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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갈등이 반복될까?”

문제는 사람보다 시스템이다

by 최윤희

HR insght 2025년 4월 HR 칼럼 원고 원본입니다. 지면 관계상 생략된 부분 전문을 담습니다.


갈등, 조직을 흔드는 불씨일까? 성장의 에너지일까?

"요즘 왜 이렇게 갈등이 많지?"
조직을 이끄는 리더라면 한 번쯤 해봤을 고민이다. 누군가는 중재자 모드를 켜고 하루에도 몇 번씩 회의실을 오간다. 그러다 지쳐 한숨을 쉰다. “이 팀은 왜 맨날 이래…”


잠깐. 시선을 바꿔 보면 어떨까?
혹시 갈등이 많다는 건, 우리 조직이 살아있다는 증거 아닐까? 생각과 가치, 일하는 방식이 다양하다는 건 ‘죽은 조직’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의 성장도 늘 갈등과 함께였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쳐 정체성을 찾고, 사회에 나가 환경에 적응하고, 사랑과 일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며 우리는 자랐다.


조직도 마찬가지다. 성장하는 조직엔 늘 ‘마찰음’이 있다. 문제는 그것을 ‘잡음’으로만 들을 것이냐, ‘에너지’로 바꿀 것이냐다. 오늘은 조직과 사람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갈등의 ‘다른 얼굴’을 발견해 보자는 화두를 던져보려고 한다.


갈등은 ‘비정상’이 아니다

우리는 종종 갈등을 ‘있으면 나쁜 것, 없으면 좋은 것’으로 단정 짓는다. 이분법적 사고는 편하긴 한데, 현실을 복잡하게 만든다. 솔직히 갈등이 전혀 없는 조직, 상상해 보면 좀 무섭다.

모두가 눈치만 보고, 본심을 숨기고, 그저 주어진 일만 반복하는 분위기. 그건 건강한 조직이 아니라 ‘온도 없는 회색 지대’다. 갈등은 체온과 같다. 너무 높으면 문제지만, 아예 없으면 생명력이 없다. 중요한 건 갈등이 있느냐 없느냐가 아니라, 그 갈등을 어떻게 다루고, 어떤 성장을 만들어내느냐다.


갈등이 더 복잡해진 이유

예전에는 갈등이 비교적 단순했다. "누가 잘못했는지", "어느 부서 책임인지" 정도였다. 그런데 요즘 갈등은 얽히고설켜서 한 줄로 풀 수가 없다. 왜일까? 세상이, 조직이, 사람이 너무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1. ‘개성 존중’의 시대, 충돌도 함께 온다
과거에는 ‘조직의 성과’가 중심이었다면, 지금은 ‘나의 성장’, ‘내 일의 의미’를 더 중시하는 시대다.
이건 참 반가운 변화다. 하지만 가치관이 다양해질수록, ‘정답’도 많아진다. 갈등은 단순한 의견 차이를 넘어, ‘의미의 충돌’이 되곤 한다.


2. 협업의 진화가 불러온 경계의 혼란
디지털 전환 이후, 부서 간 벽은 많이 허물어졌다. 협업은 더 자유로워졌지만, 그만큼 복잡해졌다. 누가 리더인지, 어디까지 책임져야 하는지 모호해지는 순간, 갈등은 슬그머니 고개를 든다.
“이건 누구 일이지?”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 팀이라면, 이미 위험 신호다.


3. 세대의 언어가 다르다
MZ세대는 “왜 이 일을 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목적과 의미를 찾는 것이다. 반면 기성세대는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를 먼저 묻는다. 방법과 실행을 중시하는 태도다. 같은 목표를 보더라도 접근 방식이 다르다. 이 차이가 때론 오해를 만들고, 협업의 속도를 늦추기도 한다. 하지만 이 차이는 결코 틀림이 아니다. MZ세대의 질문은 책임 회피가 아니라, 더 나은 방향을 함께 찾자는 제안일 수 있다. 기성세대의 실행력은 팀 전체를 안정적으로 이끄는 자산이기도 하다. 중요한 건 누가 맞느냐가 아니라, 서로의 시선에 귀 기울일 줄 아는 태도다. 다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접점이 생기고, 그 접점에서 세대 간 갈등은 새로운 방식의 협업으로 전환된다.


4. 모두가 ‘한 명 이상’의 역할을 한다
인구는 줄고, 일은 늘고, AI는 빠르게 따라온다. 사람은 그대로인데 해야 할 일은 많아졌다. 당연히 여유는 줄고, 짜증은 늘고, 갈등은 자주 터진다. ‘일이 많아서’ 싸우는 게 아니라, ‘사람이 지쳐서’ 부딪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갈등을 해결하는 다섯 가지 지혜로운 방법

예전에는 갈등을 ‘줄여야 할 골칫거리’로 여겼다. 타협하고, 조율하고, 덮고 넘어가면 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다양성과 속도의 시대에는 갈등을 ‘없애는 것’보다 ‘잘 다루는 것’이 훨씬 중요해졌다.

갈등을 관리한다는 건 억누르거나 피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꺼내어 보고, 방향을 잡아주고, 에너지로 바꾸는 것. 그것이 진짜 ‘갈등 리더십’이다. 갈등은 불편하지만, 방향만 바꾸면 에너지가 된다


1. ‘누가 결정하나’부터 명확히 하자 – 의사결정 권한 프레임
갈등의 출발점 중 하나는 늘 이거다. "도대체 누가 결정하는 건데요?" 리더는 모든 걸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에 눌리고, 팀원은 참여하지 못해 소외감을 느낀다.

이럴 땐 의사결정 방식을 사안별로 정리해 두면 훨씬 수월해진다. 통보–설득–상의–합의–조언–질의–위임, 이 일곱 단계만 잘 써도 갈등은 줄고, 속도는 붙는다.

사례.
A기업의 마케팅팀은 캠페인 기획 때마다 디자인팀과 마찰이 있었다. “왜 기획서도 없는 상태에서 디자인을 시작하냐”는 마케팅팀 vs “왜 우리에게 결정권이 없는가”라는 디자인팀. 이후, 의사결정 권한 프레임을 도입해 ‘기획 방향은 마케팅팀 단독 결정(통보)’, ‘시안 채택은 합의’, ‘디테일한 이미지 선택은 디자인팀 위임’으로 정리했다. 불필요한 충돌이 사라졌고, 프로젝트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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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가 상황에 따라 다음과 같이 말하면 구성원에게 ‘결정의 프레임’이 자연스럽게 전달된다.

1) 통보: “이번 건은 회사 정책 변경이라 제가 방향을 정했고, 그 내용을 공유드립니다.”
2) 설득: “왜 그렇게 정했는지 설명드릴게요. 이 방향이 효과적일 거라 본 이유는…” 3) 상의: “여러분 의견 듣고 최종 판단하려고 해요. 지금부터 자유롭게 말해주세요.”
4) 합의: “이번엔 모두 함께 결정해야 할 사안이라 생각해요. 팀 내 합의를 만들어보죠.”
5) 조언: “제가 보기엔 이 방향이 맞는 것 같은데, 최종 결정은 여러분이 해보세요.”
6) 질의: “여러분이 이미 계획하셨으니 저는 확인만 드릴게요. 혹시 검토 필요한 포인트 있으면 알려주세요.”
7) 위임: “이 프로젝트는 전적으로 여러분이 주도해도 좋습니다. 필요할 때만 저를 불러주세요.”


리더의 한마디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결정 구조에 대한 신호다. 명확해질수록 팀은 덜 혼란스럽고, 더 자율적으로 움직인다.


2. 함께 일하는 공식이 필요하다 – 협업 룰 정하기

요즘 협업은 예전보다 더 자유롭지만, 그래서 더 복잡하다. ‘이건 이렇게 하자’는 합의가 없으면, 좋은 의도도 오해로 번지기 쉽다. 그래서 필요한 게 바로 ‘우리만의 협업 공식’이다. 피드백은 언제 어떻게 줄지, 회의는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기대치를 함께 정하고 문서로 남기자. 규칙이 있으면 일이 편해지고, 감정 소모도 줄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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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B회사 인사팀은 매주 월요일 오전 10시, 팀즈로 회의 일정을 공유했다. 하지만 영업지원팀은 “왜 회의 공지를 꼭 팀즈로 하냐”며 불만을 표시했다. 알고 보니 팀 간 주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달랐던 것. 양 팀은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정리한 ‘업무 커뮤니케이션 매뉴얼’을 만들고, 회신 기한, 보고 채널, 긴급 대응 루트 등을 문서화했다. 이후 “말이 안 통해서 힘들다”는 소리가 줄었다. 팀장과 팀원 간 소통해서 룰 정하는 것만으로도 갈등이 줄기도 한다.


3. ‘사람 문제’ 아닌 ‘구조 문제’ 일 수 있다 – 구조적 시선 갖기
갈등이 반복된다면, 그건 사람의 성격 때문이 아닐 수도 있다. 같은 자리에 누구를 앉혀도 생기는 문제라면? 그건 구조의 문제다. 이럴 때 리더는 탐정처럼 질문을 던져야 한다.

이 갈등, 특정 상황에서만 생기나?

반복되는 패턴이 있는가?

역할과 책임이 애매하진 않은가?

프로세스나 보고 라인이 꼬여있진 않은가?

‘사람을 바꾸기 전 구조를 본다’, 이 한 줄이 많은 오해를 줄여준다.

사례
C기업 개발팀에서는 프로젝트 막바지마다 QA 담당자와의 갈등이 반복됐다. “왜 지금에서야 요구사항을 바꾸냐” vs “초기에 의견을 반영할 시간이 없었다”. 결국 HR팀이 프로세스를 점검한 결과, 초기 기획 단계에 QA팀이 전혀 참여하지 않는 구조가 문제였다. 이후 QA팀도 초기 회의에 참여하도록 프로세스를 바꾸었더니, 갈등이 눈에 띄게 줄었다. 사람을 탓하기 전에 구조를 먼저 살핀 것이 해답이었다.


4. 감정보다 기준을 말하자 – 한계선 피드백

“이건 아니야”를 말하는 게 늘 어렵다. 하지만 피드백은 때로, ‘이 선은 넘지 말자’를 분명히 그어야 한다.

그게 바로 ‘한계선 피드백’이다. 한계선 피드백은 비난이 아닌 ‘기대와 기준’을 정하는 대화다.

예를 들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이번 달까지는 보고서를 마감 1일 전까지 제출해 주면 좋겠어요. 다음에도 지연되면 회의 안건에서 빠질 수 있어요.”

“회의 지각이 반복되면 팀 전체 리듬이 흔들려요. 앞으로는 시작 5분 전까지 입장해 주세요. 두 번 이상 지각 시, 요약본 공유만으로 참여를 제한할 수 있어요.”

이렇게 행동(무엇을), 기한(언제까지), **후속조치(어떻게 될지)**를 함께 말하면, 감정 상하지 않고도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리더는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을 세워주는 사람이어야 한다.


한계선을 그을수록 신뢰도는 더 또렷해진다.

사례
D기업의 한 팀장은 반복적으로 회의에 지각하는 팀원에게 “이건 협업에 대한 태도의 문제”라고만 지적했다. 그러나 행동 변화는 없었다. 교육을 받고 말을 바꾸었다. “다음 주부터는 회의 10분 전까지 입장하는 것을 기본 원칙으로 하자. 두 번 이상 지각하면 회의 자료 공유를 제한하겠다.” 명확한 기준과 후속 조치를 이야기하자, 팀원은 스스로 알람을 맞추고 준비했다. ‘기준+기한+결과’를 분명히 하는 피드백이 더 강한 메시지가 된다.


5. ‘작은 신호’가 보이면 바로 움직이자 – 조기 감지와 예방
갈등은 갑자기 폭발하지 않는다. 언제나 ‘작은 이상징후’가 있다.

회의에서 반복되는 투덜거림

사소한 말에도 예민한 반응

비공식 대화에서 들리는 불편한 뉘앙스

이럴 땐 그냥 넘어가지 말고, 원온원 미팅이나 팀 회의에서 먼저 물어보자.
"혹시 요즘 불편한 점 있어요?" 리더가 작은 반응이 예방이 되어 큰 분열을 막는다.


이 다섯 가지는 갈등을 없애는 기술이 아니라, 갈등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지혜다.
리더의 한마디, 팀의 한 약속이 조직을 조금 더 건강하게 만든다.


갈등,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기

갈등은 불편하다. 마음을 소모시키고, 관계를 뒤흔들며, 때론 일의 동력마저 떨어뜨린다.
하지만 갈등이 문제인 건 아니다. 문제는 우리가 갈등을 해석하는 방식이다. 같은 상황도 어떤 리더는 ‘골칫거리’로 받아들이고, 또 어떤 리더는 ‘성장의 신호’로 해석한다. 결국 갈등은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든다. 갈등이 생겼을 때, 이렇게 물어보자.

이 갈등은 우리 조직에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가?

우리는 이 상황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 갈등을 ‘도약의 계기’로 바꿀 수 있을까?


갈등은 멈춤이 아니라 전환의 순간이다. 그 갈등을 통해 팀의 룰을 다시 정비하고, 소통의 방식을 점검하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게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문제 상황이 아니라 성숙의 시작이다.

현명한 리더는 갈등을 피하지 않는다. 갈등의 중심에 서서 묻고, 듣고, 해석하고, 새로운 길을 만든다. 갈등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곧, 조직이 어디로 나아갈지를 결정하는 일이다. 방향은 갈등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리더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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