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프롤로그 (Martion vs Earthion)
<마션>에서 주인공 와트니는 화성을 탐사하던 도중 모래폭풍에 의해 팀원과 우주에서 생이별을 하게 된다.
식물학자이자 기계공학자인 와트니는 화성에 홀로 남아 생존과 지구로의 귀환이라는 두 가지 대업을 달성하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게 된다.
이제, 내 얘기를 해보고 싶다.
나는 썩 공부를 잘했던 편은 아니었지만 나름 대한민국의 교육시스템을 잘 따라갔고(운도 좀 작용했다), 그 덕에 꽤 좋은 대학의 합격하여 꽤 괜찮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아왔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를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진단하였고, 장밋빛 미래를 그리며 자기애에 도취되어 있었다.
시간은 흘러 나는 취준생이 되었고 구직활동에 있어서 나 정도의 사람이면 응당 좋은 회사, 더 구체적으로는 내가 가고 싶은 좋은 기업에 취직하여 꽤 괜찮은 곳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꽤 괜찮은 꿈이었다.
하지만, 화성 탐사를 마치고 지구로 귀환을 하기 직전, 조난을 당한 와트니처럼 나는 경기불황, 지독한 구직난이라는 거대한 폭풍 속에 휩쓸려 꽤 괜찮은 꿈으로부터 생이별을 하게 됐다. 마치 와트니처럼 말이다.
와트니의 조난과 나의 조난의 차이점은 여기는 지구 위도 37° 34’ 00” N, 경도 126° 58’ 41” E, 대한민국이라는 점과 나는 조난으로부터 비교적 빠른 시일 내에 구조(취업)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조난이 더 안타까운 것은 구조대가 귀환하는 곳이 지구(나의 꿈, 목표)가 아닌 다른 행성에 불시착했다는 점이다.
다시 <마션>으로 넘어와서, 화성에 홀로 남은 와트니는 생존을 위해 자기가 가지고 있는 화학적, 식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부족한 식량을 조달하기로 계획하게 되는데, 그 대상이 바로 감자다.
와트니의 화성 표 감자는 화성의 토양을 바탕으로 탐사대가 그동안 싸놓았던 똥을 거름 삼아, 와트니의 지적, 육체적 노동을 통해 똥 감자로 잉태된다.
그리고 와트니는 이 똥 감자를 식량 삼아 혹독한 화성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와트니의 똥 감자는 내게 무엇과 같은가?
불시착한 이곳 회사에는 나와 같은 처지의 많은 사람들이 업무라는 거대한 똥(물론 내가 싸질러 놓은 업무도 포함된다)을 싸질러 놓았다.
그렇다. 똥들이 산재해 있는 이곳 회사는 와트니의 화성 똥밭일 것이고, 똥밭에서 생존을 위해 지적, 육체적 노동을 하는 나는 흡사 지구판 와트니가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지곤 한다.
물론 불시착한 이곳이 와트니의 화성처럼 혹독하고 처절한 환경은 아니기 때문에, 내게 전문적인 지식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누구에게는 엄살처럼 보이겠지만, 모든 인간이 그러하듯 나의 고통이 제일 아프고, 나의 일이 제일 힘든 법이니 이해해주길 바란다.
매달 25일이 되면, 나의 노동력은 업무라는 똥을 거름 삼아 봉급이라는 똥 감자로 잉태된다.
오늘도 나는 처절하고 지저분한 생존게임에서 생존하였기에 봉급이라는 값진 똥 감자를 얻을 자격을 부여받게 되었다.
이렇게 잉태된 봉급은 비록 적지만, 혹독한 지구 더 자세히는 대한민국 서울에서 내가 생존할 수 있게 하는 힘이 되어준다.
시간은 여전히 흘러만 간다. 똥 감자가 무르익는 수확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언제쯤 나는 이 표류를 끝낼 수 있을까?
'l'm pretty much fucked.' (아무래도 X 됐다)
와트니의 외마디 비명처럼 나는 여전히 불만을 가진 채 이곳을 표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