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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지금 '지적 자본의 산업혁명'의 문턱을 넘고 있다. 과장은 아니다. AI가 만들어내는 변화는 이미 일터의 언어와 리듬을 바꾸고 있으며, 그 파장은 "AI가 당신을 부자로 만들 것인가"라는 호기심 어린 질문보다 훨씬 근본적이다. 어떤 기술이 새로운 부자를 만들어내는가를 따지기 전에, 우리는 먼저 "일의 가치가 어디에서 발생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 관점에서 보면 AI는 해상 컨테이너의 효율성 혁신만도, 70년대 마이크로프로세서의 '무허가 혁신'만도 아니다. 더 적확한 비유는 스프레드시트, 곧 엑셀이다.
엑셀의 교훈은 간명하다. 진짜 돈을 번 사람은 엑셀을 만든 회사가 아니라 엑셀을 활용한 사람들이다. 엑셀은 '지식 생산 수단'을 표준화했고, 그 결과로 부는 '제작자'가 아니라 '활용자'에게 넓게 흘렀다. 오늘의 AI도 같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만드는 기업들은 소수의 공장주다. 그러나 그 공장들이 뿜어내는 생산력을 계약서 한 장, 월 구독료 몇 만 원으로 끌어다 쓰는 주체는 우리 모두다. 생산 수단의 민주화—이 표현이 낯설다면, '누구나 고성능의 지적 공장을 빌려 쓸 수 있는 시대'라고 이해하면 된다.
이 지점에서 기존 경력의 정의가 흔들린다. 그동안 경력은 숙련의 동의어였다. 논리적으로 보고서를 짜고, 차트를 깔끔히 그리며, 카피를 날카롭게 잡아내는 일들은 5~10년의 시간을 먹는 스킬이었다. 그런데 AI는 이 '설명 가능한 일'을 순식간에 평준화한다. 신입도 모델이 주는 가이드를 따라가면 '형식'만큼은 베테랑에 근접한 산출물을 뽑아낸다. 스킬이 가격 경쟁에 들어가면, 스킬은 곧바로 가치 하락을 맞는다. 남는 것은 무엇인가. 남는 것은 판단이다.
판단은 속도의 문제가 아니다. 많은 사람은 "빠르게 읽고 더 빨리 만들어내는 능력"을 새 표준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AI는 이미 인간보다 더 빨리 만든다. 속도로 AI를 이길 수 없다. 중요한 것은 '바르게 읽는 능력'이다. 무한히 쏟아지는 결과물 앞에서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살릴지, 무엇을 지금의 맥락과 결합할지, 무엇을 다음 실험의 재료로 삼을지를 겨누는 능력. 이 능력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다. 일관된 원칙에 근거한 선택의 기술, 다시 말해 '판단'이다.
판단은 어디에서 오는가. 두 축이 있다. 하나는 '믿는 능력'이다. 수십 개의 그럴싸한 대안 앞에서 "우리는 명료함을 우선한다", "리스크는 앞에서 계산한다" 같은 작동 원칙을 꺼내는 힘이다. 다른 하나는 '믿음을 조정하는 능력'이다. 새로운 데이터가 들어오면 그 원칙의 작동 방식을 재조정하고, 필요하면 원칙 자체를 업데이트하는 유연성이다. 확신과 겸손의 공존—AI 시대 전문가의 핵심은 이 균형에 있다.
그런데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 "원칙을 가져라"는 조언은 너무 자주 공허하게 흐른다. 원칙은 단일한 문장이 아니라 계층 구조를 가진 체계다. 이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원칙은 포스터 속 슬로건으로 끝난다. 작동하는 원칙은 최소한 세 개의 층위로 구성된다.
첫째 층은 가치(Values)다. "우리는 무엇을 좋은 것으로 보는가"에 대한 선언이다. 이것은 판단의 최종 심급이다. 명료함인가, 포용성인가, 속도인가, 정밀함인가. 가치는 증명할 수 없다. 다만 선택할 뿐이다. 그러나 이 선택이 모든 하위 판단의 기준점이 된다. 가치가 불명확한 조직에서는 매번 논쟁이 원점으로 돌아간다. "왜 이렇게 했는가"라는 질문에 "그냥요"로 끝나는 조직은 가치를 정의하지 않은 조직이다.
둘째 층은 원칙(Principles)이다. 가치를 실현하는 구체적 작동 방식이다. 만약 가치가 "사용자에게 명료한 경험"이라면, 원칙은 "애매함보다 단순함을 선택한다"가 될 수 있다. 원칙은 가치보다 구체적이지만, 여전히 맥락에 따라 해석의 여지를 남긴다. 원칙은 방향을 지시하되, 경로는 열어둔다. 좋은 원칙은 상황이 바뀌어도 작동하지만, 나쁜 원칙은 한 번의 예외 앞에서 무너진다.
셋째 층은 규칙(Rules)이다. 특정 맥락에서의 구체적 의사결정 기준이다. "선택지가 3개를 넘으면 재설계한다", "고객 응답은 24시간 이내", "AB 테스트 없이 UI 변경은 배포하지 않는다"—이런 문장들이다. 규칙은 원칙의 자식이다. 원칙에서 파생되지 않은 규칙은 관료제의 잔해일 뿐이다. 규칙이 늘어날수록 조직은 느려진다. 그러나 원칙이 명확하면 규칙은 최소화할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스스로 맥락에 맞는 규칙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이 세 층이 정렬되면 무슨 일이 생기는가. 판단이 빨라진다. AI가 만들어낸 7개의 대안 앞에서, 당신은 "우리의 가치는 명료함이다 → 따라서 단순함을 우선한다 → 그러므로 3안과 5안을 비교하고 나머지는 버린다"는 경로를 순식간에 밟는다. 이 경로가 반복되면 판단은 직관처럼 보이지만, 실은 구조화된 사고의 압축이다. 베테랑과 초심자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베테랑은 이 계층 구조를 내면화했고, 초심자는 매번 가치부터 다시 묻는다.
그런데 이 구조에도 함정이 있다. 원칙이 맥락을 무시하면, 원칙은 교조가 된다. 같은 "단순함 우선" 원칙도, 신제품 런칭과 기존 서비스 개선에서는 다르게 적용된다. 원칙이 작동하려면 세 가지 보정 장치가 필요하다.
첫째는 맥락 의존성의 인식이다. 이 원칙이 유효한 조건은 무엇인가를 명시해야 한다. 둘째는 우선순위다. 원칙들이 충돌할 때—명료함과 포용성이 동시에 불가능할 때—무엇이 먼저인가를 정해야 한다. 셋째는 적용 범위다. 이 원칙은 제품 결정에만 쓰이는가, 채용에도 쓰이는가, 조직 문화에도 쓰이는가. 범위가 불명확하면 원칙은 자의적으로 소환된다.
결국 "믿는 능력"은 원칙을 외우는 능력이 아니다. 가치-원칙-규칙의 계층을 세우고, 그 계층을 맥락에 맞게 작동시키며, 필요하면 하위 층을 수정하되 상위 층과의 정합성을 유지하는 능력이다. 이것이 판단의 엔진이다. AI는 대안을 만들어주지만, 이 엔진을 돌리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AI가 결정적으로 바꿔놓은 것은 '시도의 비용'이다. 과거에는 보고서 한 편, 전략 한 장을 만드는 데 일주일이 들었다. 지금은 10분이면 된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간은 어디에 써야 하는가. 더 많이 시도하는 데 쓰는가, 더 깊이 반성하는 데 쓰는가. 답은 자명하다. 시도는 AI가 도와준다. 인간이 집중해야 할 일은 반성이다.
"별로네, 다시"라는 피드백은 시도를 반복하게 할 뿐 학습을 낳지 않는다. "3안의 구조는 목적에 맞고, 7안의 톤은 우리 브랜드에 맞는다. 핵심 원칙이 명료함이므로 3안을 베이스로 7안의 표현을 녹여 다시 생성해달라"—이것이 반성의 문장이다. 이 문장력이 쌓일수록 판단은 날카로워지고, 팀의 생산성은 기하급수로 뛴다.
그렇다면 "AI가 새로운 부자를 만들지 못한다"는 주장은 틀렸는가. 절반은 맞다. 모델 계층, 인프라 계층에서 승자 독식은 심화될 것이다. GPU와 전력을 손에 쥔 플레이어, 생태계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 플랫폼 기업들이 핵심 이익을 가져갈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다르다. 응용 계층에서는 '작은 강자'가 끝없이 태어난다. 도메인 지식과 작동 원칙, 그리고 빠른 실험-반성 루프를 갖춘 팀들은, 거대한 모델을 소유하지 않아도 의미 있는 초과이익을 만든다. 엑셀 시대에 사라지지 않고 오히려 강해진 이들이 누구였는지를 떠올려보라. 툴 제작자가 아니라 툴을 통해 산업의 문제를 재정의한 사람들이다.
개인의 차원에서도 해답은 같다. 이제 커리어 전략의 중심은 스킬셋 쇼핑 리스트가 아니다. "내가 무엇을 믿는가"를 명확히 하고, "그 믿음을 어떻게 검증하고 조정할 것인가"의 프로세스를 갖추는 것이다. 실무적으로는 세 가지 습관이 필요하다.
첫째, 원칙을 문장으로 적어둔다. 목표, 우선순위, 리스크 허용치 같은 의사결정의 기준을 글로 만든다. 이때 가치-원칙-규칙의 계층을 의식하라. "나는 속도를 중시한다"는 가치다. "완성도 70%에서 배포한다"는 원칙이다. "주간 스프린트는 금요일 오전에 마감한다"는 규칙이다. 이 세 층이 연결되어 있는가를 점검하라.
둘째, 짧은 주기의 실험을 설계한다. AI를 동원해 시안‧가설‧분석을 발사하고, 결과를 원칙의 관점에서 평가한다. 실험의 핵심은 가설의 명료함이다. "어떤 원칙을 검증하려는가"가 분명하지 않으면, 실험은 그저 시도의 나열로 끝난다. "명료함 원칙을 적용하면 사용자 이탈이 줄 것이다"—이런 문장이 실험의 출발점이다.
셋째, 반성 일지를 남긴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겼는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를 기록한다. 이 세 가지가 쌓이면, 판단은 개인의 감각에서 조직의 자산으로 승격된다.
그런데 이 세 가지 습관이 작동하는지 어떻게 아는가. 판단의 품질을 측정할 수 있는가. 추상적인 "판단력"을 평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판단의 결과는 측정 가능하다. 세 가지 지표가 있다.
첫 번째 지표는 일관성(Consistency)이다. 같은 맥락에서 비슷한 결정을 내리는가. 원칙이 실제 판단에 예측 가능하게 작동하는가. 일관성은 신뢰를 만든다. 팀원들이 당신의 판단을 예상할 수 있을 때, 의사결정 속도는 배가된다. 반대로 일관성이 없으면 모든 결정이 논쟁의 대상이 된다. 일관성을 측정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과거의 반성 일지를 읽는 것이다. 비슷한 상황에서 당신은 같은 이유로 결정을 내렸는가. 만약 매번 다른 논리를 끌어온다면,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신호다.
두 번째 지표는 적응성(Adaptability)이다.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을 때 판단이 업데이트되는가. 원칙 자체를 수정할 수 있는 메타-원칙이 있는가. 일관성만 있고 적응성이 없으면, 그것은 고집이다. 시장이 바뀌고, 고객이 바뀌고, 기술이 바뀌는데 당신의 원칙은 그대로인가. 적응성은 "내가 틀렸다"를 말할 수 있는 용기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무작정 원칙을 바꾸는 것은 적응이 아니라 표류다. 적응성의 핵심은 어떤 증거가 나타나면 원칙을 수정할 것인가를 미리 정해두는 것이다. "3개월간 이탈률이 증가하면 명료함 원칙을 재검토한다"—이런 조건을 명시하라. 그러면 적응은 반응이 아니라 설계가 된다.
세 번째 지표는 효과성(Effectiveness)이다. 그 판단이 의도한 결과를 만들어냈는가. 결과를 원칙으로 역추적할 수 있는가. 효과성 없는 판단은 철학적 유희다. 당신이 "명료함"을 외쳤는데 사용자가 오히려 혼란스러워한다면, 문제는 원칙이 아니라 원칙의 적용에 있다. 효과성을 측정하려면 판단과 결과 사이의 인과 고리를 명시해야 한다. "이 원칙을 적용하면 → 이런 변화가 생기고 → 결과적으로 이 지표가 움직일 것이다"—이 경로를 미리 그려두지 않으면, 결과를 평가할 수 없다. 성공해도 왜 성공했는지 모르고, 실패해도 뭘 고쳐야 할지 모른다.
이 세 지표를 통과한 판단이 쌓이면, 학습이 일어난다. 학습의 증거는 무엇인가.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반성 일지에서 "왜"의 깊이가 증가한다. 초기에는 "별로다"로 끝나던 기록이, "3안은 구조는 좋지만 톤이 우리 브랜드와 안 맞다. 명료함 원칙에는 부합하지만 친근함 원칙과 충돌한다. 이번엔 명료함을 우선했지만, 다음엔 맥락에 따라 재조정 필요"로 진화한다. 둘째, 원칙이 더 정제되고 계층이 명확해진다. 처음엔 뭉뚱그린 "좋은 디자인"이 가치가 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명료함 > 친근함 > 심미성" 같은 우선순위가 생긴다. 셋째, 의사결정 시간이 줄면서 정확도는 유지된다. 초심자는 많이 고민하고도 틀리고, 무경험자는 안 고민하고 틀린다. 전문가는 빠르게 판단하고 맞는다. 속도와 정확도가 동시에 증가하는 지점, 그것이 학습의 완성이다.
결국 질문은 처음 자리로 돌아온다. AI가 부를 만드는가. 모델과 인프라에서는 소수의 공장주가 이익을 극대화할 것이다. 그러나 엑셀의 역사에서 보았듯, 부는 활용자에게도 충분히 흘러간다. 다만 그 활용의 역량이 더 이상 "얼마나 잘 만들 수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정확히 고르고 조정할 수 있는가"라는 점이 달라졌을 뿐이다.
AI 시대의 경쟁력은 산출물의 화려함이 아니라, 선택의 정확도와 학습의 속도다. 이 둘을 가르는 유일한 차이는 원칙을 가진 사람인가, 원칙을 매번 처음부터 찾는 사람인가이다. 그리고 그 원칙은 슬로건이 아니라 구조다. 가치-원칙-규칙의 계층을 세우고, 그 구조를 일관되게 작동시키며, 맥락에 따라 적응하고, 결과로 검증하는 루프. 이것이 AI 시대 판단의 정의다.
AI는 시도할 용기를 주었고, 실패의 비용을 없앴다. 하지만 판단의 책임은 우리 몫이다. 그러니 도구의 '사용법'보다 나의 '작동 원칙'을 먼저 세우자. 원칙을 문장으로 만들고, 실험을 설계하고, 반성을 축적하자. 그리고 그 원칙이 작동하는지를 일관성, 적응성, 효과성으로 측정하자. 부는 그 다음에 따라온다. 모델을 소유한 소수만이 아니라, 판단과 조정의 루프를 가장 치열하게 돌리는 개인과 팀에게. 이것이 AI 시대에 우리가 택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도 근본적인 부의 경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