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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사원 Dec 16. 2018

<김사원 표류기>

#7. 점심의 기억

현재 시각 오전 11시 50분, 앞으로 10분...

배고픈 직장인에게 시계의 초침과 분침은 참으로 더디게만 흘러간다.

'오늘 점심은 뭘 먹을까?'

매일 똑같은 고민의 연속이다. 

구내식당이 있는 직장인들은 이 고민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나는 그렇지 못하다.


현재 우리 회사에는 구내식당이 없다.

처음 내가 입사를 했던 당시에는 우리 회사에도 구내식당이라는 것이 존재했었다.

우리 회사의 구내식당은 외부업체(업체라기보다 그냥 가게 사장님 정도)에 위탁방식으로 운영이 되었는데, 남편분이 식자재 도매상을 하셨던 이모님이 구내식당의 운영자로 들어와 직원 3명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셨었다. 

매달 말이면 구내식당 식권 10장이 직원들에게 배부되고 월급에서 38,000원이 공제가 되었는데, 추가적으로 식당을 이용하려면 현금 4천원을 내고 먹으면 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현금을 내고 먹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구내식당이라 하면 회사의 복지 개념으로, 저렴한 가격에 비해 상타치의 맛과 퀄리티를 제공하는 것이 보편적 모습이나, 우리 회사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200명 남짓 안 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구내식당을 운영하기에는 이모님이 많이 버거우셨는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요리에 종류가 획일화되어 갔고, 퀄리티도 떨어졌다.

대표적으로 내가 기억하던 메뉴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잔치국수와 주먹밥이다.

이 메뉴는 매달 2번은 식단표에 올라갈 만큼 이모님의 최애 식단이었으며, 구내식당 스테디셀러(?!)였다. 

일반적으로 잔치국수라고 하면 계란 고명을 시작으로 다양한 고명들과 함께 간장 양념이 올라가는 것을 상상할 것이다.

또 주먹밥이라하면 구 내지는 삼각형의 형태로, 밥 안에는 참치 또는 소고기 따위의 내용물이 있거나, 일본식 오니기리처럼 김을 둘러맨 형태를 상상할 것이다.

하지만 구내식당표 잔치국수와 주먹밥은 일반적인 상식을 허물어버린 脫(탈) 잔치국수, 脫(탈) 주먹밥이었다.

멸치로 육수를 내고 소면이 들어간 것까지는 동일하나, 계란 따위의 고명이 아닌 어묵과 당근 그리고 고사리로 추정되는 갈색 야채가 올라갔으며, 간장양념은 존재하지 않았다.

주먹밥은 오로지 밥과 김가루로만 완성된 미약한 맛의 응집체였다.


여담을 조금 더하자면, 내 고등학교 친구는 누구나 알만한 N 게임회사에 다니고 있는데 이 회사는 매달 1번씩 구내식당에서 직원들에게 특식을 주는 날이 있다.

어느 하루, 그 회사의 특식으로 영덕대게가 나오는 날이 있었다.

점심시간에 단톡방에 대게를 먹었다고 이야기를 하는 그 친구의 카톡을 아직도 나는 기억한다.

왜냐하면 그때도 어김없이 구내식당 메뉴는 멸치국수와 주먹밥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구내식당에서 멸치국수와 주먹밥 2개를 꾸역꾸역 먹었는데, 대게를 먹고 있는 내 친구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자니 脫국수&脫주먹밥을 먹고 있는 내 모습이 오버랩돼서 매우 슬펐었다.

(그때의 순간을 기억하고자 사진을 찍었었는데, 지금 봐도 충격과 공포의 잔치국수&주먹밥인 것 같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직원들에게는 10장의 식권이 족쇄가 되어버려 매달 10장의 식권을 소진시키는 일은 꽤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가 되어버렸으며,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원의 만족도는 떨어져만 갔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번 달에 발행한 식권에 대해서는 다음 달로 이월이 가능하다는 점이었으나, 그마저도 사용을 하지 못해 식권을 다른 사람들에게 뿌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때문에 구내식당의 운영은 점점 더 악순환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저 사진을 찍은 시점으로부터 몇 달 뒤, 끝내 이모는 구내식당 운영권을 포기하셨다.

식권 외에도 직원들의 추가적인 이용이 필요했으나 그러하지 못했기 때문에 운영이 힘들다고 판단하셨기 때문이다.


구내식당이 사라지고 나서 처음에는 대다수의 직원들이 만족스러워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제일 환호했었다.

맛없는 점심을 꾸역꾸역 강제로 먹는 것보다 차라리 돈을 좀 더 주더라도 밖에서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지금, 가끔씩 구내식당을 그리워하는 직원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회사 주변의 식당은 거기서 거기였던지라 매일같이 점심메뉴를 선정하기 위해 고민하고, 외부로 나가는 것이 여간 귀찮고 번잡은 일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물론, 여전히 나는 그때의 구내식당을 그리워하진 않는다. 하지만 회사내에서 밥을 해결하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까? 

나도 누구네처럼 동원 F&C의 급식을 먹고 싶다. 

나도 누구네처럼 CJ푸드밀의 급식을 먹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다.

그들로부터 받은 대답이 우리 회사의 직원수가 적어서 최소 수량을 맞출 수가 없어서 안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오늘도 나는 엄동설한의 날씨를 뚫고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한다.

'오늘 점심을 무엇을 먹을까?' 

시계가 정오를 가리킨다. 

오늘도 점심식사 엑소더스가 시작되었다.

나는 어디로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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