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기는 것과 담는 것
차를 마시는 것을 좋아하는 데 그것은 덥혀진 잔이 손에 감기는 느낌이 따뜻해서 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 적이 여러번이다. 물론 차의 향과 맛 자체도 매력적이지만 그것을 시각적으로 표현해내는 잔은 언제고 매력적이다. 잔을 고를때는 잔의 끝이 얇게 날렵한 것을 좋아한다. 마시고 났을 때 잔의 가장자리에 매달린 물방울이 잔의 바깥면을 타고 흐르지 않게. 그리고 손으로 쥐었을 때 너무 뜨겁지 않도록, 혹은 차가 너무 빨리 식지않도록 적당한 두께감이 좋다. 차의 색과 어우러질 잔의 색도 굉장히 중요하다.
무엇인가를 마실 때는 입으로만 그것을 마시는 것이 아니라 손으로 눈으로 함께 마시게 된다.
그래서 잔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것이 어떤 마실 것을 가장 잘 표현해 내는지를 상상하기 위해서. 어떤 컵은 눈 오는 날의 코코아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어떤 컵은 드물게 개운하게 일어난 아침의 커피를 닮았다. 또 운동하고 들어온 직후의 차가운 오미자차가 생각나는 유리컵도 있고, 달달한 믹스커피가 담기면 귀여울 컵도 있다.
담는 것과 담기는 것의 역학관계는 오묘하다. 담기는 것은 담는 것의 형태에 따라서 그 형태가 변화된다. 액체는 자유로이 자신이 들어간 곳의 형태를 취하고 불편해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만보면 담기는 것은 담는 것의 탄생을 좌우한다. 물은 어느 컵에나 들어가도 물이지만, 컵은 차를 담는 잔, 와인을 담는 잔, 물잔, 아이스커피를 담는 유리컵, 따뜻한 커피를 내린 머그컵 등으로 그것의 용도를 가지고 태어난다. 와인은 어디에나 담겨져 있어도 와인이고, 커피가 밥그릇에 담겨져 있어도 커피일 텐데, 우리는 꼭 담는 것의 용도를 한정시킨다. 그것의 맛과 향이라는 시각적이지 않은 것들을 형태화 시켜내기 위해서.
마음과 말도 그렇다. 마음은 어디에 담겨도 똑같은 마음일텐데 와인잔에 담긴 생수가 불편하듯이 그것이 맞지 않는 말에 담기면 불편해지기 일쑤다. 종일 뜨거웠으면 하는 커피는 텀블러에 담는 것처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은 그 마음을 위해 태어난 다정한 말에 담아야 한다. 형태가 없는 것을 어떻게 형태화 시켜낼 지에 대한 것들이다.
말을 고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잔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는 일은 당연한 것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