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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다람쥐 Aug 01. 2016

김영란법이 그렇게 유감인가요

김영란법 시행-합헌이 억울한 언론계

지난주 헌법재판소가 김영란법(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합헌이라고 결정하면서 시끌시끌했다. 전직이 기자였던 입장이기에 관심이 갔는데, 주변에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다양한 의견이 오가는 것이 정상적이고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번 사안에서 나는 언론사와 기자들이 억울한 면이 있더라도 시대의 변화에 하루라도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미 국민들에게 비친 언론, 기자는 부정적인 면 투성이다. 그 이미지는 ‘자업자득’이다. 그리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자의 양심에 기대할 단계도 이미 넘었다.


내가 겪었던 기자들이 받는 ‘호사로운 대접’들을 열거해 보겠다. 여기엔 스스로 부끄러운 면도 있고, 뒤늦은 반성이라 나도 욕을 먹는다면 할 수 없겠지만 이것이 현실이니 말을 하겠다.


#1. 난 ‘젖과 꿀이 흐른다’는 산업부에서 주로 기자생활을 했다. 산업부는 대기업, 중소기업과 산업통상자원부, 미래창조과학부 등 소위 ‘돈이 있는’ 출입처를 담당한다. 우선 기업 기자실로 출근하면 홍보실에서 나와 기자들에게 점심 약속 유무를 묻고 약속이 없다고 하면 밥을 사준다. 이것이 익숙해지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만일 점심이 데스크와 함께 잡힌 약속이면 단가는 엄청 올라가 고급 음식점에서 식사대접을 받는다. 저녁에는 각종 술자리 대접도 종종 받는다. 단가는 김영란법을 적용한다면 모두 처벌을 받을 정도였다.


정부부처 기자실로 출근하면 점심 시간에 25인승 승합차가 로비 앞에 대기하고 있고, 기자들은 그 차를 타고 한 음식점에 가서 정부부처 고위공무원과 함께 식사를 한다.


#2. 언론사는 각종 출장 비용도 기업으로부터 지원을 받는다. 국내출장은 당일치기 코스라면 고급 음식점 혹은 고급 호텔에서 점심식사를 대접받고, 전세버스 혹은 항공권을 지원받아 출장을 다녀온다. 1박2일 코스의 출장이라면 첫 날 대부분의 취재일정을 마치고, 보도 시점은 엠바고를 걸어 둔다. 이후 저녁에 고급 음식점 혹은 리조트에서 식사를 대접받고 거나한 술도 마신다. 숙박은 고급호텔 혹은 리조트다. 이튿날은 노는날이다. 사례를 하나 들자면 4년 전 제주도 출장을 가기 전 업체에서 나에게 세 가지 선택지를 줬다. 골프, 올레길 탐방, 스포츠마사지. 이 중 자신이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면 그 일정대로 진행하고 오후에 서울로 비행기를 타고 복귀하는 것이었다.(숙박비, 교통비, 식사비는 모두 기업에서 부담)


해외출장은 비행기편은 기업이, 숙박비는 언론사가 부담한다.(비용 전부를 기업이 대고 기자들을 데려가는 경우도 꽤 있다) 일정은 엄청난 기사를 써야하는 출장도 간혹 있지만, 거의 논다고 보면 된다. 특히 건설, 중공업, 금융쪽은 유럽 혹은 북미쪽 출장이라면 기자들이 서로 가고 싶어 안달이다. 취재 일정은 많지 않고, 나머지 시간에 관광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전자회사들은 해외 행사가 있으면 서로 몇 개 매체씩 비용을 부담할지 미리 협의를 한다. 자동차 회사들은 국내와 수입차 업체가 다르다. 국내 업체는 대부분의 매체를 데려가고, 수입차 업체들은 매체를 선별해서 해외모터쇼 등에 기자들을 데려간다.


예전에 부동산 담당이었을 때 출입기자단 오찬이 있었다. 그 때 간사 선배가 자리에 동석한 건설회사 전무에게 우리는 해외출장 안 가냐고 건의했고, 이후 약 6개월 뒤 유럽 출장이 잡혔다. 사실 취재는 구색맞추기에 불과했다.


#3. 데스크급 기자들은 주말마다 기업 홍보담당자들과 골프를 친다. 수단은 골프지만 목적은 협찬기사 및 광고를 기업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물론 골프 비용은 대부분 기업이 부담한다.


기자들 중에 골프 좋아하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다. 국내 출장에서 이튿날 골프 일정이 많은 이유다. 출장 때 개인 골프백도 챙겨가는 기자들 꽤 많다.


많은 사례들 중에서 생각나는 것만 추려봤다. 올 초에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출장에 수많은 기자들이 취재를 갔다. 그 당시 기사를 유심히 본다면 모 업체 미국 현지 사무소 취재 기사가 모든 매체에서 일괄적으로 나온 것을 찾아볼 수 있다. 해당 회사에서 비용을 대서 취재를 간 것이다. 기업에서 비용을 대서 현지 취재를 갔는데 비판적인 내용의 기사를 당신이라면 쉽게 쓸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기자가 직접 촌지를 받는 경우는 현재 거의 없다. 하지만 이렇게 각종 비용을 지원받고, 밥과 술을 얻어먹는 상황에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기사를 쓸 수 있을까? 비판기사를 쓰든 안 쓰든 이런 고민이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영세 매체 기자들은 국내든 해외든 출장을 가야하는 취재는 이제 어려울 것이고, 재정적 여유가 되는 언론사 기자들은 회사로부터 지원을 받아 계속 취재가 이뤄지면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고 우려한다.(아직 기업의 출장비 지원 문제는 법에 저촉되는지를 두고 이견이 많다)


또 ‘기자의 양심에 맡겨야지 이런 것까지 법으로 강제할 필요가 있냐’고 말하는 기자들도 있다.(헌법재판소의 합헌 결정 이후 기자협회가 발표한 내용은 말할 가치도 없다. 나도 기자협회에 돈을 내던 회원이었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성명을 낸 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미 한국 언론계는 문제가 심각하다. 자정노력 자체를 하지 않을 뿐더러 ‘구악기자’들이 아직까지도 넘쳐나는 상황인데 과연 무엇을 기대하겠는가. 부서 회식 자리에 대기업 홍보팀을 불러 돈을 내라고 하고, 월말만 되면 데스크들이 기업 홍보 담당 임원들에게 전화해서 협찬기사와 광고를 요구하고, 기업에서 곤란하다고 하면 ‘조지는 기사’를 쓰는 판국에 양심을 기대할 수도 없다.


물론 대부분의 기자들은 억울할 것이다. 자기 자신은 그렇게 나쁜 물이 들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기가 발을 들인 곳이 문제가 있는 데 고치지 않는다면 나중에 공멸 할수도 있다. 변화의 타이밍을 놓친다면 그 후의 사태는 예상하기 어렵다. 그리고 나 자신도 그것에 익숙해지며 내가 대접을 받는 모든 것들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크다.


사실 기자라는 직업은 참 매력적인 직업이다. 우선 각종 사회 부조리와 부정적인 관행 등 문제들을 글 혹은 영상으로 고발하며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다. 국민들이 언론에게 기대하는 ‘사회 각 부문에 대한 비판’이라는 기대에 부응하는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간접적인 경험도 할 수 있다. 각종 사건 사고의 피해자, 정부나 공공기관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분들, 억울하지만 호소를 할 곳이 언론밖에 없는 분들, 그리고 취업준비생과 실업자, 서민, 중산층, 고소득층, 각 기업의 신입사원부터 회장, 정부부처 장차관 등 인생을 살면서 쉽게 만날 수 없는 다양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듣고 그것을 전달해 주는 사람이 기자다.


그런데 국민들이 기자를 바라보는 시각은 어떤가? 부정적인 면 일색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알 수 있다. 기자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는 올 초 개봉했던 영화 ‘스포트라이트’ 외에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기자들은 주로 극중에서 특종을 발굴하기 위해 남을 속이거나 당사자 몰래 불법적인 방법으로 정보를 빼내고(물론 현실성은 좀 떨어지지만), 앞뒤를 가리지 않는 사람으로 묘사된다. 영화 ‘내부자들’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다룬 영화 '빅쇼트'에서는 금융위기 징조를 감지한 전문가 친구가 월스트리스트저널에 있는 기자 친구에게 이를 제보하지만 그 친구는 '내가 이 업계 사람들이랑 인맥을 다지느라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냐. 너의 확실하지 정보를 믿고 기사를 쓸 순 없다'며 기사쓰기를 거절한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김영란법 때문에 취재활동이 위축되고 표적수사를 당해 언론의 자유를 침해받을 수 있다고 하는 주장은 이래서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하는 것이다. 대외적인 이미지가 이지경이 되도록 언론사주, 임원, 데스크, 선배(현재는 기자를 그만뒀지만 나를 포함해서)들은 무엇을 했나. 본인 스스로도 달콤함, 편안함에 물들지는 않았나.


그런 면에서 나도 반성한다. 익숙함에 안주하다가 몇몇 사건을 계기로 나도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부장에게 들이받고, 편집국장에게 큰 소리 친 적도 있다.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다. 남을 비판하는 언론사가 자신들의 문제에 대해선 ‘관행’이라며 관대했다. 자신에게 관대한 조직이 남을 비판하다니…그러니 더는 언론사들은 억울하더라도 우는 소리 하지 말고 법을 지키길 바란다. 그것이 자신들이 ‘기레기’라고 불리는 현실을 바꿀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다. 대접을 잘 받아야만 특종이 나오는 건 아니지 않은가.


사족1) 김영란법 합헌 결정 이후 일부 기자와 홍보담당자들 사이에 언쟁이 있었다고 한다. 익명성에 기대 서로를 헐뜯고 잘 됐다며 난리도 아닌가 보다. 날도 더운데 서로 열내지 말고 평화롭게 지냅시다. 그렇게 싸워서 얻을 것도 없고 서로의 이미지만 갉아 먹어요.


사족2) 기업들의 출장비 지원을 놓고 말이 많다. 이견이 있으나 만일 돈을 지원받는 것이 위법이 아니라면 최소한 기사에 '이 기사는 00기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를 했습니다'라는 문구 정도는 적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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