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이후 처음으로 나에게 주어진 자유시간도 9개월째. 그 사이 나에겐 다양한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좋은 점은 일단 혈색이 좋아졌다는 것이다. 건강도 점점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고, 비정상적이었던 회사 상사들로부터 스트레스도 안 받으니 당연히 좋아지고 있다. 원치 않는 술자리에도 가지 않아도 되니 정말 좋다.
나쁜 점은 불확실한 미래로 인한 불안감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젠가는 일을 다시 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지만, 취업 혹은 재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들 모두 알겠지만 이 불안감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이보다 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기검열’이 점점 심해진다는 점이다.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단이 이토록 다양한 세상인데, 각자의 개성도 다양한 세상인데, 어떤 사안을 두고 점점 표현을 하는데 망설여진다. 자기검열이 분명 나쁜 것만은 아니지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고 글을 쓰며 먹고 살 생각을 하고 있는 입장에서 이건 좀 심각해 보인다.
위키백과에 ‘자기검열(自己檢閱)’은 self-censorship, 아무도 강제하지 않지만 위협을 피할 목적 또는 타인의 감정이 상하지 않게 할 목적으로 자기 자신의 표현을 스스로 검열하는 행위라고 나온다.
이 뜻을 보더라도 자기검열의 순기능은 분명히 존재한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불편함과 불필요한 다툼을 피하고 원만한 관계 형성을 위해선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기 전에 적절한 자기검열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생활을 하는 인간에겐 사회에서 혹은 상호 간에 용인될 수 있는 행동을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도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그리고 그 지나침이 현재 나에게 닥쳤다. 어떤 말을 하거나 글을 쓸 때 자꾸 주저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하려고 했던 말을 안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글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 노트북엔 브런치에 올리려고 했다가 올리지 않은 글들이 쌓여있다. 글을 잘 쓰고 못 쓰고를 떠나 그냥 이걸 많은 이에게 공개한다는 것이 자꾸 꺼려진다.
내가 봤을 때 공개하지 않거나 지워버린 글의 내용이 사회적 지탄을 받거나 문제가 될만한 것은 없다. 내 주장이나 생각을 썼던 글이 대부분이고, 소재들도 그리 큰 문제가 될 것도 없다.
사실 기자생활을 할 때만 해도 이런 경우는 거의 없었다. 회사의 이해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기사는 일단 썼다. 데스킹 과정에서 걸러지는 한이 있어도 일단 썼다. 책임질 각오로.
그러나 요즘은 스스로 ‘이걸 써도 되나’ ‘내가 뭐 얼마나 대단하다고 이런 글을 쓰나’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그렇다 보니 요즘은 사람을 만나도 말도 줄고, 쓰는 글도 줄었다. 지금 쓰는 글도 전직을 위해 썼던 자기소개서나 경력기술서를 제외하곤 거의 한 달여 만에 쓰는 것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국 지금의 증상은 자신감과 자존감의 부족이 컸던 것 같다. 쉬면서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하고, 이력서도 쓰고 하지만 9개월째 쉬면서 나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줄었다. 이전까지 내가 이뤘었던 나름의 성과들은 이제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냥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작아 보이기만 한다.
나 나름대로의 강점이 있고, 삶을 살아가는 나름대로의 기준도 있어서 그것을 지키고 발전시키며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속사정을 모르는 제3자가 보기엔 경력도 화려하지 않은 그냥 지금은 일 안 하는 사람일 뿐일 테니 그런 생각이 커졌다.
서점을 가면 베스트셀러에는 자존감과 관련된 내용의 책들이 참 많다. 자신감과는 다른 자존감.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상당히 중요하지만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참 가슴이 아프다.
자기검열이 심각해서 생각의 꼬리를 물다 보니 결국 자존감의 결핍이라는 것에 도달했다. 나름 원인을 찾았으니 생각을 고쳐먹으려고 애를 쓰고 있다. 다시 지난 2월, 앞날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지만 나를 한낱 도구로 생각하며 상처를 줬던 회사와 싸우다 사표를 냈던 그 시기에 있었던 나름의 자신감과 용기를 갖기 위해 노력 중이다.
보다 더 자유롭게 생각하고, 당당하게 표현하고, 자신감 있는 삶을 살기 위해 힘을 좀 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