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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돋이 May 14. 2018

허공

아슬함의 위로

탁 트인 곳을 보고 싶을 때가 있다. 하늘이랑 이어져 있는 바다라던지, 세상의 끝과 이어져 있는 도시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산 정상이라던지. 그냥 어디든 멀리까지 볼 수 있는 곳이라면 좋다. 넓은 곳을 보고 싶어 할 때는 대부분 나의 삶이 퍽퍽할 때다. 마치 건빵 한 봉지를 마실 것도 없이 다 먹어야 할 때처럼. 삶에 수분기라고는 한 방울도 없어서 누군가 살짝이라도 건들면 마치 먼지처럼 전부 날아가 버릴 것 같을 때다. 그렇게 삶이 건조해서 위태로울 때 우리는 어딘가 끝이 보이는 곳으로, 넓은 곳으로 가고 싶어 한다.


그 공간들은 꼭 마실 것과 같아서, 우리는 삶의 갈증을 해소하러 그곳으로 떠난다. 팍팍하고 위태로운 정신과 몸을 더 힘들게 하면서 마지막 힘을 다해 그곳에 도착한다. 그곳은 시야에 들어왔다는 그 단순한 한 순간 만으로 고구마로 막혀있던 목이 우유로 인해 풀어질 때처럼 얹혀있던 무엇인가를 살살 달래서 내려가게 하고, 소화되게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만들고,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오만해져 있던 나를 겸손하게 만들고, 그 광활함 앞에 아무렇지도 않게 무릎 꿇게 만든다.


세상에 필요한 것이라고는 코 끝으로 느껴지는 신선한 숨 밖에 필요 없는 것처럼, 이미 필요한 건 다 가지고 있는 것처럼 만들어낸다.

그것들은 그 넓음이 가지고 있는 힘에서 온다. 우리는 먼 바다를 바라볼 때, 세상의 끝에 서있을 때, 삶이 가진 광활함과 넓음 앞에서 그 끝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가득 채우고 있는 허공을 멀리 담는다. 담아진 허공은 내 시각이 가지고 있는 비어있는 부분으로 넓게 들어와서 내 폐를 확장시킨다. 세밀한 생각과 문장, 단어, 이미지로 빽빽하게 메워져 있어 보이지 않던 것들에 허공은 정신이 숨겨 놓은 가느다란 빈틈으로 들어와 청소기로 오래 쌓인 먼지를 닦아내듯 쓸모없는 자잘한 것들을 지워낸다.


비워져 있는 모든 것에 우리는 안도한다. 그 아슬아슬함과 알 수 없음에 우리는 안정감을 느낀다. 세상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없어서, 혹은 가지고 있는 것이 많아서 그토록 슬퍼하고 고통스러워하던 우리가 아무것도 없음에 안도하고, 숨을 쉬고, 위로받는다. 내가 나 스스로 비워낼 수는 없으니, 나를 엎드리게 만들어 달라, 버리게 만들어 달라 우리는 허공을 찾는다. 그 앞에서 나의 작음을 확인하고, 그것에 안도하고, 허공의 찬란함을 경배하고, 그것을 유지하고 있는 무언가 더 큰 것에 굴복시켜달라 우리는 허공을 찾는다. 내 인생의 의미는 내가 찾지 못한 것뿐이지 어디엔가는 있지 않겠느냐고 따지기 위하여 우리는 넓은 빈 곳에 제 발로 찾아간다.


우리의 저 안 끝쪽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의 저 깊은 끝에는 아마 아슬하고 끝없는 것이 내재해 있을 것이다. 그곳에 다가갈 수 있는 허공이 스스로에게 주어져 있는 사람이라면, 마음 안에 공기가 통하는 사람이라면, 그는 분명 모든 것에 안도하고, 편안한 숨을 쉬며, 깊은 잠을 어디서든 취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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