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바라보며!
“엄마, 지금은 엄마 눈이 나 안 보고 있어.”
아이가 말했다.
나는 옆에 있었고, 고개도 끄덕였고, 심지어 “응응~”도 했다.
하지만 머릿속에는 저녁 반찬 뭐 하지, 빨래는 언제 걷지,
그런 생각들이 줄줄이 달려 있었다.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무편집 영상처럼
그 순간을 거울로 다시 본다면, 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몸은 옆에 있었지만, 마음은 멀리 출장 중이었을지도 모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옆에 있는 것”과 “같이 있는 것”은 정말 다르구나.
나는 아이 곁에 있었지만, 아이는 나와 함께 있지 않았다.
많은 부모가 ‘충분한 시간’을 가지려 애쓴다.
퇴근 후 놀아주고, 주말마다 나가고,
학원과 숙제 사이를 이리저리 쪼개며
뭔가 함께 하려고 애쓰는 하루들.
하지만 아이는 시간을 초 단위로 기억하지 않는다.
'그때, 내가 진짜 엄마 아빠의 시선 안에 있었는지'를 기억한다.
다섯 시간을 같이 있어도
스마트폰을 보며 “어~ 응 알았어” 하면,
아이는 혼자였다고 느낀다.
반대로 단 5분이어도
눈을 맞추고, “그래서?” 하고, “응, 진짜 속상했겠다”라고 말해주면
그 순간은 아이에게 **“나를 봐줬던 시간”**으로 남는다.
딸이 어느 날 그림을 그리고 말했다.
“이거 엄마가 봤으면 좋겠어.”
나는 설거지를 하며 대답했다.
“응~ 예쁘네~”
건성.건성.
20분 뒤 설거지를 끝내고
“울 딸! 그림 보여줘~” 했더니
딸은 한껏 뾰로통해져 있었다.
“아니야. 엄마 안 봤잖아. 그냥 말만 했잖아.”
그 순간, 성경 속 마르다와 마리아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나는 분명 사랑이라는 ‘의도’를 갖고 있었는데,
아이에게는 관심 없는 엄마 모습만 났았구나...
나 스스로에겐 항상 관대하다. 속마음도 나니깐. “나는 널 위해 열심히 청소하고 있었잖아!”라고.
하지만 아이는 결과로 느낀다.
“지금 엄마 마음은 나한테 머물지 않았구나.”
그제야 조금 알겠더라.
아이에게 중요한 건 부모의 의도가 아니라,
그 마음이 지금 여기 머물렀는지의 여부다.
“함께 있다는 건, 물리적인 동시성이 아니라 심리적 연결감이다.”
이 말이 그렇게 정확할 수가 없다.
시간을 더 낼 수 없다면,
그 순간만큼은 깊게 머물러야 한다.
“그래서?”라고 묻는 표정,
“그랬구나, 속상했겠다”라는 반응,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웃는 얼굴.
그런 순간이 아이 마음속 어딘가에 저장된다.
그게 사랑의 기억이 된다.
아이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라
진심으로 바라봐준 한순간을 통해 사랑을 배운다.
그리고 그 기억은,
평생을 지탱해 주는 마음의 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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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잘 지키기 위한 다짐의 육아법칙7. 마지막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