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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아피디 Dec 23. 2020

결혼은 미친짓이다

예능 전쟁터 25년 참전기 24

● 결혼은 미친 짓이다  

     칼로 물 베기 쇼 <부부젤라>    

  

 프로그램은 기세다. 기생충에서 박우식이 과외학생한테 한말 같지만 사실은 내가 후배들한테 많이 쓰던 말이다. 그리고 프로그램은 제목빨이다. 제목이 거의 다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프로그램에서 제목은 중요하다. 제목을 듣는 순간 콘셉트가 명확하게 이해되어야 하고 그 콘셉트를 임팩트하게 포장까지 해준다면 최고의 제목이 되는 것이다.     


 피디 초창기 시절에 오래 했던 토크쇼에서 나는 많은 정보를 습득했다. 무엇을 시청자들이 좋아하는지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뼛속 깊이 각인되어있다. 가장 인기 있는 것들은 음식, 건강 그리고 남의 집 싸움 구경이다.      


 당시에 나는 연예인 부부 섭외를 상당히 많이 했다. 인기 있는 부부가 나와서 첫 만남 첫 키스 결혼 얘기하면 시청률이 술술술 올라간다. 그러다 부부싸움으로 얘기로 이어지면 시청률 그래프가 갑자기 치솟는다. 사람 심보들은 다 똑같은 것인가? 성선설 대신 성악설이 맞는 건가? 싶은 정도로 시청자들은 남의 부부싸움

얘기를 좋아한다.      


 요즘 <애로 부부>라는 프로그램이 인기 있다. 물론 <동상이몽>, <1호가 될 순 없어>, <살림하는 남자>, <아내의 맛> 다 인기 있는 프로그램이다. 다 남의 부부 싸움하는 얘기다. 그리고 제목들을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      


  이걸 잘 아는 내가 부부싸움 프로그램을 기획하지 않았을 리가 없다. 2012년은 무려 네 개나 되는 종편들이 처음 개국 해서 각자 뭘 해야 될지 몰라 헤매고 있을 때였다. 평소 기획안을 많이 쟁여놨던 나에게 아니 우리 제작사에겐 그야말로 줍기만 하면 되는 노다지 밭이었다.      

 

 그중 한 기획이 <칼로 물 베기 쇼 - 부부젤라>였다. 이건 순전히 제목 하나로 프로그램 제작을 따낸 케이스다. 기획서에 주저리주저리 많은 구성들을 다 써 놓았지만 다 필요 없는 얘기다. 부부싸움을 TV에 나와 공개적으로 하는데 그 소리가 월드컵 때나 들을 수 있는 아프리카 악기 부부젤라 소리처럼 시끄럽다. 하지만 부부싸움은 어디까지나 칼로 물 베기 아니겠느냐? 는 내용이 제목에 다 설명되어있기 때문이다.      


 한 종편채널에 편성이 바로 되었고 나는 부부라는 콘셉트에 맞게 스튜디오 및 자막 포함 프로그램의 각종 미장센을 핑크로 도배를 해버렸다. 패널들이 가지고 있는 볼펜까지 핑크색으로 배치할 만큼 처절 아니 철저하게... 이 핑크 사랑은 <피디 베이비 앙앙앙>이라는 프로그램에서 다 못 푼 분풀이 같은 것이었다.

 

 첫 회 아이템은 무조건 자극적인 것으로 출발해야 한다. 그래야 중년들이 많이 보는 종편에서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그에 맞춰 섹스리스 부부와 그와 반대되는 섹스 중독 부부를 나란히 출연시켰다. 당시에 종편에서 나올 수 없는 엄청난 시청률이 나왔다. 채널도 출연자들도 우리 피디들도 다 만족해했다.      


 이렇듯 [부부]라는 것은 방송이란 것이 없어지는 그날까지 생존할 영원한 아이템이다. 그 이유는 [결혼]이라는 것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도박]이기 때문이다. 카드의 첫 한 장을 보고 나머지 패를 까보지도 않고 심지어 상대방 패는 아예 모르면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올인하는 게임이다. 한마디로 미친 짓이다. 도박은 중독성이 강하다. 중독성이 강한 것을 사람들은 놓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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