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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아저씨 Oct 11. 2015

영화를 거닐다

부산국제영화제(BIFF)에서 만난 3편의 영화 


영화제에서 보는 영화는 평상시 상영관에서 보는 영화는 무슨 차이일까? 조금 덜 상업적인 영화? 조금 더 예술적인 영화? 글쎄다. 


평상시에도 ‘영화 보는 것’을 단순히 영화 한 편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만 보는 것이라면 집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지 않은가. ‘영화를 본다는 것’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2시간 동안, 불 꺼진 어두운 곳에서, 그 사람과(혹은 혼자서), 영화를 통해 뭔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아닐까?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자면 그렇다는 얘기다. 


부산 해운대 비프빌리지.
영화의 전당에 마련된 현장 매표소


그러니 영화제에서 보는 영화는 더 각별할 수밖에 없다. 단순히 2시간 동안 상영되는 영화를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영화제 시작 전부터 어떤 영화를 볼지 계획을 세우고(대부분 계획대로 되진 않지만),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와 그곳의 음식을 즐기고, 함께 간 사람과 추억을 공유하는 것. 그래서 역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의 백미는 영화제(라고 감히 생각한)다. 


기다리던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도착한 것은 폐막을 하루 앞둔 9일이었다. 대부분 개막 첫 주말에 오곤 했는데 이번에는 게으름을 피웠다. 영화 표도 한 장 예매하지 못 했다. 무작정 새벽에 차를 달려 부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현장 예매 창구에서 점 찍어 놓은 영화 네 편을 얘기했다. <유스> 한 편만 빼고 세 편은 다행히 표를 구할 수 있었다. 


<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 <강도들>, <찬란한의 무덤> 세 편이었다. 각각 호주, 프랑스, 태국(합작) 영화다. 예매할 때까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모두 ‘GV’가 있는 영화들이었다. 영화제의 즐거움을 배가 시키는 GV를 세 편이나 고른 것으로 <유스>를 끝내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영화 <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
무대에 오른 제레미 심스 감독(가운데).


◇다윈으로 가는 마지막 택시(Last Cab to Darwin)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다룬 영화다. 택시기사인 주인공 렉스는 암 판정을 받고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는 통보를 받는다. 그는 주저 없이 죽기 위해 다윈행을 선택한다. 호주의 북부에서 안락사를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되고, 안락사를 적극 옹호하는 한 의사를 찾아가 자신의 죽음을 부탁하기 위해서다. 누구에게도 의지하기 싫어하는 렉스는 3000km를 운전해 대륙을 횡단한다. 


하지만 그 ‘죽음의 여정’에서 그가 발견하는 것은 어떻게 죽느냐가 아니라 오히려 어떻게 사느냐다. 떠날 때는 미련 없이 떠났지만 막상 죽음을 앞두고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잊지 못한다. 지독한 그리움에 시달린다. 그는 깨닫게 된다. 어떻게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누구 곁에서 죽는지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렉스가 죽으러 가는 여정에서 마주하는 호주는 광활하고 아름답다. 유독 이 영화는 해가 지는 낙조 장면이 많다. 황무지에서 바다에서 장엄하게 펼쳐지는 낙조의 장면은 쓸쓸히 죽음을 마주하는 한 사람의 삶과 닮았다. 영화 내내 흘러나오는 음악(호주 컨트리 음악인 듯한)과 영화의 배경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영화가 끝난 뒤 무대에 오른 제레미 심스 감독은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했으며 차를 몰아 3000km를 달려간 택시 기사 렉스도 실제 인물이었다."라고 밝혔다.   


영화 <강도들>. <사진=BIFF 홈페이지>
GV를 위해 무대에 오른 감독과 여주인공.


◇강도들(The Crew)

프랑스에 거주하는 이주민 갱단과 범죄자들이 주인공이다. 항상 능숙하고 치밀하며 완벽한 강도행각(주로 수송차로 옮기는 물건을 턴다)을 벌이던 야니스는 조직의 일원이자 동생의 결정적인 실수로 위험에 빠진다. 경찰과 다른 마약조직원들에게 쫓기는 야니스 일행은 결국 자신의 가족들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처한다.  


전형적인 프랑스 누아르 영화를 부산에서, 오랜만에 만났다. 영화는 단 한 번도 곁눈질하지 않고 결말을 향해 직진한다. 결말은 물론 프랑스 누아르가 대부분 그렇듯 그리 행복하지 않다. 도심 총격전, 거리 추격신 등은 마이클 만 감독의 <히트>를 연상시킨다. 영화가 끝난 후 여주인공과 함께 오른 쥘리엥 르클레르크 감독은 자신이 ‘마이클 만 키드’라는 점을 숨기지 않는다. 그의 누아르 영화를 즐겨 봤고, 그를 존경한다고.   


1시간 30분의 비교적 짧은 영화지만 시종일관 긴장감과 생생함이 넘친다. 감독은 모든 자동차 추격신, 충돌 장면은 CG를 사용하지 않고 100% 직접 촬영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심지어 사실감을 살리기 위해 영화에 출연하는 갱단은 실제 프랑스 뒷골목에서 활동 중인 갱단을 캐스팅해 영화에 출연시켰다고 한다. 연기가 아니라 생활이었던 것이다. 


영화 '찬란함의 무덤'. <사진=BIFF 홈페이지>


◇찬란함의 무덤 <Cemetery of Splendour>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티켓 카탈로그에는 이 영화에 대해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감독 특유의 서정적이고 관능적인 분위기가 잘 드러난 영화. 자원봉사 간병인 젠지라는 알 수 없는 수면병에 걸려 괴로워하는 젊고 잘생긴 병사를 간호한다. 마법, 치유, 그리고 로맨스의 기억이 어우러져, 젠지라는 자신과 주변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데….”

솔직히 영화를 보다가 중간중간 졸았다. 한 컷은 한없이 길고, 음악 없이 엠비어스로만 사운드가 처리된다. 이런 유의 영화는 정말 가장 컨디션이 좋을 때 감상해야 한다. 핑계를 대자면 너무 열악한 상황에서 이 영화를 봤다. 오후 8시. 저녁을 먹은 직후인데다 하루 종일 영화로 피곤했고, 게다가 영화의 소재가 ‘수면병’이다. 

 

수면병에 걸린 40명의 군인들, 태국의 숲, 학교를 리모델링한 병원, 네온 형광등, 차갑게 빛나는 전광판. 이 모든 것이 잠과 깨어남, 영화와 현실, 역사와 정치에 대한 사유와 이미지를 드러내기 위해 감독이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하는데 사실 영화에 몰입하기 쉽지 않았다. 영화가 끝난 후 서둘러 영화관을 나왔다. GV를 위해 무대에 오르는 감독한테 왠지 미안했기 때문이다. 다음에 컨디션 좋을 때 꼭 다시 한 번 이 영화를 보리라 마음먹으면서.
 
by 책방아저씨
https://www.facebook.com/booksbooster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영화 티켓들.
2015년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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