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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터C 최혜진 Aug 25. 2015

[그림책 처방] 나는 왜 저들처럼 못할까

숀 탠 <빨간 나무>



to 에디터C


자꾸만 비교가 됩니다

이십 대 후반의 일러스트레이터입니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일이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습니다. 그래도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빠듯하게나마 밥벌이를 하고 있다는 데서 위안을 느끼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같은 업계에서 일하는 재능 많은 친구를 볼 때 한없는 좌절감을 느낍니다. 왜 나는 저런 생각을 못했을까? 저런 세련된 감각이 왜 내게는 없을까? 재능이 부족하면 성실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왜 난 이것 밖에 못 할까? 내면에서 자책하는 목소리가 자동 재생됩니다. 그런 날엔 '이래서 앞으로 좋은 작업 기회를 잡을 수 있을까. 계속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생각이 이어져 다잡았던 마음이 허물어집니다.



내면의 비평가와 치르는 전투


메일을 읽으면서 손을 번쩍 들고 "저요. 저도 그래요." 외치고픈 심정이었습니다. 글이라는 것을 쓸 때마다 제 안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옮겨놓은 사연 같았거든요. 주변인의 재능에 놀라기 - 질투심에 화르륵 타오르기 - 땅 속으로 푹 꺼질 듯 기 죽기. 이 3단계 감정 변화 말예요.


심한 날에는 좌절 3단계가 5단계로 심화될 때도 있지요. '땅 속으로 푹 꺼질 듯 기 죽기' 다음으로 '이미 해놓은 자신 작업에서 모자란 부분을 바라보며 비통해하기' - '다음 작업을 할 의욕을 상실하기'가 이어지는 경우요.


'아! 이런 걸 해보고 싶어!' 하는 충동이 들 때, 곧바로 머릿속에 검열의 목소리가 등장할 때도 많습니다. ‘네가 과연 저걸 할 수 있을까? 너한테 그런 솜씨나 재능이 있어?’ 그 검열의 목소리를 이기고 여차저차 시도를 해 첫 결과물을 내놓으면 이젠 비평가가 등장합니다. ‘진짜 제대로 한 거라고 생각해? 이걸 사람들이 좋아할까?’ 이 질긴 검증 과정에 내면은 너덜너덜해지고 입에선 이 한마디가 툭 튀어나옵니다. "내가 해봤자 그렇지 뭐."



믿어보기로 해요


일러스트레이터라 하시니 프랑스 일러스트레이터 세르주 블로크가 인터뷰 중 제게 했던 고백을 첫 번째 조언 삼아 전합니다. 경력 40년의, '뉴욕타임스' '월 스트리트 저널' 등과 협업하는 최고의 일러스트레이터, 세계 각국에서 단독 전시회를 여는 거장이 한 이야기니 마음을 크게 열고 잘 들어보세요.


"요즘도 새로운 프로젝트에 들어갈 때마다 ‘아, 이거 못할 것 같은데?’ 하는 불안함에 시달립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면 그림이 너무 후진 것 같아서 아틀리에 옆에 있는 운하에 몸을 던지고 싶을 때도 많습니다. 서점에 가도 비슷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또래 일러스트레이터들 책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습니다. 질투가 나서 괴롭거든요."


경외감에 마구 우러러 봤던 거장이 모든 작업을 전투 치르듯 한다고 깔깔 웃으며 고백했을 때 전 굉장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전 세계 일러스트레이터 지망생들이 선망하는 그도 여전히 "넌 모자라"라고 공격하는 내면의 비평가와 전투를 치른다니! 그렇다면 내가 특별히 못난 게 아니라 뭔가를 창작한다는 건 원래 이런 식인 거야, 하는 후련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어요.


참고로 그는 오히려 확신이 위험한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창작할 때 갖는 두려움은 좋은 신호예요. 자신이 맞다고 확신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죠. 그 떨림이 가치를 만들어내는 법입니다."


두 번째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오늘 소개할 그림책인 숀 탠의 『빨간 나무』로  대신해볼까 합니다. 진하고 축축한 절망이 이미 나를 덮쳐 모래 구덩이에 머리 꼭대기까지 쳐박힌 듯 느껴질 때, 숨을 쉬려고 할 때마다 입 안으로 꺼슬꺼슬한 나쁜 느낌이 밀려들 때 마음을 기대기 좋은 책이거든요.



표지에서는 종이배를 탄 소녀가 빨간 단풍잎을 바라봅니다. 종이배에는 소란스러운 말들이 가득 적혀 있습니다. 소녀는 평화로운 얼굴이지만 어딘지 비현실적인 소외감이 듭니다.

책장을 펼치면 침대에서 막 잠이 깬 소녀가 있고, 이런 문장 하나가 더해져 있습니다.


때로는 하루가 시작되어도

아무런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빨간 나무』는 그림 한 장에 단문 한 줄이 곁들여진 책입니다. 전통적인 기승전결 구조가 아니라 글과 그림을 날실과 씨실 삼아 지은 시를 읽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책장을 넘길수록 그림의 색은 점점 어두워지고 때로는 내면의 절망감을 상징하는 흉측한 괴물도 등장합니다.


모든 것이 점점 더 나빠지기만 합니다.

어둠이 밀려오고

아무도 날 이해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기다립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립니다.

그러나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림이 하나같이 쓸쓸하고 기괴하고 우울한데, 이상하게도 책장을 넘길수록 조금씩 마음은 후련해집니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하고 담아두었던 못난 마음들을 작가가 대신 꺼내 줘 눈 앞에 들이밀고 "자, 봐봐." 하는 것 같거든요. 처음에는 피하고 싶고 불편하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기면서 점점 더 이 말을 와락 내뱉고 싶어 집니다.

"맞아요. 내 마음이 지금 이래요."


만약 우리가 ‘화' ‘슬픔' ‘스트레스' 같은 단어를 모른다면 우리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없을 겁니다. 그러면 그 감정을 마음 밖으로 꺼내 잦아들게 하지도 못할 것이고요.  숀 탠의 『빨간 나무』는 절망감의 정체를 직시하고 아래로 아래로 깊이 내려가 그 감정에 푹 빠지게 만듭니다. 자신을 괴롭히던 감정에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된 순간, 손끝에 다시 단단한 반동이 느껴집니다. 바닥을 치고 위로 올라갈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는 겁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에는 어두운 절망의 세계를 돌던 소녀가 다시 제 방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그러나 문득

바로 앞에

조용히 기다리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밝고 빛나는 모습으로

내가 바라던 바로 그 모습으로



'희망을 놓지 않으면 다 이룰 수 있어' '꿈을 가져' '버티면 좋은 날이 올 거야' 등등 노력하면 다 된다는 식의 메시지에 일종의 알레르기 반응이 있는 저는 처음에는 마지막 글과 그림이 좀 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서둘러 희망을 말하고 이야기의 문을 닫아버리는 것 같았거든요. '기다리면 다 좋은 날이 오나 뭐? 인생이 그렇게 쉽게 풀리면 고민하는 사람, 아무도 없게.' 이런 반항심이 좀 들었죠.


상영 시간의 95%까지는 탁월하다가 마지막 5% 결말 부문에서 김이 팍 새는 영화를 본 것 같은 느낌으로 "뭐, 그래도 이 정도면 훌륭한 책이지." 했습니다. 지금 다시 돌이켜봐도 창피함이 몰려오는 오만한 생각이었어요.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제가 미처 보지 못한  『빨간 나무』의 백미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말에 다소곳하게 주인공을 기다리던 '희망(빨간 단풍)'은 갑자기 툭 튀어나온 게 아니었습니다. 빨간 단풍은 책의 모든 장면 안에 있었습니다. 그림을 구석구석 꼼꼼하게 보지 않은 제가 놓친 것들이었죠.


숀 탠은 애당초 책의 모든 장면에 빨간 단풍을 작게 그려 넣었습니다. 흉측하고 축축한 절망감이라는 물고기 괴물이 소녀 머리 위로 다가올 때도, 소녀가 유리병 안에 갇힌 것처럼 외로워할 때도, 하염없이 뭔가를 기다릴 때도, 아름다운 것들은 모두 그냥 날 지나쳐 간다고 열패감을 느낄 때도 빨간 단풍은 그 주위에 있었습니다.




절망 가운데도 알고 보면 (언젠가 눈에 띄길 바라면서) 조용하고 꾸준하게 우리 곁을 맴도는 작은 희망이 있다고 말하는 숀 탠의 다독임은 그냥 와락 믿어버리고 싶을 만큼 큰 위안이 됩니다. 그리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내가 몸 담은 지금 이 상황이 정말 그렇게나 절망적인가?

가슴이 울렁거리는 이 떨림과 불안의 시간이 정말 의미가 없는 건가?


그 과정에서 신기하게도 희망적인 생각이 반짝 떠오릅니다. 작지만 청량한 생각들이요. 이를테면 '그래, 고민을 열심히 한만큼 내가 깊어지는 중일 거야.' '그래도  지난번 프로젝트 때 클라이언트 반응이 꽤 좋았잖아.' 같은 생각들.


타인의 정원을 힐끔 힐끔 쳐다보던 곁눈질을 거두고 자기 안의 정원을 직시할 때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곧 들려오지요.


글이든 그림이든 음악이든 뭔가를 만들어 본 사람이라면 모차르트와 살리에르의 이야기에서 질투심에 스스로를 파괴한 살리에르에 훨씬 더 쉽게 감정이입을 할 겁니다.

창작은 달리기 시합과는 달라서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명쾌한 기준으로 "A가 B보다 낫다"고 결론 내릴 수 없는 분야니까요. 어느 구석에서든 '나는 부족하다'는 찜찜한 느낌이 남을 수밖에 없고, 우리 모두가 취약한 인간인 관계로, 그 찜찜한 느낌을 어쩔 줄 몰라 화를 내거나 우울감에 빠지거나 자기 파괴 충동에 사로잡히는 거겠죠.


질투심을 불러 일으켰다는 그 친구도 분명 다른 누군가가 가진 것을 힐끔 힐끔 쳐다보며 부러워하는 중일 겁니다. 제가 아는 한 질투심과 열패감을 견뎌본 적 없는 창작자는 단 한 명도 없거든요.




이 글에서 소개한 그림책은?

숀 탠 <빨간 나무> http://goo.gl/BdNGLJ



글을 쓴 최혜진

10년간 피처에디터로 일하며 크고 작은 인터뷰로 각기 다른 결을 지닌 1천여 명의 사람을 만나 수만 개의 질문을 던졌다. 10년 차가 되던 해에 유럽으로 날아가 3년 동안 살며 책 <그때는 누구나 서툰 여행><명화가 내게 묻다><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를 썼고, 현재는 <볼드저널>의 콘텐츠디렉터로 일한다. 그림책이라는 놀라운 예술 장르에 매료된 자발적 마감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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