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스타트업 기업들은 구직자에 대한 예의가 없다
퇴사를 한 지도 16개월이 지났다. 생각보다 쉬는 기간이 길어졌다. 그동안 수십 곳의 기업에 이력서를 제출했고, 그중 1/4 가량의 기업에서 면접을 봤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엿볼 수 있었다. 오늘은 그동안 지원했던 기업들 중 최근 주목받고 있는 스타트업들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이 글은 전적으로 구직자 입장에서 쓴다는 점을 이해해주길 바란다.)
정확하게 헤아리지는 않았지만 대략 20곳 정도의 스타트업에 이력서를 냈다. 그중 절반 가량의 기업에서 면접을 봤다. 면접 결과가 좋았던 곳도, 그렇지 않았던 곳도 있었다.
스타트업에 지원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한 명이 여러 가지 일을 처리해야 하는 점이 좋았기 때문이다. 나는 기자만 해봤지 기업 '실무'를 직접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짧은 시간 동안 다양한 업무를 처리하고, 직접 결정할 수 있는 폭이 넓은 스타트업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나는 개인적으로 스타트업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좋은 기업을 설립해 일자리도 늘리고, 기업도 성장한다면 사회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겉만 화려하고 속은 그렇지 않은 곳도 많았다. 내가 해당 기업의 깊숙한 면을 알 수는 없었지만, 겉모습만 보고도 문제가 있다면 ‘그 기업은 위험요소를 너무 안일하게 처리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렇지 않게 채용공고를 내린다
가장 기분이 좋지 않았던 사례는 채용공고를 아무런 공지도 없이 취소한 경우다. 자신들이 내걸었던 채용공고를 아무 말 없이 슬그머니 내리고, 이미 지원한 사람들에게 한 달 넘게 아무런 연락을 해주지 않은 것이다.
스타트업들은 대부분 ‘수시모집’ 혹은 ‘상시 모집’의 형태로 채용을 진행한다. 사업의 성장 여부에 따라 사람을 조금씩 늘려나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은 직원 한 명 한 명의 역할이 중요하기에 채용과정에 더욱 신중을 기한다.
사람을 뽑는 작업은 정말 중요하다. 누구나 아는 진리다. 그런데 신중하게 결정했어야 할 채용과정을 하루아침에 아무런 공지도 없이 취소하고 당사자들에게 아무런 연락을 취하지 않은 건 구직자들을 무시한 처사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기업 입장에서 사소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채용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해 놓고, 이를 갑자기 취소하는 모습은 해당 기업이 체계적인 계획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경영되고 있다는 생각을 강하게 들게 만든다.(더욱 황당했던 점은 이력서를 보내기 전 직접 인사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 채용이 진행 중이라는 답장을 받았고, 그가 이력서를 보내달라고 했던 것이다.)
이력서를 보낸 지 한 달여 정도 지난 뒤에도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항의성 메일을 보냈다. 해당 기업에서는 담당 부서 매니저가 변경되며 채용이 홀딩됐고, 결국 채용공고도 내려갔다는 답변이 왔다.
이 기업은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금융 스타트업이었다. 최근에는 상당한 금액의 투자금도 유치하고, 사업도 성장세가 지속되고 있다면서 좋은 점들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항의성 메일을 보낸 뒤에야 상황 파악을 하며 사과를 하는 경우를 보니 해당 기업에 대해 더욱 좋지 않은 이미지만 갖게 됐다. 구직자들도 해당 기업에 채용이 되든 안 되든 ‘잠재적 소비자’라는 점을 망각한 기업이었다.
스타트업이니 그럴 수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은 경영진과 실무진의 마인드 문제이고, 기업 시스템의 문제다. 조직이 작은 현재도 채용과 관련된 사안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간다면 그 기업이 더 크고 난 뒤에 발생하는 문제들을 어떻게 대할지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기업의 위기는 늘 사소한 것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유념했으면 좋겠다.
채용과정에서 합격, 불합격 여부는 반드시 통보를 해줘야 한다. 그래야 구직자들도 빨리 정리하고 다른 기업들에 지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례는 하나였지만, 이에 해당되는 기업이 생각보다 너무 많다.
연락은 돼야 하는 것 아닙니까
채용공고를 보고 기업에 문의를 하는 경우는 구직자라면 종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스타트업들 중에서 회사와 연락이 거의 되지 않는 곳들이 꽤 됐다. 아무런 연락처 고지가 안 된 곳도 있었고, 홈페이지에 대표 메일 주소나 전화번호가 있어도 연락을 시도하면 답이 없는 곳이 생각보다 많았다.
지금까지 채용공고에 대해 궁금한 점도 있고 공고도 오래전에 올라와 현재 진행 여부를 물어보기 위해 연락을 시도한 적이 수차례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도 오지 않고 있는 곳이 있다.(작년 가을쯤 메일을 보낸 곳도 있다.) 너무 연락이 안 돼 메일을 잘못 보냈나 재확인까지 한 경우도 많았다. 일단 연락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고, 답도 최대한 빠르게 해주길 부탁한다.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볼 곳이 있어야 하지 않나. 큰돈이 드는 일도 아니고 이건 기업의 정성 문제라고 본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은 어디에서나 진리로 통한다. 어떤 사람을 뽑느냐에 따라 그 조직이 흥할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아무리 일자리가 없어 구직자들이 ‘을’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 시대라고 하더라도, 기업도 상식 선에서 구직자를 대했으면 한다. 특히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스타트업이라면 더욱 그랬으면 좋겠다. 기업에 대한 이미지는 아주 사소한 것에서 갈릴 수 있다.
채용은 회사가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구직자도 회사를 선택하는 과정이다. 서로 상대방이 어떤지 알아보며 최종 결정을 하는 것인데 이를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는 회사도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부디 불합격이라고 하더라도 구직자들에게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줬으면 한다. 언제까지 '스타트업이니 부족한 부분이 많다. 시행착오로 봐달라'라고 말할 것인가.
**사족) 지난 수개월 동안 정말 괜찮은 스타트업 종사자분들도 많이 만났다. 비록 입사까지 이뤄지진 않았지만 채용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간의 예의를 지켰던 경우도 많았다. 이번 글은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는 그분들까지 포함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글을 쓴 목적은 경영의 abc도 제대로 못하면서 포장만 그럴듯하게 하는 스타트업들을 비판하고 싶어서다. 겉으로는 업계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높은 자리에 영입하고, 거액의 투자금을 받았다며 좋은 이미지만을 홍보하고, 성장률을 홍보하며 승승장구하는 것처럼 포장한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내부 커뮤니케이션도 제대로 되지 않고, 기업 경영에서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채용과정마저도 원활하게 처리하지 못하는 등 부정적인 요소들을 감추기에 급급한 모습은 기존의 문제가 있는 기업들의 행태와 하나도 다를 게 없다.
위에서 언급했던 사례에 해당되는 기업들은 지금도 SNS나 미디어를 통해 자신들의 성장세 홍보에만 혈안이 돼 있다. 대부분 설립된 지 5년도 안 된 기업들이다. 그들은 아직 험한 고비를 제대로 겪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채용과 관련된 문제들을 단지 ‘시행착오’라는 이름으로 대충 넘어간다면 기업이 성장하며 내실을 채울 수 있을까.
정말 열심히 일하고 있는 대다수의 스타트업들까지도 욕을 먹게 만드는 경우는 만들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