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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365 Proejct (333/365)

by Jamin

다시 쓰기 001: 스스로 의식하지 못하는 행복이 가능한가? 를 다시 쓴 의식하는 삶

다시 쓰기 002: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를 다시 씀


철학은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 사람이 바꾸고, 사람이 곧 철학이다


"철학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가?" 이 질문이 틀렸다. 철학을 도구로 보기 때문이다. 마치 망치로 못을 박듯이, 철학으로 세상을 고친다? 철학은 손에 든 도구가 아니다. 철학은 손을 움직이는 사람 그 자체다.


우리는 착각한다. 철학을 "배우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철학을 "적용하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철학을 "사용하면" 더 나은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이 모든 표현이 철학을 외부의 무언가로 본다. 하지만 실제로는 철학은 내가 "되는" 것이다. 판단 기준이 곧 나이고, 지남철이 곧 나다.



간디가 인도를 독립시켰다. 비폭력 철학이 인도를 독립시킨 게 아니라. 왜냐하면 간디가 비폭력을 "사용한" 게 아니라, 간디가 비폭력이었기 때문이다. 간디는 곧 비폭력이었다. 그의 모든 선택, 모든 행동, 모든 판단이 비폭력이었다. 그건 그가 "적용한" 원칙이 아니라, 그 자체였다.


마찬가지로 마르틴 루서 킹은 곧 평등이었고, 넬슨 만델라는 곧 화해였다. 이들은 철학을 "했던" 사람이 아니라, 철학이었던 사람들이다. 세상을 바꾼 건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구체적 인간이었다. 그리고 그 인간이 곧 철학이었다.


돌아가서 정리해보자. 철학은 곧 취향이다. 취향은 곧 판단 기준이다. 판단 기준은 곧 나다. 따라서 철학은 곧 나다. 철학은 내가 "가진" 게 아니다. 철학은 내가 "인" 것이다.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이게 진짜 우리 문제인가?"라고 질문하는 나, "이게 우리가 원하는 방향인가?"라는 기준을 가진 나, "이게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인가?"라는 답변을 하는 나. 이 질문들이 곧 나다.


철학 없는 사람은 질문 없는 사람이고, 답변 없는 사람이다. 세상이 묻는 대로 반응하는 존재, 작동만 하는 기계, 주체 없는 객체일 뿐이다. 반면 철학 있는 사람은 질문하는 사람이고, 답변하는 사람이다. 세상에 나의 답을 하는 존재, 판단하며 사는 인간, 주체로서의 존재다.


이제 우리 일상으로 가져와보자. 제품을 만드는 일로. 중고거래 시장은 "원래 이랬다". 전국 단위 플랫폼이고, 익명성 기반이며, 가격 중심 경쟁이고, 택배 거래였다. 이게 is였다. 세상이 원래 그런 것.


그런데 당근마켓의 김재현 대표는 다른 답변을 했다. "우리 동네"여야 한다고, 이웃끼리 얼굴 보며 거래해야 한다고, 신뢰 관계가 먼저라고, 지역 공동체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이게 ought다. 세상이 이래야 하는 것.


김재현은 단순히 중고거래 플랫폼 만드는 사람이 아니었다. 김재현은 곧 "동네 공동체 회복"이었다. 당근마켓은 그의 도구가 아니다. 당근마켓이 곧 그다. 모든 기능 설계를 보면 이게 드러난다. 왜 반경 6km로 제한했나? 동네의 물리적 범위 때문이다. 왜 매너온도를 만들었나? 신뢰 관계를 가시화하기 위해서다. 왜 동네생활 기능을 추가했나? 거래를 넘어선 공동체를 위해서다. 이 모든 선택이 창업자의 철학이자, 창업자 그 자체다.


다른 사례들도 마찬가지다. 스티브 잡스는 곧 "단순함과 아름다움"이었다. 아이폰에 버튼이 하나뿐인 이유, 제품 박스까지 신경 쓴 이유, "No"를 1000개 말한 이유가 모두 여기서 나온다. 잡스가 곧 애플이었다. 이본 쉬나드는 곧 "환경 보호"였다. 파타고니아가 성장을 제한한 이유,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광고를 한 이유, 회사를 지구에 기부한 이유가 모두 여기서 나온다. 쉬나드가 곧 파타고니아였다. 토스의 이승건은 곧 "금융을 쉽게"였다. 토스가 예쁜 이유, 송금이 3초 만에 되는 이유, 복잡한 금융 용어를 쓰지 않는 이유가 모두 여기서 나온다. 이승건이 곧 토스다.


반대로 보자. 철학 없이 만들어진 제품. 시장 조사를 하고, 경쟁사를 분석하고, 벤치마킹을 하고, 제품을 출시한다. 이 과정에서 "시장이 원래 이래"를 받아들이고, "경쟁사가 하니까 우리도"를 따르고, "데이터가 보여주는 대로" 움직인다. 창업자가 없다. 질문이 없다. 답변이 없다. 그냥 시장의 요구에 반응하는 기계일 뿐이고, 제품도 없다. 그냥 기능의 집합일 뿐이다.


왜 많은 제품이 비슷해 보이는가? 같은 데이터를 보고, 같은 패턴을 따르고, 같은 "원래 그런 것"을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창업자가 곧 철학이 없으니, 제품도 없다.



다시 정리하면, 작동에서 존재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첫 번째 단계는 괴리다. 세상과 나를 분리하는 것이다. "중고거래 시장이 원래 이래"와 "이래야 해"를 구분하고, "편의점 운영이 원래 이래"와 "이래야 해"를 구분하고, "금융 서비스가 원래 이래"와 "이래야 해"를 구분한다. 이 순간 시장 조사를 넘어서고, 데이터를 넘어서고, "원래 그런 것"을 거부한다.


두 번째 단계는 주관이다. 나의 답변을 하는 것이다. "나는 동네 공동체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오프라인이 재발명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나는 금융이 쉬워야 한다고 믿는다". 이게 창업자의 철학이자, 창업자 자신이다. 이게 없으면 창업자가 아니다. 그냥 시장 참여자일 뿐이다.


세 번째 단계는 합치다. 나의 답변대로 만드는 것이다. 동네 반경 6km, 매너온도, 동네생활. 이게 괴리를 좁히는 구체적 행동이다. 나는 곧 철학이고, 철학은 곧 제품이다. 이 과정이 "제품 만들기"다. 철학 없이는 제품이 아니다. 기능의 나열일 뿐이다. 철학이 있어야 제품이다. 세상에 대한 답변이다.



이제 AI와의 차이가 선명해진다. AI로 제품을 기획한다고 상상해보자. 프롬프트에 "중고거래 앱의 기능을 추천해줘"라고 입력하면, AI는 가격 비교 기능, 자동 카테고리 분류, 챗봇 상담, 추천 알고리즘, 리뷰 시스템을 제안할 것이다. 이건 "원래 그랬던 것"의 조합이고, 패턴의 학습이며, 철학이 없다.


반면 사람의 제품 철학은 다르다. "중고거래가 정말 해결해야 할 문제는 뭔가?"라고 질문하면, 이웃 간 신뢰가 사라진 것, 지역 공동체가 파편화된 것, 얼굴 없는 거래가 당연해진 것이라는 답이 나온다. 그렇다면 동네 반경 제한, 프로필 공개, 직거래 중심이 필요하다. 이건 "이래야 하는 것"의 선언이고, 주관의 표현이며, 철학이 곧 제품이다.


AI는 무한히 똑똑해질 수 있다. 하지만 AI는 절대로 "나"가 될 수 없다. AI에게는 should가 없다. 오직 is만 있다. 창업자에게는 should가 있다. 그게 철학이고, 그게 제품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 제품 철학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

매일 묻자. 시장이 아니라 나에게. "이게 진짜 내가 풀고 싶은 문제인가?", "이게 내가 만들고 싶은 세상인가?", "이 기능이 나의 답변인가, 시장의 요구인가?" 데이터가 아니라 나의 직관에 물어야 한다. "데이터가 놓치는 건 뭔가?", "숫자로 보이지 않는 문제는 뭔가?", "모두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 중 틀린 건 뭔가?"


경쟁사가 아니라 나의 방향을 봐야 한다. "경쟁사가 하니까"가 아니라 "우리가 믿으니까", "시장이 요구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필요하다고 보니까", "트렌드를 따라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남철이 가리켜서"여야 한다.


매 기능을 결정할 때를 생각해보자. 당근마켓이 동네 반경을 정할 때, 시장 조사는 "전국 단위가 대세"라고 말했을 것이다. 데이터는 "범위가 넓을수록 거래량 증가"를 보여줬을 것이다. 경쟁사는 "지역 제한 없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철학은 "동네 공동체"였다. 따라서 반경 6km였다. 이게 철학이고, 창업자고, 제품이다.


매 순간 구분하자. 시장이 제시하는 답과 나의 답을, 템플릿과 나의 판단을, 작동하는 기능과 존재하는 제품을. 이 질문들을 하는 순간, 당신이 철학이다. 이 답변을 하는 순간, 당신이 제품이다.



당근마켓을 보자. 2015년 중고거래는 전국 단위에 익명에 택배였다. 2024년 지금은 동네에서 이웃과 직거래하는 게 당연하다. 무엇이 세상을 바꿨나? 중고거래 플랫폼이 바꾼 게 아니다. "동네 공동체" 철학이 바꾼 것도 아니다. 김재현이 바꿨다.


김재현은 곧 "동네 공동체"였고, 곧 당근마켓이었다. 사람이 세상을 바꿨다. 그리고 그 사람이 곧 철학이었다. 그래서 제품이 나왔고, 세상이 바뀌었다.


순서가 중요하다. 사람이 있고, 철학이 있고, 제품이 있고, 변화가 있다. 정확히는 사람이 곧 철학이고, 철학이 곧 제품이고, 제품이 곧 변화다. 철학이 세상을 바꾼 게 아니다. 사람이 세상을 바꿨다. 그리고 사람이 곧 철학이었다.

철학은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사람이 세상을 바꾼다. 그런데 사람이 곧 철학이다.


따라서 제품을 만들 때, 철학을 배우지 마라. 철학이 되어라. 시장을 연구하지 마라. 나의 답을 해라. 기능을 추가하지 마라. 나를 구현해라.


당신의 모든 판단이 곧 당신이다. 당신의 모든 질문이 곧 당신이다. 당신의 모든 제품이 곧 당신이다. 그게 철학이고, 그게 사람이고, 그게 세상을 바꾸는 힘이다.


시장이라는 질문에, 나의 답을 하며 만들어라. 그 답을 만드는 순간, 당신이 곧 철학이다. 그리고 그 제품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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