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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라 '영화에서처럼'

by 김성대


1970년대 후반 광화문에서 음반 가게를 운영하던 김영이 "한국 음악은 들을 게 없다"던 손님들을 접하고 "한국 음악을 듣게 만들겠다" 각오한 뒤 세운 회사가 동아기획이라는 건 이쪽 바닥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에겐 상식이다. 들국화, 김현식, 장필순, 한영애, 푸른하늘, 봄여름가을겨울 등이 그렇게 한국 대중에게 배달됐다.


이소라는 동아기획이 들국화와 김현식이라는 핵심 동력을 잃고 살짝 휘청이고 있을 때

김현철의 추천으로 등장한 천군만마였다.

그룹 낯선사람들에서 남다른 노래 실력을 들려주고 김현철이 프로듀싱한 동아기획 데뷔작으로 큰 성공을 거둔 그는, 자신이 프로듀서를 맡은 이 두 번째 작품으로 신scene에 확실한 존재감을 새겼다.


조규만과 김현철이 그린 각기 다른 재즈 무드<쉼>과 <청혼>와 김동률의 클래시컬 접근<너무 다른 널 보면서>, 김광진의 정통 팝 감성<기억해줘>이 앨범 제목처럼 영화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사이, 강력한 얼터너티브 록 기타로 균열을 내는 조규찬의 반항기<화>가 앨범에 조화를 선물한다. 그 <화>의 혼돈을 지그시 누르며 흐르는 다음 곡 <사랑> 속 어쿠스틱 감성이 마찬가지 조규찬 것이란 데선 프로듀서 이소라의 재치가 엿보인다.



이소라는 김동률이 쓴 <너무 다른 널 보면서>와 허승경과 함께 쓴 <기억해줘>를 뺀 모든 곡의 노랫말을 썼다. 낯선사람들의 동료 고찬용이 선물한 재즈 퓨전의 세계 <부랑자>와 <복잡해>도 가사만은 이소라의 것이다. 가수라면 자기 노래 가사 정도는 스스로 써야 한다는 주의를 가진 사람들에게 동감하는 듯한 이 철저한 DIY는 앨범에 대한 아티스트의 주인 의식이 얼마나 확고한지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멀게는 장덕 같은 싱어송라이터에서 비롯된 여성 아티스트로서 이러한 주체성은 이후 아이유 같은 후배 음악가들이 적극 참고, 실천한다.


2025년 11월의 마지막 밤.

다음 달이 크리스마스 달인 줄 어떻게 알고 마지막 곡은 유희열이 쓴 재지 트랙 <Happy Christmas>다.


이소라 2집은 한국 음악 무시하던 옛 고객들에게 김영이 가한 또 하나의 일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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