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아웃 당한 당신에게 필요한 오은영 박사의 인생조언
새벽 세 시, 저는 노트북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화면 속 커서만 깜박이고, 제 머릿속은 하얀 백지처럼 비어있었어요. 다섯 잔 째 마신 커피가 속을 쓰리게 했지만, 그보다 더 아픈 건 저 자신에 대한 실망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할까? 다른 사람들은 다 밤새워서 일하는데.”
그때까지 저는 한계를 개인적인 결함으로 여겼습니다. 극복해야 할 약점이고, 이겨내야 할 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그날 밤, 지쳐버린 제 모습을 바라보며 문득 깨달았습니다. 제가 싸우고 있는 건 저 자신이 아니라, 저 자신에 대한 잘못된 기대였다는 것을요.
“저는 밤 열한 시 이후에는 바보가 됩니다.”
이 문장을 메모장에 적는 순간, 묘한 해방감이 들었습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을 드디어 인정한 것이었어요. 저는 밤늦은 시간에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어요.
대신 저는 새로운 규칙을 만들었습니다. 오전 아홉 시부터 열한 시까지, 제 뇌가 가장 맑을 때만 어려운 일을 하기로 했어요. 오후에는 단순 반복 업무나 정리 작업을. 저녁에는 휴식을.
친구들은 웃으며 물었습니다. “그럼 언제 일해?” 하지만 신기하게도, 일의 양은 줄었는데 질은 훨씬 좋아졌어요. 제 한계를 인정하자, 비로소 제 강점이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극복’이라는 단어에 익숙합니다. 시련을 극복하고,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을 극복하라고 배워요. 하지만 극복이라는 말속에는 폭력이 숨어있습니다. 뭔가를 짓밟고 올라서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어요.
저는 다른 방법을 택했습니다. ‘겪기’였어요.
불안이 찾아왔을 때, 저는 더 이상 “이겨내야 해! “라고 소리치지 않았습니다. 대신 “지금 불안을 겪고 있구나”라고 말했어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리고 기다렸어요. 불안은 파도처럼 밀려왔다가 스스로 빠져나갔습니다.
집중이 안 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억지로 붙들어두려 하지 않고, 스무 분만 함께 있어주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다섯 분 쉬었어요. 다시 스무 분. 또 다섯 분 휴식. 이렇게 세 번 반복하면,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있었습니다.
완벽한 루틴은 며칠을 못 갑니다. 저는 수많은 루틴을 세우고 무너뜨리며 배웠어요. 그래서 이번에는 최소한만 약속했습니다.
첫째, 잠. 취침 시간을 회의 약속처럼 소중히 여기기로 했어요. 누군가 밤늦게 전화를 걸어도 “죄송하지만 지금은 잠자는 시간이에요”라고 말할 용기를 냈습니다.
둘째, 움직임. 하루에 딱 십오 분만, 점심 전에 밖으로 나가기로 했어요. 거창한 운동이 아니어도 좋았습니다. 그냥 걷거나,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셋째, 기록. 하루를 마무리하며 다섯 줄만 적기로 했습니다. 결과한 줄, 과정 세 줄, 배운 점 한 줄. 이 작은 의식이 하루를 온전히 마무리하게 해 주었어요.
한계를 인정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하지 않을 일’ 목록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모든 걸 잘하려던 예전의 저는, 정작 중요한 것에 집중할 시간이 없었어요.
이제는 매주 초에 세 가지를 정합니다. 이번 주에는 하지 않을 일 세 가지를요. 의미 없는 회의, 무한 스크롤, 모든 사람의 비위 맞추기. 이런 것들을 의식적으로 거부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절은 처음엔 어려웠어요. 하지만 점차 깨달았습니다. 무언가를 거절한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뜻이라는 걸요. 그리고 그 선택이 쌓여서 제 인생의 방향을 만든다는 걸요.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직도 완벽주의자입니다. 모든 걸 완벽하게 하고 싶은 욕구는 여전해요. 다만 이제는 그 욕구와 협상합니다.
“오늘은 80%만 해도 괜찮아.”
“이번엔 실패해도 다음에 더 잘하면 돼.”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하는 게 중요해.”
이런 말들을 스스로에게 건넵니다. 처음엔 거짓말 같았지만, 점차 진심이 되어갔어요.
혹시 이 글을 읽으시는 분도 새벽 세 시의 저처럼, 자신과 싸우고 계시다면 제안해드리고 싶습니다. 일주일만 실험해 보세요. 거창한 변화가 아니라, 작은 인정부터 시작해 보시면 어떨까요.
월요일에는 당신만의 한계 선언문 세 줄을 써보세요. 화요일에는 가장 어려운 일을 스무 분씩 나누어해 보시고요. 수요일에는 점심 전 십오 분만 산책하고, 저녁에 다섯 줄 일기를 써보세요.
목요일에는 하지 않을 일 세 가지를 정하고 지켜보세요. 금요일에는 이번 주 느낀 점을 한 줄로 정리해 보시고요. 그리고 주말에는, 죄책감 없이 쉬어보세요.
한계를 인정한다는 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과 화해하는 것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에너지를 정말 중요한 곳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저는 더 이상 새벽 세 시에 멍하니 화면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밤 열한 시가 되면 노트북을 덮고, 내일 아침을 기다려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맑은 정신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한계는 벽이 아니라 경계선입니다. 그 안에서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어요. 모든 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때, 비로소 정말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한계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 한계 안에서,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시겠어요?
*오늘부터 한 가지만 인정해 보세요. “저는 이것만큼은 못해요”라고. 그 순간부터 진짜 가능한 일들이 보이기 시작할 겁니다.*
>>원문보기 :인생의 한계 뛰어넘지 말아야 하는 진짜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