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판할 자격 없는 언론사의 내부 문제들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 맞는 말이지만 그 먼지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법에 위배된 것이 아니라면 큰 흠결은 아니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기자와 언론사에 종사하는 언론인이라면 달라야 한다. 행동 하나하나 조심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다. 남을 비판하는 게 일인 언론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사람이 수두룩 하지만 어쨌든 통칭해서)과 언론사들은 사실 내부적으로 문제가 심각하다. 개인부터 시작해 시스템 자체도 대대적인 개선을 해야 하지만 그렇게 실행에 옮기는 회사는 국내에 거의 없다. 극히 일부 회사는 있지만.
1년 동안 나오는 기사들을 보면 한국 기업, 공무원 조직, 정부 조직 등의 권위적인 사내 문화와 소통이 안 되는 조직 시스템, 능력 없는 리더들로 인한 성과 저하, 인재 유출, 관료제의 폐해 등등의 내용이 담긴 기사가 주기적으로 나온다. 최근 몇 년 동안은 세대 갈등이라는 것까지 끼어들며 문제가 심각하다는 내용의 기사가 많다.
그렇다면 그러한 기사를 쏟아내는 언론사들은 내부적으로 본인들이 지적한 문제들이 없거나, 있다면 적극적으로 개선하려는 의지가 있느냐. 거의 없다는 것이 실상이라고 본다.
한국의 제조업 기업들은 아직까지도 군대와 같은 서열문화, 상사들의 권위적인 태도가 많이 남아있다고 지적받는다. 그러나 그러한 지적을 하는 언론사도 매한가지다.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1. 수습기자들을 가장 먼저 훈련시킨다는 명목으로 몇 달 동안 보내는 ‘마와리’. 한국의 대다수 중앙 언론사들은 수습기자들을 사회부 사건팀에 배정해 일정 기간(회사마다 차이가 있음) 시경 출입을 시킨다. 이 기간 동안 수습기자들은 하루에 잠은 2~3시간 정도밖에 못 잔다. 시간마다 자기 ‘라인’에 있는 경찰서와 소방서, 병원 등등을 돌며 어떤 사건들이 접수됐는지 자기 사수에게 보고를 해야 하기 때문.
이 과정에서 사수는 수습기자가 보고를 미흡하게 하거나 ‘기삿거리’를 못 물어 왔다며 욕설을 퍼붓는다. 당신이 상상하는 바로 그런 욕들이다. 이때 수습기자의 인격은 없다. 이런 식으로 몇 달 동안 생활을 하다 보면 수습기자는 정신적으로 상당히 피폐해진다.
그리고 이 수습기자들이 시간이 흘러 사수가 되면 이런 과정은 대부분 대물림된다. 도대체 왜 욕을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고, 그냥 자기도 그렇게 당했으니 그냥 욕을 하는 사람이 꽤 많다. 물론 그 와중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인식’ 있는 기자들도 있지만. 현재도 한국에선 이 ‘마와리’라는 제도를 수습기자 훈련 명목으로 진행 중이다. 수습기자들의 인격을 존중하는 문화는 거의 없다.
개인적으로 시대가 바뀌었고, 꼭 이 과정이 필요 없는 출입처도 많은데 왜 개선하려 하지 않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
#2. 한 언론사의 산업부장. 여느 때와 달리 얼굴이 싱글벙글하다. 부서에 기자들도 부족하고 해야 할 일도 산더미지만 웬일인지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하다. 출입처에서 ‘구악’이라며 온갖 욕을 먹고 있는 그이지만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웃고만 있다. 왜 웃는지 이유를 물어보니 “어떤 회사에서 신차가 나왔는데 그걸 싸게 샀다. 내가 데스크여서 할인을 받아서 살 수 있었다.”(참고로 이 사건은 김영란법 시행 전에 있었던 일이라고 함.)
이렇게 대놓고 얘기를 하고 부서원들에게 무시당하기 일쑤인 이 데스크. 정상적인 회사라면 불만이 제기될 때 이런 인물을 인사 조치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이 언론사는 이 데스크를 재신임했고, 현재도 이 데스크는 재직 중이다. 그 사이 평기자들은 분노하고 있고, 일부는 떠나고 있다.
#3. 모 언론사에서 부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기획기사와 창간 기념 기사, 기타 다른 발제 계획 등 여러 가지 논의사항이 여느 때와 같이 언급됐다. 그런데 한 기자가 작정한 듯 발언을 이어갔다.
“난 그 기사를 쓸 수 없다. 왜 매번 일을 이렇게 해야 하나. 아무리 회사 이익과 연관된 일이라도 해도 이미 몇 년 전 혹은 몇 달 전에 다른 언론사에서 지적받은 내용을 또 써야 하나. 난 기자다. 사회적으로 봤을 때 그 회사가 지적받을 만한 문제를 저질렀으면 당연히 보도해야 한다. 하지만 이렇게 우리 회사 사주가 그 회사와 관계에서 안 좋은 일이 있었다고 해서 억지로 말도 안 되는 비판 보도를 하라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이 말을 들은 데스크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이 ‘미션’을 다른 기자에게 넘겼다. 이후 이 보도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어 보도가 안 됐지만 이 회사는 ‘돈을 얻어내려고 기업을 까는’ 곳이라는 이미지만 각인됐다.
#4. “우리 회사는 노조 설립은 불가하다.”
기업들의 임단협 시즌이 되거나 일부 대기업의 비인격적인 희망퇴직 과정, 부당 해고 등 언론들은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한다는 기사를 때만 되면 출고한다. 그러나 정작 그 기사를 쓰는 기자들 중 상당수는 노조가 없는 회사에 다니고 있다. 국내에 등록된 언론사 중 노조가 없는 회사는 생각보다 많다.(나도 그런 회사를 다녔다.)
심지어 사주와 편집국장이 운동권 출신이지만 정작 본인들이 높은 위치에 올라가니 밑에 직원들이 그렇게 하는 걸 용납하지 않는 회사도 있다.
언론사 기자들이 노동자(혹은 근로자)로서 제대로 된 보호를 받지 못하는데, 기자들에게 다른 기업들의 노동자 권리 침해 행위를 비판하는 기사를 쓰라니. 해당 기자는 기사를 쓰면서 어떤 생각을 하겠나.
노조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노조가 없는 회사를 다녀본 입장에서 노조가 없으면 부당한 인사조치나 이해할 수 없는 회사의 경영방식에 대해 항의를 하려고 해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불이익은 언제나 힘없는 평기자들의 몫이다.
이런 일들이 실제로 자행되고 있는데 자신들은 과연 남을 비판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나. 일부 개인의 문제이든 조직 시스템의 문제이든 고치려는 의지가 없는 언론사가 아이러니하게도 남을 비판하는 건 비웃음을 사기 충분하다.
누가 ‘유체이탈 화법’을 쓴다고 욕하기 전에 본인들부터 돌아보길 바란다. 앞서 언급한 일들이 있었던 회사들의 퇴사율이 높은 이유는 분명하지 않을까. 비정상적인 일들이 일상화된 회사를 다니고 싶은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기자들은 밖에서 '기자'로서 대우를 받는 것보다 회사 내에서 '기자'로서 대우를 받길 원한다. 그리고 그것이 맞는 길일 것이다.
-사족 : 한 언론사에서 3년 연속 적자라며 기자들과의 연봉 협상에서 어쩔 수 없이 동결해야겠다고 기자들에게 '통보'했다. 기자들은 대부분 한숨을 쉬고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선택권이 없으니 받아들였다. 그런데 며칠 후.
이 회사 경영에 책임이 있는 편집국장은 오히려 승진을 했다. 그리고 차량까지 지급받았다.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이 회사는 아직도 이 사람에 의해서 굴러가고 있다. '언론'이라는 우산 안에서 자기의 후배들의 사기는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의 밥그릇만 챙기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개탄스러울 뿐이다.
총책임자인 사장의 진두지휘 아래 기자들의 자존감을 높여주면서 기자로서의 소명의식도 일깨워주고, 언론의 순기능을 이어가며, 적절한 리더십까지 보여주고 있는 모 언론사와 참으로 대비되는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