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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Feb 06. 2024

발등에 불똥이 떨어져야만..

아시안컵 조별리그 2차전. 대한민국 : 요르단. 1 : 2 상황에서 후반전 추가시간 요르단 자책골로 2 : 2 동점. 경기 종료.
조별리그 3차전 대한민국 : 말레이시아 2 : 2 상황에서 94분 손흥민 득점 3 : 2. 후반 105분 말레이시아 득점 3 : 3. 경기 종료.
16강전. 대한민국 : 사우디아라비아 0 : 1. 후반 99분에 대한민국 동점골로 1 : 1. 승부차기 끝에 승리. 경기 종료.
8강. 대한민국 : 호주. 0 : 1 상황에서 후반 96분 대한민국 동점골. 연장 전반 추가골로 2 : 1 역전승. 경기 종료.


정말이지 소설도 이렇게 쓰면 욕을 바가지로 먹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기가 막힌 전개로 대한민국이 아시안컵 4강에 진출했다. 다른 반응과 평가는 각설하고, ‘대한민국 축구는 90분부터 진짜다.’ ‘그때부터 봐야 한다.’는 웃픈 말과 더불어 그야말로 ‘좀비 축구다’라는 평이 돌아다니고 있다. 매 경기를 본 나도 심히 공감한다. 경기 초반과 휴식 시간이 끝난 직후에 특히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이다가 꼭 지기 직전, 경기 종료 직전에서야 미친듯한 경기력을 보이고, 불굴의 투지로 패배에서 벗어난다. 그냥 경기 초반부터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럼 이토록 힘든 일정으로 경기를 치르지 않아도 될 텐데 도대체 왜 그러는 걸까 의문이다. ‘당연히’ 나보다 잘하고, 누구보다 절실한 마음으로 모든 선수가 경기에 임할 것이 분명하겠지만. 지극히 평범한 축구 팬으로서 보자면 조금 아쉽고, 의아스럽지 않을 수 없다. 너무나도 지독히 고군분투하는 선수들을 이 참 안쓰럽게도 느껴진다.


아무튼 아시안컵을 보다가 문득 나를 투영해 이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왜 나는 발등에 불똥이 떨어질 때에야 비로소 유달리 기적 같은 힘을 발휘해 본인의 200%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걸까. 그냥 평소에 100%만 잘 해내도 충분히 좋은 성취를 하며 조급해하지 않고 평안히 살 텐데. 도대체 왜 평소에는 그렇게 뭉그적거리다가 일이 코 앞에 닥친 후에야 발악하듯이 일을 해치우는 걸까.’

이에 대한 답을 심리학에서 찾아보면 완벽주의 성향 때문이라고 한다. 어느 정도 동의는 한다. 그런데 넉넉한 시간이 있을 때는 조금씩, 한 걸음씩만 내디뎌도 여유 있게 일련의 과제를 해낼 수 있을 텐데 그런 때에도 하염없이 뭉그적거린다. 그런데 또 막상 그렇게 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면 이상하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과 마주할 때가 생각보다 많다. 브런치에 쓰는 글만 봐도 긴 시간 내내 무엇보다 고민하고, 정성 들인 글들보다 마감 직전(보통 하루 이틀)에 휘갈기 듯 쓴 글에서 더 큰 만족감을 느끼는 때가 더 많다. 정말 적어도 나는 발등에 불똥이 떨어져야만 뭔가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작사가나 작곡가의 작품 후일담을 들어봐도 비슷한 경우가 있다. 그들이 말하길 히트한 곡들의 특이한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짧은 시간에 일필휘지로 써냈다는 것이다. 오히려 몇 개월간 외진 곳에서 독수공방 하며 골몰해서 쓴 곡보다 화장실에서 20분 만에 써버린 곡이나 비 오는 날 술 마시다가 번뜩이는 영감으로 단숨에 스케치한 곡들이 메가 히트곡이 됐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름 위안이 된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초고는 쓰레기라고 하면서 수십 번 넘게 퇴고를 거듭하기로 유명한 헤밍웨이의 입장도 떠오른다. 물론 나 역시 번뜩이는 어떤 생각으로 초고를 그렇게 휘갈기 듯 쓰고 나서 나름의 퇴고 과정을 거치기는 한다. 하여튼 나는 아마도 전자를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번뜩이는 무언가가 없는 상태에서는 도무지 어떠한 글도 써지지 않는다.


아무튼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어찌 되었든 누구는 기적이라고도 부를 일인 아시안컵 4강에 진출한 것이 무척이나 자랑스럽고 기쁜 일이지만, 솔직히 ‘왜 90 이후에서야, 그토록 진에 빠지는 시간이 돼서야 최선을 다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플레이를 하는 걸까.’하는 답답함과 아쉬움 때문이었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 역시 그런 태도로 일련의 과제를 대하고 있다는 자각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나에 대한 답답함 때문이다. 앞으로 꾸준히 글을 쓰려면 이런 방식을 고쳐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싶은 의문도 든다. 하루키처럼 정직하게 루틴을 지키며 하루의 몫을 해내는 성실성을 가져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만, 도통 안 써지는 걸 어찌하란 말인가.


이제 몇 시간 후면 아시안컵 4강이다. 이번에는 제발 가슴 졸이는 경기 대신 시원한 승리를 우리 대표팀이 해주길 바라본다. 나는 이제 아시안컵에 대한 어떠한 평가에도 개의치 않고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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