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9일. 우리 세대는 이 나라의 부조리에 맞서 승리를 처음 경험했다. 전 국민의 80% 이상이 찬성했던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 이로써 지난 2012년 12월 대선에서 51.6%의 지지율로 당선된 박근혜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심판이 남았지만 일단 큰 고비를 넘은 것이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찬성 234표, 반대 56표, 기권 2표, 무효 7표로 압도적 가결됐다. 헌법을 어긴 대통령의 탄핵안이 가결돼서 속이 시원한 감정이 든다. 다만 한편에선 좋지 않은 역사가 또 한 페이지에 기록됐다는 점에서는 씁쓸하기도 하다.
사실 국민들은 탄핵안 통과를 바랐지만 내심 불안했다. 혹시 부결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에 모두 긴장했다. 6번의 대규모 촛불집회에서 이런 열망을 표출했지만 우리의 대표자로 뽑은 국회에선 ‘정치적 계산’이 난무하며 가결이 확실치 않다는 기류가 포착된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국민들은 그런 국회의 행태에 더욱 큰 촛불 열기로 채찍질을 했고, 결국 국민들이 바라는 대로 압도적 탄핵안 가결이 이뤄졌다.
우리 세대에게는 이번 탄핵안 가결이 이 나라의 부조리에 맞서 싸워 거둔 사실상 첫 번째 승리다. 부모님 세대는 더한 압력에도 사회 정의를 바라며 맞서 싸웠고 결국 여러 차례 승리의 경험을 했다.
우리 세대는 그런 승리의 경험이 없었다. ‘헬조선’으로 대표되는 이 시대의 어려움 속에서 우리는 별다른 목소리를 낼 기회조차 없었다. 먹고사는 일부터 시작해 힘든 시기에 각종 사회 부조리에 목소리를 내는 것조차 사치였다. 목소리를 낸다고 하더라도 ‘어린놈들이 무얼 아냐’는 식의 ‘꼰대’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로부터 지적을 당하기 일쑤였다. 결국 소셜 미디어만이 우리들의 해우소와 같은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세대와 계층을 가리지 않고 분노했다. 참담함을 참지 못하고 우리는 광장에 나갔다. 그리고 그 어떤 시위보다도 평화적으로 우리의 의견을 표출했다. 집회 참가자 수는 계속 늘어났다. 눈과 비, 추운 날씨도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헌법을 유린하고 민주주의를 무시한 자들에게 법의 심판을 바랐다.
12년 전인 2004년 봄. 나는 당시 20살의 재수생이었다. 당시엔 스마트폰도 없었기에 mp3 플레이어로 라디오를 들으며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됐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후 헌법재판소 심판 결과 각하 결정이 있었다. 당시엔 많은 국민들이 탄핵안 통과에 반대했다. 그럼에도 국회는 탄핵안을 가결시켰고, 결국 그 해 열린 총선에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에게 다수당의 지위를 부여했다. ‘탄핵 역풍’이 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너무나 명확한 증거와 증인들의 진술, 조사하면 할수록 끝을 알 수 없는 무능력과 반복되는 거짓말, 국정농단 사례에 참담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대통령이 계속 국정을 운영하는 것을 더 이상 허용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국민들의 열망 속에 탄핵안은 압도적으로 가결됐다. 국민이 이긴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는
1.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고 돼 있다.
국민을 무시하면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른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정치인들이 뼈저리게 느꼈기를 바란다. 더 이상 국민들은 가만히 보고만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족) 오늘은 다소 정치적인 글이다. 시국이 시국인 만큼 오늘의 느낌을 기록하고자 이런 글을 썼다. 양해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