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중요한 프로젝트가 끝나고 회식 자리가 마련 되었습니다. 한껏 기분도 내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은 마음에 기대하고 갔는데, 갑자기 팀장님이 분위기를 썌하게 만드는 한 마디를 날립니다.
“오늘 메뉴는 삼겹살에 쏘주로 통일하지”
소고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항정살이나 껍데기 정도는 먹고 싶은데, 쏘맥 한잔 정도는 말아 먹어야 회식인데, 선택권을 박탈 당하는 순간 회식을 시작하기도 전에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앞섭니다.
비슷한 일은 보고 상황에서도 벌어집니다. 문제 상황에 한 가지 해결책을 고민해서 가져가면 상사 입장에서는 선택권이 없다고 생각하며 보고를 받을 기분이 나지 않습니다. 이내 머리속이 복잡해 지며 ‘이게 최선이야? 다른 방법은 없어?’ 하고 대놓고 물어보며 보고 내용을 전면으로 부정할 수 있습니다. 또는, ‘좀 더 고민해 보자’ 와 같은 말로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일의 진행 속도를 느리게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상사들이 원망스럽고, ‘그럴꺼면 당신이 생각해 보든가?’ ‘일을 또 뭉게고 있네’, ‘의사결정 속도가 느리네’ 라고 불만을 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의사결정권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
상사는 의사결정자이므로, 선택지가 많을수록 자신이 결정권을 행사할 여지가 커집니다. 하나의 해결책만 제시하면, 마치 직원이 결론을 이미 정해놓은 것처럼 느껴져 자신의 권위가 위협(?) 받는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2) 조직 내 협의를 원활하게 할 수 있기 때문
상사는 타 부서, 실무진, 고객사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와 협의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해결책만 제시하면 논의가 원활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상사 역시 윗선에 보고하고 설득해야 하는데, 한 가지 대안만으로는 설득력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3) 위험 분산 및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
한 가지 해결책은 실패 시 대안이 없지만, 복수의 해결책이 있으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어 안심이 됩니다. 책임지는 자리에서는 늘 Plan B를 고민하기 마련입니다.
이런 상사들의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고, 가능하다면 2~3개로 복수의 대안을 제안해서 상사가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때, 각각의 대안에 대한 특성을 비교 분석해서 제시하면 좋은데, 직접 비교법과 가중치 비교법을 주로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팀 워크숍을 진행해야 하는데, 사내 회의 장소가 모두 사용이 불가능한 문제 상황에서 보고하는 장면을 가정해 보겠습니다.
“팀장님. 현재 사내 회의실은 모두 예약이 완료된 상태입니다. 어쩔 수 없이 외부 회의 장소를 대여해야 하는데요, 제가 몇 가지 대안을 준비해 봤습니다.”
[직접 비교법]
[가중치 비교법]
이때 중요한 것은 단순히 선택지만 늘어놓고, 결정은 상사에게 미뤄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상사를 선택 피로 상황으로 몰아가지 말고, 마지막에 살포시 내 선택이나 의견을 더해서 보고해야 합니다.
“외부 장소 A와 B를 검토해 봤는데, 제가 생각했을 때 워크숍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다소 비용이 발생하더라도 A가 좀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몰론, 이때 팀장님이 내 의견을 꺾고, 비용을 최소화 하기 위해 B로 결정해도 상관없습니다. 비록 내 의견은 수용되지 않았지만, 팀장님이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거까지가 보고자의 임무이니까요. 또한, 보고 과정에서 나의 정보 수집력과 문제 해결력을 보여준 것만으로 충분히 가치 있는 보고였다고 생각합니다.
상대방에게 선택지를 제공하는 것은 보고 스킬의 일종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관계를 윤택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친구랑 중국 집에 점심을 먹으러 가서, ‘나 짜장 먹을꺼니까 너는 짬뽕 먹어!’ 라고 말하는 친구가 있다면 다시는 그 친구와 밥을 먹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어디 경건한 점심 메뉴 앞에 선택을 강요하는 걸까요? 대신 이렇게 말해 보면 어떨까요?
“나는 짜장면 먹을껀데. 넌 뭐 먹을꺼야? 이집 굴짬뽕이랑 볶음밥이 맛있는데, 굴을 통영에서 직접 공수 받는데. 굴짬뽕 괜찮다고 하더라. 굴짬뽕 먹을래?”
보고의 순간, 좀 더 고민해서 다양한 선택지를 마련하고 상사에게 선택권을 넘겨주는 것은 어떨까요? 보고의 질도 올라가고 상사와의 관계도 윤택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 참고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