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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돌아 다시 브런치

#애 다섯 #홈스쿨링 #천주교 #결국 #글쓰기

by 인아

돌고 돌아 다시 브런치.


돌아왔다. 마지막 글을 쓴 지도 1년 반이 훌쩍 지나있었다. 오늘도 역시나 도망치듯 달려 나와 동네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친구를 만나거나 술을 마시거나 운동을 하거나 쇼핑을 할 수도 있겠지만 돌고 돌아 결국 내가 아는 익숙하고도 가장 가성비 좋은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일기장에 글을 끄적이기도 했었으나 결국 온라인에 흔적을 남겨야 무언가라도 남았다. 종이 조각들은 결국 흩어지고 사라졌다. 자칭 나는 아날로그 인간이라 종이에 쓰고 종이에 쓰인 글을 읽는 것을 좋아했었는데, 몇 번의 이사 끝에 책은 짐이 되었고, 종이는 버려졌다. 손에 만져지지도 않는 이 가상의 공간 안에 마음을 담아 흘려보내는 것이 결국 오래, 오래 남더라. 하지만 마음의 토악질 흔적을 오래 남겨두어 좋을 것은 또 무엇인가 그건 잘 모르겠다. 몇 해가 지난 브런치의 내 글을 보니 아 이때만 해도 나는 어렸구나 하고 부끄러워지는 무언가가 있는 걸 보면 그 사이에 무언가 조금 성숙했거나 조금은 익어가고 있으리라. 떫은맛이 서서히 내 안에서 사라지길 종국엔 어떠한 평온함에 더 다다르길 기원해 보는 것이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길고 긴 내용을 줄이자면 나는 그 사이에 다섯째를 가졌고, 아이 넷을 데리고 홈스쿨링을 하며 공인중개사로 일하고 있다. 이 대화 내용 끝에 가족과 친구들에게 받는 질문 몇 가지에 답을 해보겠다.


Q. 다섯째는 계획한 아이인가?

A. 넷째까지는 계획한 시기에 잘 안 생겨서 기도하고 기다려서 생긴 아이였다. 다섯째는 서프라이즈 선물같이 받았다. 물론 아이 넷은 너무 예쁘지만 내가 이제 마흔이라, 기도를 하며 "주님 혹시라도 생명을 또 보내주실 계획을 갖고 계시거든 모든 출산은 마흔 전에, 이왕 주시려거든 건강하고 예쁜 딸로 보내주세요." 했는데, 기도 그대로 돼버렸다. 만으로 마흔 3주 전이 다섯째 예정일이다. 넷째랑 1년 반정도 차이가 난다.


Q. 그래서 딸인가?

A. 딸이다. 우리 첫째 딸이 여동생이라는 것을 알고 탄식 섞인 감탄을 내뱉었다. "Finally!(드디어!)" 맏딸과 막내딸이다.


Q. 다섯째가 막내인가?

A. 우선 우리 계획은 그렇다. 그전엔 주시는 대로 기쁘게 받겠다고 했었고 출산 육아에 대한 미련도 많았는데, 이제 다섯째쯤 되니 아 이제 낳을 만큼 낳은 것 같기도 하고... 무엇보다 다섯째가 성인이 되면 내가 환갑이 되는데, 그 이상을 넘기면 체력적으로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전히 천주교의 가르침에 따라 인위적인 피임은 하지 않을 것이며 생명에 열려있겠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사실 이걸 쓰면서도 손이 떨리긴 한다.


Q. 홈스쿨링은 왜 시작했는가?

A. 우리 성당에 주임 신부님이 셋째를 데리고 매일 성체조배와 미사를 오는 나를 부르시더니, 첫째 둘째는 어디가 있느냐 물어보셔서, '각각 공립과 천주교 사립에 보내고 있습니다.' 했더니 혹시 성당에 홈스쿨링 협동조합 엄마들을 만나보고 싶은지 물어보셨다. 처음엔 관심도 없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라고 생각해서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첫째 첫 영성체 준비반 교리 교사 하시는 엄마가 한 번 코업(협동조합) 수업 열리는 날 구경을 와보라고 초대했다. 그곳에 가는 게 아니었다. 그곳의 문이 열리는 순간 너무 눈이 부셔서 제대로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하고 밝고 따스한 빛을 느껴 결국 소명에 답을 하듯, '네'하고 답하고 말았다. 그 길로 2년째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Q. 애들을 집에 다 데리고 있는가? 집에서 하루 종일 뭐 하고 있냐? 너 몸은 괜찮냐?

A. 다 데리고 있다. 첫째는 3학년, 둘째는 1학년, 셋째는 pre-K 넷째는 한 살이다. 씨튼 홈스터디의 커리큘럼을 구매하여 집에서 주로 오전 시간에 홈스쿨링 공부를 한다. 둘째는 작년에 Kinder와 1학년 커리큘럼을 다 끝내서 나이보다 한 학년 빨리 2학년 과정을 공부 중이다. 매일 아침 9시 미사에 다녀와서 10시부터 1시 정도까지 홈스쿨링 전 과목 공부를 끝내고 오후에는 주로 매일 다른 액티비티를 한다. 숲 속에 같이 나가기도 하고, 농장을 방문하거나, 박물관을 가기도 하고, 동물원도 가끔 간다. 거의 매주 동네 도서관에 가거나, 놀이터에 가기도 하고, 실내 체육관이나 스케이트장이나 자전거를 타러 가기도 한다. 매 달 다른 주제 수업을 하여 계절과 주제에 맞는 야외 활동을 하려고 한다. 몸은 뭐... 잘 먹고 잘 자려고 노력 중이다. 밤에 애들 다 재우고 나면 자는 것이 그렇게 아깝다. 생산적으로 뭘 하지도 못하면서 안 자는 나와 사투를 벌이다 잔다.


Q. 홈스쿨링은 그럼 앞으로 20년 하는 것인가?

A. 모른다. 매일 그만둘까 말까 생각한다. 8세 미만 아이 다섯과 24시간이라니 당연히 힘들고 화나고 매일 나 스스로의 한계에 부딪히고 허덕인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지는 줄 알았는데 아직까진 전혀 그렇지 않다. 기도하면서 매일의 구름 기둥과 불기둥을 따라가고 있을 뿐이다. 20년 후에 어디서 뭘 하고 있을지 나는 모르겠다. 매일의 몫을 바쳐드리는 것, 그것으로 족하다. 오늘만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넷째 이름도 '오늘'로 지었다. 오늘 하루도 당신께 바쳐드립니다. 나는 너무 부족한데, 그 부족함을 아버지께서 메꿔주시길 기도할 뿐이다.


Q. 일은 어떻게 하는가?

A. 작년 한 해, 홈스쿨링을 시작하고 넷째가 태어난 후 1년 정도 아이들 재우고 아니면 신랑과 나눠서 시간을 썼는데 늘 시간이 부족하여 허덕였다. 그러다 한 달 전쯤 처음 베이비 시터를 구해서 집에서 틈틈이 누나 형아 공부할 때 어린 동생들을 봐주고, 일을 해야 할 때 잠깐씩 아이들을 돌봐주는 도움을 받기 시작했는데 신시계가 열렸다.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신랑과 함께 공인중개사로 일을 하고 있다. 엄마로서의 내 모습 말고, 치열하게 일하고 공부하는 자아 성취가 중요한 내 모습 그 자체도 내게 너무 중요한 한 부분이라는 것을 작년 한 해 동안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인생 실험 중이다. 일해서 돈도 벌고 나누고 공부도 하고 매일 미사도 가고 홈스쿨링도 하고 애도 많이 낳고 잘 노는 이 모든 모습이 나라는 것을 존중해 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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