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제주 이민'이 핫 키워드가 되고 있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제주로의 이주를 꿈꾸고 있다는 것일텐데, 이주가 아니더라도 한 달 살기, 두 달 살기처럼 제주에서 살아보는 것이 연령을 불문하고 사람들의 로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서점에는 제주살기에 관한 다양한 책들이 소개되어 제주살이를 부추기고 있으며, 많은 아티스트와 뮤지션, 그리고 셀럽들의 제주 이주 소식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제주로 이주해서 살고 있어요.
서울 나들이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면 그들은 언제나 "멋지다"와 "대단하다"로 화답한다.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훌륭한 문화생활을 하는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전할 때도 "넌 제주에 살잖아"라는 대답을 듣는다. 뮤지컬 대작도 내한공연도 즐기기 어려운 제주생활이지만 그래도 답답하지 않다. '그래, 난 이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는 제주에 살고 있어'
하지만 감수하기 어려운 것이 하나 있으니, '이별'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주해오지만 또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되돌아가는 곳이기 때문이다.
제주는 가끔 그리고 자주 낯선 섬이 되어버린다.
마음을 주었던 사람들이 떠나갈 때가 특히 그렇다.
비슷한 또래에 비슷한 고민을 하며,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제주로 온 이들과는 금세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툭 꺼내놓을 수 있게 된다. 나와 비슷한 고민과 생각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들어주고 이끌어주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제주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밀도 높은 사이가 되어버린다. 그렇게 내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되었는데 어느 날 훌쩍 떠난단다.
회사에서, 승마장에서, 서핑 후 옹기종기 모여 앉은 바닷가에서, 우연히 가게 된 술자리에서 만난 인연들은 만났을 때와 같이 갑자기 떠나간다.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말이다.
처음엔 게스트하우스에서 스탭만 해도 행복했었지만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일자리가 없어서 생활이 어렵단다. 백만 원을 벌어도 내 시간이 있는 삶을 찾아왔지만 어렵게 일자리를 구하고 봤더니 그래도 급여가 너무 적단다. 시골이라 자급 자족하며 살 줄 알았는데 제주의 물가는 서울 시내와 크게 다르지 않다. 한눈 가득 들어오는 제주의 하늘이 좋았지만, 우중충한 날들이 보름 넘게 계속되는 겨울이나 고사리 장마기간에는 그 하늘이 너무나 우울해서 견디지 못하겠다고 한다. 사람에게 지쳐서 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친구와 술 한잔 하고 싶을 때 쉽게 불러낼 사람이 없어서 떠난다고 한다. 품을 내어줬다고 생각했던 제주 사람인데 그냥 생판 남이었구나 싶어서 상처를 받고 돌아간다고 한다. 마치 남녀 간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처럼 한때는 이것 때문에 좋아졌던 것들이 이것 때문에 싫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별을 품고 있다가 불쑥불쑥 내어놓는 제주가 밉다.
그 날도 그랬다. 같은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다가 비슷한 시기에 제주에 정착한 그였다. 각자의 일로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막연히 의지가 되는 친구였다.
한 달 남짓 지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친해진 친구들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미리 크리스마스 파티를 위해 제주에 왔다. 그렇게 즐겁게 파티를 준비하던 중에 알게 되었다. 일주일 후에 육지로 되돌아 간다고 한다.
조금 더 일찍 알려주지 이렇게 차를 보낼 배까지 다 예약하고 통보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조금 더 길어진다고 그 슬픔이 줄어드는 건 아니라도 괜히 섭섭해진다.
제주의 바닷바람과 어울리는 시원한 생맥주, 그리움이 샘솟게 하는 장작 냄새, 예쁜 밤바다와 밤하늘 가득 총총히 박힌 별들...
제주 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육지로 돌아가는 친구와의 마지막 밤을 기억하기 위한 준비물이다.
이별을 위한 준비물마저도 이렇게나 사랑스러운 제주인데, 그래도 떠나지 말지...
하나 둘 떠날 때마다 내 마음 한구석을 떼어간다.
워낙 방어기제가 잘 작용하는 나이기에 사람을 만날 때 두렵다. 이 사람도 곧 떠날 사람은 아닐까 싶어서.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제주 사람들은 오죽하겠나 싶다. 육지에서 왔다고 하면 경계를 하는 그네들의 마음도 조금 헤아려 보기 시작한다.
이별 후에는 언제나 만남이 찾아오기 마련이다. 또 다른 이별을 내어놓기 전까지 열심히 함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