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 영역의 확장
인간의 물건들은 인간을 닮아있다. 신발은 인간의 발을, 모자는 머리를, 숟가락은 혀를, 벨트는 허리를, 소파는 인간의 앉은 모습을, 식탁은 인간의 다리를, 컴퓨터는 인간의 뇌를, 인터넷은 뉴런과 흡사하다. 비슷한 것을 나열하자면 아마 한도 끝도 없을 것이다. 이런 물건들은 사람의 신체의 한 특정 부분을 강화시키는 형태로 존재한다. 새끼손가락을 강화시키기 위하여 사람들은 장갑을 끼고 피부의 기능을 강화시키려 옷을 입는다. 물건을 사용하는 모든 이유는 더 뛰어난 능력의 몸을 소유하기 위해서 혹은 더 뛰어난 능력의 정신을 소유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전화는 그중에서도 매우 특별한 능력을 지니게 만든다. 앞서 말한 데로 전화가 그저 듣는 귀와 말하는 성대의 강화된 측면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물론 전화는 수천수백수만 킬로미터 밖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능력과 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 그러나 전화가 강화시키는 진정한 능력의 측면은 어떤 공적인 공간에서의 대화도 진정으로 사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측면이다. 듣는 사람은 두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고 말하는 사람도 두 사람으로 한정되어 있는 아주 묘한 상황에서 두 사람이 어디 있든-지하철이든, 카페이든, 사람이 많은 놀이공원이든-자유로운 대화를 실행하도록 한다. 그것은 아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람이 아주 많은 장소에서 자유롭게 남편과 이혼을 고민 중이라는 아주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게 만드는 자연스러운 획기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어디에서든 입만 가리고 소리를 낮추고 하고 싶은 말을 전달할 수 있게 만드는 자유로움이 바로 윌리엄 벨이 진정으로 인류에게 선물한 것이 아니었을까?
전화는 또 한 가지의 굉장히 특별한 능력을 선사하는데 바로 얼굴을 보지 않고, 표정을 보지 않고도 말할 수 있고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의 표정과 시각적 효과가 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공유하고 있는 합의점이다. 내가 그 말을 할 때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 지를 감출 수 있는 것은 나의 결점을 숨기기에 아주 매력적인 장치이다. 거짓말을 할 때 땀이 나고 동공이 불안정한 것도 상대방에게는 드러나지 않는다. 진실을 고백할 때의 떨리는 손 끝과 소름이 끼칠 때 오소소 일어나는 소름도 상대에게는 보이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렇기에 전화는 매우 사적이다. 내밀하고 조용하며 세상에 알리기 꺼려지는 내용들이 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사람들은 험담을 하고 사랑을 표현하며 누군가와 싸움을 시도하고 욕을 하며 얼굴을 대면하고는 할 수 없을 말들을 줄줄이 쏟아내곤 한다. 자신의 약한 부분이 완벽하게 가려지게 만들기 위해서 연기해야 할 부분은 당신의 발음과 목소리 그리고 숨소리 정도이기 때문에.
모든 것은 말하는 사람에게 달렸다. 자신을 숨기거나 혹은 과장할 것인가? 혹은 더 완벽하게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서 부연설명을 할 것인가? 그래서 세상은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눠진다. 전화 뒤에 숨는 것이 편한 사람과 전화 밖까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편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