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경한 브랜드 디렉터의 향연 I>에 연이어 3명의 브랜드 디렉터를 소개하고자 한다. 훌륭한 디렉터들은 많지만 그중에서도 현재의 산업을 이끌고 있거나 이끌어 온 분들, 현실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분들과 실제로 운영해 본 경험이 있는 분들 중심으로 선정했다. 글의 영감은 대부분 이 분들의 강의와 책에서 비롯됐다. 자 이제 그들이 구축해 온 브랜드 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전 카카오 대표이사, 전 NHN 마케팅 디자인 총괄부문장
"브랜딩의 첫 단계는 비즈니스 콘셉트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이 일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매일 고민해야 비즈니스의 본질이 드러나고, 그 결과 기획이 선명해져서 디자인 결정이 용이해집니다."
사회 초년생부터 좋아한 디자이너자 기획자이자 발행인이다. 학생 시절 우연히 접한 김미경 쇼에서 그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고 그 후 그의 길을 지켜보며 꿈을 키웠다. 처음은 어떻게 하면 조수용 발행인 같은 직업을 가질 수 있을까에서 시작했다. 그 후로는 자연스럽게 질문이 이어졌다. “어떻게 저런 창의적인 생각을 할까?”, “어떻게 하면 저런 브랜드 경험을 설계할 수 있을까” 등 여러 질문을 쏟아내며 그의 행보를 지켜보았다. 브랜드 전략 기획자라는 직업에 대해 의심되고 방향성이 흔들릴 때마다 그의 영상을 찾아봤다.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든 그의 감각과 설계 방식은 내게 끊임없는 참고점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조수용 발행인은 타고난 디자이너다. 그의 작업에는 언제나 브랜드와 디자인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다. <일의 감각>에서 브랜드 컨셉에 맞는 올바른 디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대목은 많은 기획자가 디자이너가 목말라하는 부분을 정확히 찍어줬다. 나 역시 항상 목말랐다. “우리가 만든 기획과 디자인은 정말 이 브랜드에 맞는가”, “지나치게 트렌디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건 아닌가” 등 관계성에 대해 고민했다. <일의 감각>에서는 이런 고민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발행인은 과정의 중요성과 컨셉과 디자인의 연관성에 대해 강조한다. 무엇이 ‘맞는 디자인’이고, 어떤 기획과 실행의 흐름이 필요한지를 일관되게 보여준다.
디자인 전공자라면 1학년 때 가장 먼저 듣는 이야기, 디자인은 프로세스가 중요하다는 말이 생각난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닌 착실하게 한 발짝 기획을 밟아가며 디자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브랜드에서도 이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맞는 디자인’이란 누구에게나 보기 ‘좋은’ 디자인이 아니고 우리 브랜드의 지향점과 ‘맞는’ 디자인입니다. 이 관점으로 디자인을 보기 시작하면 세상에 좋은 디자인과 나쁜 디자인은 없습니다. 지향점과 취향의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 조수용, 『일의 감각』, REFERENCE BY B
결국 디자이너는 ‘내가 원하는 디자인’을 하기 전에 ‘서비스나 제품에 가장 맞는 디자인’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 조수용, 『일의 감각』, REFERENCE BY B
이렇듯 감각적인 아이디어는 상식에서 착안해 본질부터 다듬어 나가는 겁니다. 사실 본질에서 시작하는 아이디어든, 자다가 벌떡 일어나 떠올린 아이디어든, 아이디어 자체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이디어는 어디에나 있습니다. 정말 중요한 건 여러 이해 당사자들을 한 방향으로 이끌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실행’하는 겁니다.
- 조수용, 『일의 감각』, REFERENCE BY B
D&Department 대표
"나는 자주 ’브랜드는 모두 함께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브랜드는 외주 디자이너가 브랜딩이라면서 하는 일 같은 게 아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의식이 ’찰싹찰싹’ 쌓여서 대부분 완성된다."
하우스오브신세계 헤리티지의 브랜드를 개발하며 나가오카 겐메이의 책에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실제 D&Department와 유사한 점이 많아 공예 기반의 브랜드를 바라보는 방식과 브랜딩 하는 방법에 대해 많이 배웠다. 사실 나가오카 겐메이의 책은 대학 시절부터 읽어왔다. <디자이너 생각위를 걷다>에서는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태도를 배웠고 <디자이너 함께하며 걷다>에서는 기획자로서 일에 대한 태도를 배웠다. 마지막으로 <디자이너 마음으로 걷다>에서는 브랜드 운영하는 방식에 대해 배웠다.
솔직히 말해 그의 고지식한 말투가 좋다. “명함을 받고 일주일 뒤에 그것을 보았을 때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휴지통에 버린다”, “진심으로 연락을 취하고 싶으면 메일 따위는 이용하지 말라” 등 곱씹을수록 맞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브랜드를 대할 때 또한 태도에서 출발한다. 어떻게 하면 브랜드와 고객 사시의 접점을 더 나은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기본을 잊지 않고 매번 되묻는다. 그가 자주 언급하는 단어—청소, ‘~다움’, 큐레이션도 모두 그런 태도에서 비롯된다.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이나 디자이너라면 그의 책을 한 번쯤은 꼭 읽어보길 권한다.
단순 작업이나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그저 전달하는 일도 많다. 그런 잡무조차 ‘개성’이나 ‘-다움’으로 색깔을 더할 수 있다. 브랜드는 그렇게 매일 모두가 만들어가고 쌓아가는 ‘모습’이다. 그러니 소중하다.
- 나가오카 겐메이, 『디자이너 마음으로 걷다』, 안그라픽스
정보로, 나아가 숫자로 판단하지 않고 ’감각‘을 날카롭게 연마한다. 하루의 매출을 만들어준 ’상품‘에 집착하지 않고 진정으로 생활자에게 제안하고 싶은 상품을 즐겁고 자연스럽게 소개한다. 그 결과 매출이 형성된다. 숫자적 목표를 세우면 모든 사람이 숫자만 주목한다. 그 결과 단가가 높고 잘 팔리는 상품을 손님에게 권하는 가게가 된다. 그리고 그런 ’목표‘에 대해 삐걱 거리기기 시작한다. 무엇을 위해 이 회사에 입사했는지 알 수 없어진다.
- 나가오카 겐메이, 『디자이너 마음으로 걷다』, 안그라픽스
나도 기획자로서 항상 자신이 무언가에 콘셉트를 부여할 때 그 내용물의 질이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 나가오카 겐메이, 『디자이너 마음으로 걷다』, 안그라픽스
쓰레기 같은 물건도 10만 엔짜리 의자도 똑같이 진열장에 놓고 둘 다 잘 팔기 위해서는 그 이외의 요소가 당연히 중요하다. 그것은 세련됨이거나 순수함이거나 웃음이다. 동시에 청결이거나 결과적으로 제대로 된 만듦새도 된다.
- 나가오카 겐메이, 『디자이너 마음으로 걷다』, 안그라픽스
우리의 생활은 수많은 도구로 성립된다. 그리고 그 도구를 애정하며 꾸준히 사용하려면 역시 누가 어떤 마음으로 만든 물건인지 아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 나가오카 겐메이, 『디자이너 마음으로 걷다』, 안그라픽스
Red Antler 대표
브런치에서 가장 자주 인용하는 책의 저자이다. 대행사에 다닐 때는 <미치게 만드는 브랜드>를 항상 끼고 살았다. 그 책 안에는 문제에 부딪혔을 때 헤쳐나갈 수 있는 방안이 있었다. 그 책 안에는 실무에서 마주치는 수많은 문제를 헤쳐 나갈 수 있는 단서들이 있었다.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으며 당장 컨설팅에 적용할 수 있는 사례와 문장도 많았다. 경험이 부족했던 나에게는 단비 같은 책이었다.
당시에는 스타트업 브랜딩 프로젝트를 자주 맡았다. 문화와 규모를 막론하고 스타트업 대표들의 브랜드에 대한 태도나 성미는 놀라울 만큼 책 속 묘사와 닮아 있었다. 책에 나오는 날카로운 질문들을 인터뷰에 활용하면 항상 고객이 만족하는 인사이트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현재에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다. 다만 컨설턴트 때처럼 뾰족한 질문과 답을 인하우스에서 제시할 수 없다. 인하우스에는 위계가 있으며, 특히 top-down 구조에서는 브랜드 전략을 밑에서 구축하기 상당히 어렵다. 그럼에도 현재 브랜드의 문제점을 찾아가는 방안이나 문제에 대한 답을 얻는 데에 있어 이보다 좋은 책은 없다.
지금도 이 책은 여전히 유용하다. 다만 인하우스의 구조 안에서는 대행사처럼 뾰족한 질문과 명확한 답을 던지기 어렵다. 위계가 분명한 조직이자 탑다운 구조에서는 전략을 아래에서부터 설계해 나가는 데 분명한 제약이 있다. 그럼에도 브랜드의 본질을 다시 들여다보고 문제의 실마리를 찾는 데 있어 이 책만큼 실용적인 도구는 아직 만나지 못했다.
창업자들은 흔히 브랜딩을 중요한 문제를 해결한 후에나 걱정할 문제, 그러니까 가장 마지막에 해치울 숙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틀려도 한참 틀린 생각이다. 브랜드는 어떤 기업이 행동거지를 어떻게 할지 늘 현재 진행형으로 알려주는 등대여야 한다.
- 에밀리 헤이워드, 『미치게 만드는 브랜드』, 알키
오늘날 가장 잘 나가는 신규 브랜드를 가만히 떠올려보면, 이들이 성공한 건 사람들의 마음속에 새로운 요구를 불어넣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아주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사람들이 바라왔던 요구에 대해 참신한 해결안을 내밀었다고 봐야 한다.
- 에밀리 헤이워드, 『미치게 만드는 브랜드』, 알키
같은 언어를 공유할 때 소속감을 느낄 수 있다. 브랜드는 어떤 식으로 말할지 선택함으로써 누구를 위한 브랜드인지뿐 아니라 누구에게 적합하지 않은지도 정확히 알린다.
- 에밀리 헤이워드, 『미치게 만드는 브랜드』, 알키
오늘날은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고 단순 명료하게 해결해 주는 브랜드가 성공한다. 이런 브랜드는 선택지를 알아서 선별하고 구성해 줌으로써 소비자를 배려하고, 소비자는 답례로 이 브랜드를 선택해 준다.
- 에밀리 헤이워드, 『미치게 만드는 브랜드』, 알키
이 글 시리즈로 그동안 내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여섯 명의 브랜드 디렉터를 소개했다. 이 외 최장순 디렉터, 전우성 디렉터, 임태수 디렉터, 사토 오오키, Brian Collins 등 지금도 여전히 좋은 자극을 주는 디렉터들이 많다. 어느 때보다 브랜드를 배우고 습득하기에 좋은 시기이다. 앞서 걸어온 이들의 방향을 따라 또 다른 디렉터들이 자연스럽게 그 길을 이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