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998년 6월. 대한민국과 네덜란드의 98 프랑스월드컵 조별리그 2차전 경기가 펼쳐졌던 새벽. 당시 중학교 1학년이었던 한 소년은 가족들이 모두 잠든 그 시간에 홀로 텔레비전 앞에 앉아 그 경기를 시청했다. 결과는 0-5 대패. 결과에속상했던 소년은 눈물을 흘렸다. 이 경기로 이후 차범근 한국 대표팀 감독은 쫓겨나듯이 경질됐고, 그 해에도 월드컵 16강 진출은 무산됐다.
#2. 2005년 11월 수능시험 이틀 전날. 자신의 세 번째 수능을 이틀 앞두고 있던 21살의 청년은 자기 책상의 스탠드 불빛만이 환하던 독서실에 앉아 흐느꼈다. 세번씩이나 수능시험을 치르며 부모님에게 미안했던 감정, 재수는 친한 친구와 함께 버텨냈지만 군 입대 날짜까지연기하며 택한 삼수는 온전히 홀로 힘든 시간을 견뎌내야 했던 감정, '이번엔 정말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겹쳤다. 고3 때수능시험 후 재수를 결정했다고 담임 선생님에게 말한 뒤 그에게 ‘너가 재수해봐야 성공할 수 있을 것같냐?’는 답을 듣고 분노를 참았던 감정도 떠올랐다. 이런복합적인 감정에 이 청년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3. 2007년 4월 3일. 청년은 힘들게들어간 대학에서 즐거운 1학년 새내기 시절을 보낸 후 남들보다 늦게 군대에 입대했다. 아직은 쌀쌀한 바람이 불었던 강원도 춘천 102 보충대. 먹는 둥 마는 둥 했던 점심을 먹고 102 보충대 돌계단에 앉아있던 청년은 입영 대상자들은 내려오라는 말에 발걸음을 옮겼다. 영영 안 돌아올 것도 아니지만 눈에선눈물이 흘렀다. 이 모습을 보면 더 걱정할 엄마와 가족들에게 그러고 싶지 않아서 뒤를 돌아보지는 않았다.
#4. 2011년 9월 말. 중학생 때부터 줄곧 기자가 꿈이었던 청년은 비록 유력 언론사는아니었지만 당시에는 잘 크고 있었던 모 신문사에 입사 합격 통지 전화를 받았다. 이 소식을 전하고자청년은 엄마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엄마는 그동안 걱정했던 감정이 북받쳐 올랐던 지전화기를 대고 흐느꼈다. 그 흐느낌을 들은 청년은 드디어 꿈을 이루게 됐으니 정말 좋은 기자가 되자고다시 한번 다짐했다.
#5. 2016년 1월 8일 금요일. 기자로서만 4년, 5년 차를 맞이한 청년은 그간 갖은 우여곡절을겪으며 세 번째 회사에 재직 중이었다. 자동차 담당 기자를 하며 이 청년은 후배와 호흡도 더 좋아지고올 한 해 쓰고 싶은 기획기사를 구상하던 중 회사의 인사 조치 메일을 받았다. 청년은 갑작스럽게 부서를옮기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짐작 가는 바는 있었지만 물증이 없으니 나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차라리일을 못한다고 했으면 모르겠으나 그런 말도 없고, 그냥 회사에서 방을 붙였으니 그에 따르란다. 청년은 이미 첫 번째 회사에서도 비슷한 인사 조치를 받은 바 있다. 비슷한일을 회사를 옮겨서도 겪게 되니 멘탈이 무너졌다. 기자들은 인사이동이 빈번하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아무런근거도 없는 인사는 정말 아니다 싶었다.
황당함과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에서 시간이 흘렀다. 착잡한 마음에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다 억울한 감정에 또 한 번 눈물이 나왔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사내 정치엔 소질이 없어서 그런 것도 안 했다. 그렇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기자로서 정말 한 단계 발전하는 모습을보이고 싶다는 다짐이 물거품이 됐다는 마음에 또 한 번 감정이 북받쳤다. 이후 그는 회사와 지루한 싸움을벌이다 2016년 2월 말,결국 기자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며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지난 32년의 인생에서지금까지도 선명한 눈물의 기억은 이렇게 다섯 번이다. 눈물은 기쁜 순간에도 흐른다고는 하지만 나는 그랬던적은 거의 없었다.
지금도 나보다 더 힘든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나란 사람의인생은 별로 어려운 것이 아닐 수 있다. 힘듦은 항상 상대적이지 않나.하지만 내 나름대로는 나이에 비해 꽤 실패도 많았고, 억울한 경험도 많았다. 이 글에 모두 나열할 수 없는 어려움을 많이 겪어서 이런 생각이 생겼다.
2016년. 연초부터 회사에서 힘든 시간을 두 달 보낸 후 방황의 시간이 이어졌다. 그간여행도 다녀오고, 한 달 내내 아파서 집에만 있기도 했고, 폭염에지치기도 했다. 집에 사놓고 읽지 않았던 책을 읽고, 다시한번 더 읽었다. 대학 졸업 후 공부를 거의 하지 못했던 분야의 공부도 했다. 그 사이 향후 인생 방향은 수없이 수정됐다. 실패도 또 겪었다.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내가 재밌고, 내 능력에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방황의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덧 12월이 됐다.
2017년을 1달 남긴 이 시점에서 이런 기억이 떠오른 건 왜일까. 연말이 되면서올 한 해를 정리하며 자연스럽게 과거의 기억이 떠오른 것도 있겠고,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던 내가 향후 진로에 대한 명확한 결정을 내려서인지도 모르겠다. 이제어두웠던 과거는 털고 새로운 삶을 살겠다는 다짐을 하다 보니 이런 기억이 떠오른지도 모른다.
전체적으로 올 한 해 내 감정이 우울했다. 여행을 하거나, 좋은 사람들을 만난 시간은 즐거웠지만 대부분은 어두웠던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내 나이 32살. 많다면 많고, 적다면 적겠지만 나름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고, 도전도 멈추지 않고 계속 할 것이니 결국 빛을 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한동안 염세주의자와 같은 생각을 갖기도 했지만, 이젠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