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시발점(18pt)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고 했던가?
굶어 죽는 곰보다는 재주 부리는 곰이 되고 싶어 회사에 들어오기는 했다만, 돈을 가로채는 되놈들을 보면 고달플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저 되놈들도 출신은 재주 부리는 곰이었을 텐데 뭘 처먹고 저렇게 되놈이 되었나'
음...짬 말고는 딱히 없는 것 같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라기보다 그냥 짬만 처먹고 요령만 늘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 것 같다.
수백 마리의 곰들이 각자 재주를 부려 회사를 꾸려나간다면 거 얼마나 좋겠냐만은 모든 곰들이 내 맘 같지 않고, 나 또한 누군가 맘에 썩 드는 곰이 아니기에 참고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참고 넘어가기에는 힘들 정도로, 회사에는 다양한 군상의 나쁜 인간들이 존재한다.
유형 하나. 프리라이더
대학교 조별과제에만 존재하는 줄 알았던 이 악령은 어느 조직에나 존재하나 보다.
그래서일까 회사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것 같다.
이 악령은 짬을 이용하여, 어느 순간 후배 직원에게 자기 업무를 위임하고는 돌연 자취를 감춰버린다.
그리고는 퇴근 시점이 다가올 때 등장하여 야근을 신청하고, 그제야 업무를 시작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일이 많아서 야근을 하는 사람으로 과대 포장되어 회사 내의 평가가 좋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업무시간 온몸에 육수를 뽑아내가며 밀도 있게 일하고 있는 내 동기 놈이 생각나서 슬플 때가 많다.
유형 둘. 프레이머
속된 말로 와꾸(frame)만 짜고 일만 벌이지, 수습은 뒷전. 곰들한테 맡기는 되놈들의 유형이다.
이들의 특징을 보면 달변가로서 아첨의 능하고 포장을 잘한다. 그래서 회사 내의 평가가 훌륭하고 진급도 꽤 빠른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실상을 보고 있으면, 허울 좋은 껍데기들이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윗사람들에게 달콤함을 제공하기 위해, 사업의 실효성과 수익성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채 신사업이라는 구실 좋은 명목으로 일사천리 일을 진행시켜버린다.
안타까운 점은 신사업이라는 거대한 똥을 싸지르는 와중에도 죽어나는 것은 그 밑에 곰들이라는 것이다.
이렇든 저렇든 신사업을 해냈다치자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가.
그들이 싸질러놓은 신사업은 그들의 목적이 달성되는 순간, 활용가치가 급격하게 떨어지게 되고, 똥이 되어 다른 누군가에게 위임이 된다.
이 거대한 똥은 그들의 목적만 있을 뿐, 애당초 수익성이나 실효성에 대해 심도 있게 고려하지 않았다.
때문에 돈은 돈대로 매몰되고, 업무는 업무대로 생겨 타 팀 혹은 타인에게 넘어가 생산성을 떨어트리는 원인이 되어버린다.
그들이 쏘아 올린 작은 공은 거대한 똥이 되어 많은 곰들을 옥죄게 된다.
유형 삼. 탱커
탱커라고 적고 깡패라고 읽는다가 맞으려나... 이 유형은 그냥 막무가내다.
자기가 무조건 옳다는 개똥철학으로 무장된 인간으로 부하직원은 까라면 까라는 군대식 문화와 사고에 찌들어 있다.
근데 정작 중요한 것은 까라고 해서 깠는데, 그 결과가 잘못되었을 때의 책임은 자기 것이 아닌 채, 부하직원에게 회피하는 경우가 제법 많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지시를 한 적이 없다. 내가 언제 그랬냐 라고 탱커가 말하면 그것으로 상황 종결.
이런 상황을 겪으면서 생긴 학습효과를 바탕으로, 잘못된 부분에 대해 다르게 일처리를 하게 되면 요즘애들은 시킨 대로 안 하고 자기 마음대로 일처리를 한다고 혼내는 경우도 존재한다.
모든 행동을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다. 눈밖에 나지 않으려면...
유형 넷. 허슬러
사짜다. 회사와 관련된 무용담을 너무 많이 갖고 있는데, 모순점 투성이고 그럴만한 인물이 아니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 회사의 역군이 바로 나다. 이 회사의 돈은 내가 다 벌었다.'
여전히 과거에 살고 있다. 현재는 그냥 한량이고, 후배들 기를 다 죽이는 몹쓸 꼰대로 발전하고 계신 분들이다.
이분들의 또 다른 특징은 타인의 레퍼런스 체크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출신학교를 묻거나, 전공이 어떻게 되는지를 확인하고 줄 세우기를 좋아한다.
계급장 다 떼고 냉정하게 봤을 때, 자네가 과연 그럴만한 깜냥인가 오히려 내가 반문하고 싶다.
어찌 됐든 다양한 군상의 나쁜 인간들과 업무를 하면서 내 나름대로의 회사생활신조가 생겼다.
'일 인분만 하자'
이것이 내 회사생활의 신조다.
나 좀 편하자고 0.5인분을 해서 누군가로부터 불 멘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또한 누구를 위해서 오버해가며 내가 지치고 싶지 않다. 더 명확하게는 손해보고 싶지 않다.
나의 에너지를 재화라고 했을 때 나는 일 인분의 급여를 받고 있으니 그에 상응하는 일 인분의 노동력을 제공해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기인하는 신조다. 단순하고 명쾌하다
결재 기안문을 올리는 순간. 심사숙고
요약전은 14pt
거기 너님은 18pt.
You got 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