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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Aug 23. 2024

먹다 : 이번 생에 몇 줄의 떡을 먹었을까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다.


엄마: 어디 갔다 이제 와?

나 :은진이네 집.

엄마 : 밥 먹어야지

나: 은진이네서 먹었어.


같은 시간,

은진이네 집에서도 비슷한 대화가 오갔을 것이다.


은진: 응, 지선이네서 밥 먹었어.


그리고 우리 엄마와 은진이 엄마가

시장에서 마주쳤던 어느 ,

아이고 우리 딸이

자꾸 그 집에서 밥 먹어서 어떡해,

하고 누군가 먼저 말했을 것이고

나머지 한 명은 응? 우리 집? 

하고 의문을 품음으로써 모든 것이 탄로 났다.


우리는 하교 길에 엄마 몰래

매.일. 떡볶이를 먹었다.

돈을 어떻게 구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번갈아 돈을 마련해 와 트럭 앞에 서서

말갛고 빨간 국물에 동동 떠있는 떡과 야끼만두를 먹었다.


이사를 가게 되면서부터는

상가라는 곳에서 즉석 떡볶이를 먹었다.

그것은 또 그것대로 신세계였는데

순대 튀김과 양념을 바른 문어다리는

이 세상의 맛이 아니었다.


그 아이는 자라서 연애를 한다.

나이도 많은 남자가 자꾸 떡볶이를 먹자고 한다.

신나서 떡볶이를 먹는다.

둘은 십여 년이 지나 아이 둘을 데리고 그 떡볶이 집에 갔다.


위치가 여기였던가.

이상하네, 분명 옆 건물이었는데.

한참을 헤매다가 들어갔다.

"모두랑" 이름은 그대로인데 더 좁아졌다.

주인 아저씨 얼굴을 보고서야 이 집 맞네

 안심함과 동시에

좁아진 매장을 걱정할 뻔했는데

아무래도 건물을 사신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걱정을 살포시 넣어두었다


떡볶이는 요즘 식으로 조금 더 매콤해져 있었고

식기는 말끔해져 있었으며

볶음밥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여전했다.

"치즈 많이 줘요, 적당히 줘요?"

라는 질문까지도 그대로였다.

십 년 전에도 귀를 의심하게 했던 그 질문은

여전히 나를 망설이게 했다.

적당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까?

많이 달라고 말하면 돈을 더 내라는 건가?


결국 

 (뭐가 어찌 되었건 일단 ) 이요

 라고

10년 전과 변함없이 대답한다.




이제 떡볶이를 먹는 일은

음식을 먹는 일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떡과 어묵과 면과 튀김을 고루 씹고

내 손으로 넣을 수 없는 양의 조미료가

가득 들어있는 국물을

꿀꺽꿀꺽 삼킬 때

떡볶이를 사이에 두고 함께했던

아이부터 어른까지

수많은 사람과 시간을 기억한다

뱃속에 들어간

가래떡의 길이가 점점 늘어간다


적당히 맵고 적당히 달고 적당히 해로운 떡볶이는

영양제처럼 몸 구석구석 스며들어

긴장을 풀어주고 노곤함을 선사한다.


떡볶이를 대체할 수 있는 음식이 있을까?

나이의 앞자리가 바뀔 때마다 생각해 보지만

아직 떠오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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