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책리뷰] 고슴도치의 우아함

by Andrew Hong

"중요한 것은 죽음 그 자체도, 몇 살에 죽느냐도 아니라 죽는 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다."


→ 책에서처럼 미성년자가 자신의 삶을 통찰하고 자살을 통해 죽음에 이르려는 계획을 세웠을 때, 모든 어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조숙한척 하지만 미성숙함', '아직 아름다운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안타까움', '세상물정도 모른채' 등 그 아이의 의견을 듣고 존중해주기보다는 무조건 100이면 100 답정너로 만류할 것이다. 근데 위 멘트처럼 나이에 상관없이 저정도 깊이의 삶을 통찰했다면, 난 그 선택을 존중하는 게 맞다고 보여진다. 인간이 정한 '미성년자' 기준의 동정과 판단은 아이의 결정에 대한 모욕일 것이다.



"나는 불안감이 찾아오면 내 은신처로 간다. 다른 여행을 할 필요가 없다. 내가 읽은 문학책에 대한 기억 속으로 들어가는 일,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이보다 더 고상한 기분전환이 있을까? 이보다 더 좋은 동반자가 있을까? 문학의 최면보다 더 감미로운 최면은 없다."


이보다 공감되는 구절이 있을까? 내가 책을 읽는 명확한 이유다. 문학은 여러 세계관을 체험할 수 있는 행복의 장이다.



"우린 절대 우리의 확신 너머를 보지 못한다. 더 심각한 것은 그 확신 너머와 마주하는 것을 포기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하고만 만날 뿐이다. 늘 따라다닌 거울 속에서는 알아보지 못하면서. 만일 우리가 타인 속에서도 우리 자신의 모습만 볼 뿐이라는 것을 깨다는다면, 사막 속에 우리가 혼자라는 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미쳐버릴 것이다."


이런 글귀야 말로 문학작품이 주는 삶에 대한 통찰이 아닐까? 우리 인간의 이기적 본능은 모든 순간에 발현된다. 상대에게 관심있고 베푸는 것 같지만, 그것조차도 나의 감정 도파민과 행복 만족감이 충족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인들이 가장 잘못하는 게 '사랑'이다. 사랑은 내 감정 도파민을 채울려고 하는 게 아니라, 타인을 위한 희생이자 헌신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난 속으로 말했다. 언어의 황홀경도 아름다움도 알지 못하는 영혼이 가난한 불쌍한 사람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문학의 즐거움과 춤의 즐거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가진, 나의 솔직한 마음을 성찰할 수 있었다.



"일하다 쉬는 시간에 실내장식의 문화적 의미에 대해 견해를 나누는 가정부와 수위라니. 보통 사람들은 이론보다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개념보다는 일화를 좋아하며, 사상보다는 이미지를 좋아한다. 우리는 결핍에 대한 불안 속에 살며 공허에 좀먹히는 문명인들 아닌가?"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뼈때리는 메시지가 아닐까싶다. 물론 내 자신도 디지털 시대의 과도기를 거쳤기에, 이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인정한다.



"나는 우리가 해야 할 유일한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임무를 찾기 위해 우리는 태어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그것을 완수하고,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찾는 억지를 부리지 않고, 우리 동물적 본성에 신성한 것이 있다고 믿지 않는 것. 그럴 때만이 죽음이 우릴 데려가는 순간에도 건설적인 어떤 것을 한다고 느낄 수 있다."


→ 이 구절에 극히 동감한다. 내 개인적인 철학과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의 'Telos'의 개념과 일치하며 이 구절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나에만 Specification을 가지고 몰빵하라는 게 아닌, 르네상스시대까지만해도 '통섭'의 개념이 발휘되었던것처럼 개인은 다양한 학문과 분야를 다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정한대로 자신을 틀과 한계에 가둘필요가 없는 것이다. 다빈치처럼 천재여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모두는 여러 분야에서 각자에게 맞는 역량치들을 10%도 발휘안하고 죽는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저자도 주인공의 멘트를 통해 아래와 같이 말하지 않았을까.


"선택은 있고, 분야는 다양하다. 단칼로 베듯 단 하나의 운명을 따르겠다는 포부로 아주 진지하게 세미나에 가서 철학에 입문하라는 것이 아니다."



"장미 줄기와 꽃봉오리가 떨어지는 걸 본 나는, 아름다움의 진수 중의 진수를 일 초도 안되는 그 짧은 순간 직감했다.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스쳐가는 바로 그 순간을 잡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물들이 아주 찰나적으로 어떤 모습을 띠는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아름다움과 죽음을 동시에 본다.

아, 아, 아! 삶이 이렇게 살아져야 하는 거 아닌가? 나는 속으로 말했다. 아름다움과 죽음, 움직임과 소멸 사이에서 늘 균형있게? 아마도 이것이 살아있는 것이리라. 죽어가는 순간을 추격하는 것."



Finale에 걸맞는 명품 문장으로 느껴졌다. 이보다 격한 삶과 죽음에 대한 동감을 끌어내는 표현이 존재할까?




keyword
작가의 이전글[드라마리뷰] 넷플릭스 너의모든것 -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