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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말 볼 수 있나

김숨, 『무지개 눈』

by 정선생

어린 시절, 엄마의 눈이 보는 세상이 궁금한 적이 있었다.

엄마가 죽으면, 내가 엄마를 볼 수 없다는 사실보다

엄마가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 슬펐다.

같은 말인 것 같지만 적어도 그 시절 나에게는 다른 말이었다.

엄마의 눈이 세상을 항상 볼 수 있기를 바랐던 어린 마음.


우리는 언제나 본다. 눈을 감았을 때에도 눈꺼풀 안을 본다. 그러나 우리는 보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믿는다.

눈을 감아도 눈은 여전히 보고 있듯이, 눈이 아니어도 우리는 언제나 본다.

먹어 본다. 맡아 본다. 만져 본다. (소리를) 들어 본다. (물건을) 들어 본다.

만나 보고, 사귀어 보고, 고백해 보고, 사랑해 보고, 헤어져 본다.

보이지 않는 사람은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을까.

눈에 보이는 형상에 갇힌 우리는 맛도 냄새도 감촉도 소리도 무게도 모두 형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게 사실일까.

어쩌면 김숨이 써 놓았듯, 보이지 않는 사람은 우리가 보기 때문에 보지 못하는 것을 더 많이 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에

먹어 보지 않기도 맡아 보지 않기도 만져 보지 않기도 (물건을) 들어 보지 않기도 한다.

보이기 때문에 만나 보지 않기도, 사귀어 보지 않기도 고백해 보지 않기도 한다.

사랑해 보지도 헤어져 보지도 않는, 눈으로 보는 우리들.

어쩌면 보이지 않기에 만나 보고 사귀어 보고 고백해 보고 겪는 슬픔이나 상처보다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믿)는 우리들의 상처가 더 클지도 모른다.

어쩌면 보이지 않기에 사랑해 볼 수 있고 헤어져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김숨의 무지개 눈은 그런 생각을 던진다.

우리가 무심결에 내뱉는 수많은 본다, 볼 것이다, 보았다에 관한 의심들.

우리는 정말 무언가를 보나, 볼 수 있나, 보았나라는 의문들.


언젠가 녹아내릴지 모르는 눈을 소중히 생각하면서

눈으로 보는 세상을 향한 거만한 믿음에서 놓여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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