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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xsoul Nov 13. 2024

기대에 의한 대기 사회

20241113

  웨이팅 번호 배부는 오전 10시. 식당 오픈은 11시. 앞의 사람은 4명. 오늘은 평일. 지금은 오전 9시 10분. 예상 시간에 도착을 했다. 오픈 입장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내가 이걸 성공하다니.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내 대기 위치는 햇볕이 직방으로 내리쬐는 곳. 이럴까 봐 양산을 준비해 온 내가 대견하다. 1판 31쇄를 찍어 낸 바로 당일에 구매 한, 잉크도 마르지 않았을 한강의 '희랍어 시간'을 펼친다. 한 시간 남짓 대기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 자랑스럽다. 아뿔싸, 이어폰을 깜빡한 걸 깨달은 것은 내 뒤에 서게 된 7살 남짓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3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엄마, 아빠가 끊임없이 떠드는 바람에 책에 전혀 집중할 수 없을 때였다. "00 이는 닌텐도 하고 있으면 되겠다, 추워? 옆에 카페 가 있을래? 애기가 이제 혼자 까페에서 있을 줄도 알고 다 컸네. 좋네, 좋아! 무슨 11월 날씨가 이렇게 더워? 이상해~ 그래도 지금 와도 앞에 대기가 많이는 없어서 충분하네! 우리 조금 더 일찍 왔으면 억울할 뻔했다. 목도리를 펼쳐서 몸에 둘러 그럼 따뜻해. 내가 맨날 숄처럼 두르고 다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어." 나의 대기 준비는 완벽했지만, 대기의 시공간을 함께 해야 할 앞뒤 대기자가 잘못 걸렸다. 이번 대기시간은 망한 것 같다. 하지만 대기는 성공했고, 도대체가 주말만 되면 아침부터 인산인해를 이루는 그 식당을 드디어 경험해 봤고, 이젠 호기심이 해결됐다.


  줄 서서 뭔가를 먹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주말 아침부터 그렇게 줄을 서있는 미지의 사람들을 보며 '젊은 친구들이 참 안타깝다! 식당 하나 가겠다고 하염없이 기다릴 만큼 할 일이 없나?' 하며 혀를 끌끌 찼다. 그렇치만,, 그게 나였다. 변명을 하자면, 고향땅 군산에서 저명해진 한 빵집에 빵을 먹으려고 대기 한 최근의 경험 때문이다. 옛날에는 학교 일찍 끝나는 날 친구들이랑 가서 빵이랑 쉐이크 시켜서 먹고 노는 그런 정도의 조금 유명한 동네 빵집이었을 뿐인데.,,, 가끔 생각나는 맛있는 맛이긴 한데 기다릴 정도는 아닌데,, 그렇지만 (함께 간 손님에게 특산품 맛은 보여줘야 하기도 하고) 기다리지 않으면 먹지를 못하니 우선 대기를 했고 고작 그 단팥빵을 위해 50분이나 줄을 섰던 것이다. 그렇게 하고 나니 기다림에 대한 감각이 무뎌졌다고나 할까. '내가 고작 저 빵 먹으려고 50분을 기다리는데, 요즘 제일 핫한 식당 기다리는 것이 무슨 대수랴.' 괜히 억울한 마음이 조금 더 컸던 것 같다. 


  대기하는 기다란 줄을 바깥에서 바라보면 음식에 미친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막상 대기줄의 내부자가 되고 나면, 거기 또한 사람 사는 곳이고 그다지 한심한 일도 아니란 게 느껴진다. 

  대기하는 사람은 짜증 내지 않는다. 스스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그리고 대기는 무언가를 엄청나게 희생해야 할 거대한 산이 아니다. 친구를 만나서 까페에 가서 한 시간 수다를 떠는 것과 유명한 식당 웨이팅을 하며 수다 떠는 것이 그렇게 크게 다를 것도 없다. 집에서 닌텐도를 하는 것과, 유명한 빵집 대기 줄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 뭐 그리 다른가.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것과(사실 서울땅엔 앉아서 책 볼 만한 벤치도 없다) 유명한 다이닝 바 웨이팅 줄에 서서 책을 읽는 게 무엇이 그렇게 다른가...

  왜 이렇게 대기를 할까? 기다리는 줄을 보면 혀를 끌끌 차던 나도 이렇게 하고 있다. 왜?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어차피 보낼 시간은 가치롭게 보내고 싶다. 실패지 않고 성공적이게 가치 있게. 우리는 모두 실패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 방법을 잘 모른다. 시간을 엄청나게 가치롭게 보내고는 싶은데 그럴 방법을 모르고 자신도 없다면, 남들이 가치 있다고 하는 것에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거라는 인식이 만연된 것이 아닐까. 대기는 그 보장된 성공을 위해서 기꺼이 지불할 수 있는 '낭만'의 영역이다. 성공에 대한 기대. 효율을 극도로 추구하는 현대 사회에서 한 줄기 낭만인 것이다. 낭만의 방식 또한 획일화된 것이 좋은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혹은 어차피 그 정도 오래 줄 서서 먹으면 뭘 먹어도 맛있는데, 맛있는 식당이라 맛있다는 입소문이 퍼지고 양성피드백을 거쳐 이 현상은 더욱 가속화되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제 대기는 문화가 되었다. 더 이상 손님이 식당, 카페를 고르는 게 아니라 식당의 간택을 받아야만 갈 수 있다는 것을 몸소 깨달은 지는 꽤 오래되었다. 그렇다고 사람 휑한 무명의 식당은 리스크를 감수하고 가고 싶지는 않다. 대기하면서 밥 먹는걸 처음 경험할 때 이러다 말겠지, 했는데 이러한 현상이 갈수록 더욱 심해지는 것을 보니 어쩌면 이제 시작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머지않은 시일 내에 여느 유튜버들은 이런 콘텐츠를 내놓을 것이다. 대기 잘하는 법, 대기 꿀팁. 대기 필수템! 여느 무직의 청년들은 이런 셀링을 할 것이다. 유명 맛집 대기 알바! 시급 15000부터! 

  그리고 나의 대기 꿀팁은 양산과 책이다. 아차, 책을 읽으려면 이어폰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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