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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돋이 Aug 04. 2017

커피

각성제와의 연애

커피는 매력적이다.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정신 차려보면 연락하고 있는 나쁜 연애 상대 같다. 자꾸 지출하게 되는 비용과 가슴 두근거림, 건강에 좋은지 나쁜지 헛갈리는 요소들, 뇌에 일어나는 강렬한 화학작용. 아무래도 커피는 좋지 않은 연애를 닮았다.  

  대학생들과 사회 초년생들, 중산층에게도 부담되는 가격의 지출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도시는 커피에 지독히도 빠져있다. 같은 길목에서도 더 가고 싶은 카페를 쉽게 찾을 수 있다는 게 경험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증거일 것이다.  

  나는 커피와 사랑에 빠져있는 이 도시가 지독히도 슬프다. 커피를 들고 있는 사람들은 저녁 열 시 넘어 불이 켜진 사무실을 연상시킨다. 사람들은 깨어있어야 하고, 자꾸 지쳤다고 소리 지르는 나의 몸과 내면을 애써 외면해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나 많은 커피집은 정신을 붙들어 매야만 하는 사람들 다수의 노력인 것만 같다.

  더욱 슬픈 것은 우리가 누군가를 만나 시간을 보내는 대부분을 커피와 함께 한다는 것. 그것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하며 보낼 공간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어쩌면 우리는 누군가와 함께 할 때도 긴장을 풀고 늘어진 상태여서는 안된다는 것을 의미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신경 써야 하고 재치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흥미로운 주제를 꺼내야 예의 바른 사람이며 관계를 지속해나갈 수 있다. 멍하니 함께 앉아서 신경다발을 냅다 풀어낸 채 아무 말없이 시간을 보내는 관계는 이 사회에서 '시간 낭비'이기 때문에 희귀하다.  

 

 커피에 의지하는 이 사회에서는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을 행하는 사람들이 부족하다. 지루한 일을 하고, 하기 싫은 일을 하고, 자꾸만 졸음이 밀려오는 일들이 일상인 사람들이 그 일상을 지켜내기 위한 위안으로 삼고 있는 것이 커피가 아닐까. 누군가에게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이냐고 물어봤을 때 이 곳은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커피가 마치 여유의 상징으로 둔갑하고 바쁜 하루의 한잔의 휴식으로 받아들여지지만 그것은 하루를 더 바쁘게 보내려는 이 보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라고 말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게으름이 악덕인 사회에서 각성시켜주는 커피는 분명 신의 음료이다. 그러나 커피와의 연애에 흠뻑 빠져있는 한 명으로 커피가 진정한 여유의 상징으로 거듭나는 사회가 도래했으면 좋겠다는 작은 소망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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