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016년 1월. A 언론사 강당에는 편집국장부터 시작해 각 부서 부장들이 사주 앞에서 열띤 프리젠테이션을 하고 있었다. 내용은 '올해 어떤 기획기사를 쓰겠다, 어떻게 기자들을 교육시켜 콘텐츠의 질을 높이겠다'와 같은 '상식'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프리젠테이션은 '올해 우리가 출입처를 상대로 광고와 협찬 기사를 얼마까지 따내겠다'고 보고하는 내용이었다. 요즘 언론사 부장들은 영업도 함께 한다고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연초부터 기사와 관련된 것이 아닌, 회사 수익을 위한 보고만 열심히 준비한 것이다. 이 프리젠테이션 때문에 취재기자들의 기사 발제 점검과 '데스킹'은 뒷전으로 밀렸다.(기사를 올린 그대로 '즉시 출고'되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2. 2015년 가을. B 언론사에서는 '단독' 기사가 나왔다. 다수의 피해자들이 피해사실을 여러 취재기자에게 제보했고, 이 기자는 심층 취재 끝에 기사를 출고했다. 이후 피해자들이 취재기자에게 연락해 추가 제보를 계속했고, 후속기사가 몇 개 나갔다. 그런데 이 기사는 현재 인터넷에서 검색할 수 없다. 사건 당사자인 C모씨가 언론사를 방문해 편집국장과 해당 부서 부장과 면담을 했고, 이후 별다른 이유 없이 기사가 삭제됐기 때문이다. 기사는 오보도 아니었고, 법적으로도 전혀 문제가 없었는데도 말이다. 해당 취재기자는 허탈했고, 화가 났지만 회사는 '회사를 위한 결정'이라는 말만 할 뿐 기사 삭제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은 없었다. 그 사이 다른 언론사에서 '단독'이라는 제목을 달고 같은 내용의 기사가 나왔다.(기사 삭제 후 C모씨는 구속됐다.)
#3. D 언론사에서 E 기업과 정부부처에 대한 비판기사를 썼다. 완전히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으나 해당 기업 입장에서는 구설수에 오르는 것 자체가 뼈아픈 상황이었기에 기사가 나간 뒤 홍보팀장은 곧바로 D 언론사를 직접 찾았다. 해당 홍보팀장은 편집국장과 간단히 대화를 나눴고, 이후 기사는 인터넷에서 삭제됐다.(삭제 이유는 우리가 예측 가능한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이 사례들은 실제 일어났던 것들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기사 삭제는 빈번하고, 언론사 내부에선 비정상적인 일들이 자주 일어난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회사들 내부의 각 부서를 책임지는 사람들은 이에 대한 불만을 표하거나 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것이 '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고, 윗선에 싫은 소리를 했다가 자신만 피해를 볼 것 같으니 그런 것이다.
전 세계 어느 조직에든 '돌아이'는 있다. 그리고 상사에게 아부를 하고, 사내정치를 기막히게 잘 해서 승승장구하는 사람들도 많다. 동료를 괴롭히거나 남의 성과를 마치 자기가 한 것처럼 포장하는 인간들도 부지기수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들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 때문에 회사 실적이 점차 나빠지거나 회사에 대한 평판이 급격히 악화될 수도 있다. 또 내부 인재들이 다른 회사로 빠져나가는 결과도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각 부서의 책임자들과 회사를 이끄는 경영진이 이런 문제 자체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당장의 회사 수익이 늘어난다면 어쩔 수 없는 것이라 여기는 행태다. 만일 회사에 폐를 끼치는 사람이 조직원들의 의사를 취합해 판단하고, 이를 윗선에 보고하고 결정하는 단계에 위치해 있다면, 결과는 불 보듯 뻔하다.
이는 조직을 이끄는 이들이 조직을 책임질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하며 당장의 성과에만 집중하는 것이 밑에 깔려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장기적으로 정말 '회사의 발전'과 후배들의 실력 향상을 생각한다면 이 같은 행동들은 절대 할 수가 없다.
때로는 경영 활동과 관련해 정상적인 의사결정을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를 바로 파악해 고치려는 노력을 한다면 회사가 입는 피해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 언론사에서 이런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언론사에 집중해서 본다면, 이 같은 행태는 현장에 나가 있는 취재기자들에게 박탈감과 허무함을 느끼게 만든다. 열정을 갖고 열심히 취재한 결과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점차 '개인 브랜드'화 되는 기자들에겐 득이 될 것이 하나도 없다. 여기에 회사(언론사)에서 기자들의 복지 확충과 콘텐츠 발전 방안을 모색하기보다 수익 창출에만 집중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기자들의 허탈감은 배가될 것이 분명하다.
자신들의 안위와 당장의 회사 수익을 위해 비정상적 행태를 일삼으면서 후배 기자들에게 '네가 좀 이해해', '어쩔 수 없는 거였어', '너도 나중에 차장 되고 부장 되면 내 마음 이해할 거야'라는 말을 하는 것은 이제 일반적이다. 도대체 무엇을 이해하라는 건지는 아직까지도 난 잘 모르겠다.
맨 처음 언급한 사례들에 나온 언론사들은 현재 인력난을 겪고 있다. 데스크와 저 연차 기자들 사이에서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 5~10년 차 기자들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수습기자마저도 그만두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 회사 경영진과 편집국장, 각 부서 부장들은 느긋하다. 어차피 사람이야 또 뽑으면 되는 거니깐 문제 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최근 모 언론사 기자는 "자기 부서원이 그만두든 말든 부장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요즘에는 출입처로부터 협찬 기사를 많이 받아 자기 인센티브가 늘었다고 얼굴에 웃음들이 끊이질 않는다. 출입기자를 닦달해서 따낸 실적을 자기만 가져가 놓고선 과실은 본인이 다 먹고 있다"고 전했다.
상황이 이러니 기사의 질은 읽지 않아도 얼마나 떨어져 있을지 알 수가 있다. 이 조직들에 속해 있는 취재기자들이 힘들게 취재해 쓴 기사들을 최종적으로 수정해서 출고해야 할 데스크들의 마음이 다른 곳에 가 있으니 콘텐츠의 질이 향상될 리가 없다.
내일은 보지 않고, 당장의 성과에만 매몰된 언론사. 그들에겐 미래가 없다. 지금 달콤한 과실을 맛보고 있다고 해서 웃을 때가 아니다. 지금 이미 가라앉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