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28
아이와 내가 둘 다 행복한 일들을 해보기로 했다. 일명 <둘다 리스트>. 10개의 리스트 중 가장 최근에 합류한 한 줄은 '집안일 하기'다. 요즘 부쩍 아이와 함께 살림하는 재미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육아가 어느 하나 예상했던 대로 된 게 있냐마는 아이와 함께 집안일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정녕 몰랐다.
사실 처음 내게 주어졌던 미션은 '딸 몰래 살림하기'였다. 부엌에서 음식을 하든 마당에서 빨래를 널든 엄마의 딴짓을 눈치챈 딸은 득달같이 달려들곤 했다. 작은 몸으로 정말 필사적이었다. 어떻게든 엄마를 사수하고야 말겠다는 결심 하나로 나를 제지했다. 그 짧은 팔다리로 내 다리를 감싸안았다. 이길 수 없는 게임이었다. 집안일은 딸이 잠든 다음에야 가능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아이가 날 따라하기 시작했다. 집안일도 그 중 하나였다. 어느 날 눈떠보니 부엌일, 빨래, 청소까지. 딸은 올라운드 집안일-플레이어가 되어 있었다.
난이도 ★★ 소요 시간 30분
가족 모두가 고구마를 좋아한다. 시장에서 고구마를 왕창 사 와서 썰어두곤 한다. 다듬어 놓은 고구마를 빈 봉지와 함께 아이 앞에 놓으면, 봉지에 담고 다시 도마에 늘어놓길 반복한다. 30분은 거뜬하다. 도마 위에 고구마 조각을 늘어놓는 아이의 눈빛이 너무 진지해서 당혹스러울 정도.
난이도 ★★★★ 소요 시간 15분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하면 딸은 정말 빛의 속도로 달려든다. 그리고는 기어이 빼앗아 든다. 앞뒤로 청소기를 미는 자세가 정말 놀라울 정도로 리얼하다. 한 1년만 더 키워서 정말 맡겨볼 참이다. 가끔 '너무 조용한데?' 싶어질 즈음은 딸은 미니 빗자루와 쓰레바퀴를 들고 나타난다. 그리곤 정말 열심히 부엌 바닥을 쓴다.
난이도 ★★ 소요 시간 3분 (10회 가량 반복 가능)
딸이 가장 자신있어 하는 살림 놀이는 빨랫바구니 옮겨주기. 마당에 빨래를 널고 아이에게 바구니를 다시 세탁기 앞에 놓아 달라 부탁한다. 딸은 아주 기꺼이 그 부탁을 들어준다. 혹 시간이 더 필요하다면 10회 정도 반복 가능하다.
사실 육아와 병행해야 하는 집안일이 버겁게 느껴질 때가 많았다. 애 키우랴 살림하랴 직장 생활 할 때보다 훨씬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하지만 해도해도 끝이 없고 티도 안 나는 탓에 '살림 권태기'가 왔던 것도 같다. 고구마 조각을 옮겨 담는 아이의 고사리 손을 보며, 빨랫바구니 옮기며 삐질삐질 흘리는 땀을 보며, 청소기 미는 진지한 눈빛을 보며 집안일이 참 재밌게 느껴졌다.
사실- 아이와 함께 라면 세상에 즐겁지 않을 일이 뭐가 있을까.
자, "엄마도 아이도 좋아하는 집안일 하기"
<둘다 리스트> 일곱 번째 미션 성공 :)
<모든 육아는 훌륭하다> 지난 글
#5. '요즘 계집애들은 애를 안 낳으려 한다'는 당신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