한 번은 금곡에 학교 소풍을 갔는데, 이 친구가 내게 말했다. “우리 뛰어서 학교까지 가자” 나도 호기롭게 그러자 하고 뛰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도 합세해서 뛰었는데, 나중에는 다 떨어져 나가고 그 친구와 나만 학교에 도착했다. 잘은 모르지만, 2시간쯤 뛴 것 같다. 그때 그 길을 지도검색 해보았다. 대략 25킬로미터 정도 된다.
36살쯤 되어서 그 친구와 오랜만에 만났다. 중고 피아노 일을 한다고 했다. 자기는 피아노가 많다며 한 대 준다고 했다. 그냥 받기는 미안해서 돈을 주고 한 대 샀다. 평생 인연이 없던 피아노. 몇 해 뒤부터 도레미솔라시도를 어설프게 누르기 시작했다. 그때가 2009년 정도였지 싶다. 피아노를 시작한 건 미셀 폴라레프의 그 유명한 ‘누가 할머니를 죽였는가‘를 편곡한 이루마의 ‘When The Love Falls‘를 연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독학으로 공부하다 전공자인 친구 동생에게 배우기도 했다. 피아노 어플을 이용해 틈만 나면 연습을 했다. 악보를 보고 나무늘보의 속도로 어설프게 연주할 정도가 되자, ‘The Whole Nine Yard‘를 배우기 시작했다. 영화 냉정과 열정 사이에 푹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매일 매일 연습하다보니 2015년쯤에는 비슷하게 연주할 수 있었다. 잘 들으면 엉터리인데, 아.. 그 곡이네.. 얼핏 들으면 들을만 한 정도. 몇 년을 그 한 곡을 연주하며 냉정과 열정 사이의 메인 테마에 푹 빠져 살았다.
피아노를 잊고 산 지 10년이 되었다. 2017년 이후 건반에 손을 올려본 기억이 없다. 냉정과 열정 사이 짧은 영상들을 오랫만에 보았다. 다시 그 곡을 연주하고 싶어졌다. 피아노는 자전거가 아닌가보다.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다. 머리도 손도 기억하지 못한다. 어떤 것들은 이렇게 쉽게 잊혀진다.
세월 흐르며 잊어버리는 수많은 것들 속의 결코 잊을 수 없는 것.
사라지지 않는 것. 계속 생각나는 것.
그런 것이 있다면 받아들여야 한다 생각한다.
이제는.
그런 의미에서 ‘The Whole Nine Yard’를 다시 시작해야겠다.
처음부터 다시.
피렌체에 며칠 머물렀다. 두오모에 못 갔다. 가지 않았다. 그 앞을 몇 번 지나쳤는데도 입구 가까이에도 가지 않았다.
언젠가 다시 피렌체에 가게 된다면.
도오모에 오르고 싶다.
기다리는 것이 있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기다릴 것이 없음을 기뻐하기 위해.
https://youtu.be/FF4Pzem4Vic?si=YNPmJMznD_6gw5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