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 Proejct (337/365)
다시 쓰기 003: 평면이란 무엇인가 를 다시 쓴 상상하는 죄표계
다시 쓰기 004: 어른, 이어폰 그리고 찻잔 을 다시 쓴 각자의 테이블에서 모두의 테이블로
다시 쓰기 005: 의사결정을 위한 가이드 를 다시 쓴 불확실성을 마주하는 태도
다시 쓰기 006: 글쓰기란 무엇인가 를 다시 씀
1. 권력의 이동: 발언권의 민주화
인터넷은 소통의 구조를 바꿨다. 과거에는 소수만이 대중에게 발언할 수 있었다. 오늘날 누구나 자신의 기기로 수만 명에게 말을 건다. 발언의 자격이 권력에서 표현 의지로 이동했다. 사회는 '소수 대 다수'의 방송 구조에서 '모두 대 모두'의 대화 구조로 이행하고 있다.
이 변화가 완전한 권력 해체를 뜻하지는 않는다. 기존 미디어의 영향력은 여전하다. 자본, 정치와 결합한 기득권은 공고하다. 하지만 전달자와 수용자의 비율이 1:99에서 10:90으로, 그리고 점점 50:50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이것은 단순한 도구의 변화가 아니다. 누가 생각을 만들고, 누가 의제를 설정하는가의 문제다.
필터버블과 확증편향은 새로운 문제가 아니다. 구시대에도 우리는 믿고 싶은 것을 믿었다. 차이가 있다면 과거에는 엘리트 미디어에 권력을 주고 그들이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문제를 찾아주길 기다렸다는 점이다. 더 많은 메시지를 듣는 것만으로는 생각이 바뀌지 않는다.
진정한 변화는 듣기에서 오지 않는다. 스스로 메시지를 전달할 때 변화가 시작된다.
과거의 리더는 신문과 방송에 의존했다. 오늘날의 리더는 글, 영상, 댓글로 자신의 생각을 실험한다. 페이스북의 한 문단, 블로그의 메모가 새로운 논의를 시작한다. 하지만 과도기인 지금, 대다수는 여전히 댓글조차 쓰지 않는다. 공론장의 완성은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를 펼쳐나갈 때 온다.
왜 쓰기가 변화를 만드는가? 글을 쓰는 순간, 우리는 상대를 생각하게 된다. 논리에서 이기기 위해, 감성에서 이기기 위해, 설득하기 위해. 자신의 의견을 지키려는 본성이 타인을 고려하는 사고를 만든다.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생각은 정제되고, 입장은 명료해진다.
Addy Osmani는 이 과정의 본질을 통찰했다. "배운 것을 글로 써라. 그 과정이 이해를 깊게 하고 사고를 명료하게 한다." 글쓰기는 기록이 아니라 학습의 완성이다. 우리는 무언가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글로 쓰려는 순간 빈틈을 발견한다. 막연한 이해는 문장 앞에서 무너진다.
Paul Graham은 더 나아간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잘 생각하는 사람이다." 좋은 글은 문장이 매끄러운 글이 아니다. 아이디어가 명확하게 보이는 글이다. "글을 잘 쓰려면 명료하게 생각해야 하며, 명료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렵다." 글쓰기는 생각을 드러내는 과정이자 사고를 정제하는 훈련이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 무엇을 써야 하는가? Ethan Brooks는 답한다. "남이 쓸 수 없는 것을 쓰라." 당신의 일상 경험, 현장 관찰, 업무 노트 속에 희소한 데이터가 있다. 바로 경험과 맥락, 즉 '정보 우위'다.
정보 우위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매장에서 매일 관찰하는 고객 행동 패턴
팀 미팅에서 반복되는 의사결정 실수
신입사원 온보딩 과정에서 발견한 문서의 빈틈
3개월간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배운 커뮤니케이션 실패 패턴
이 경험들은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당신만 알고 있다. 그것을 꺼내 맥락을 부여하고 문장으로 바꾸는 순간, 메모는 사회적 자산이 된다. 글쓰기는 생산이자 기여다.
Graham은 2024년에 경고했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글을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의 격차는 더 커질 것." 이 경고는 현실이 되었다. LLM(거대 언어 모델)의 등장으로 글쓰기는 그 어느 때보다 쉬워 보인다.
많은 이가 LLM을 '사고의 대련 상대'로 사용한다. 불완전한 생각을 던지고 질문하며 아이디어를 벼린다. Osmani가 말한 '학습의 완성' 과정이 AI와의 대화로 가속화된다. 이것은 분명 강력한 도구다.
하지만 역설이 일어났다. '생각 없는 글'의 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모두 대 모두'의 대화는 AI가 생성한 유창하지만 공허한 문장들로 채워진다. 글쓰기는 쉬워졌지만, 그 글에 담긴 책임감은 결코 가벼워지지 않았다. 소음 속에서 본질을 가려내는 일은 독자의 몫이 되었다.
이 소음 속에서 Brooks가 말한 '정보 우위'가 다시 중요해진다. AI가 가질 수 없는 '나의 고유한 경험과 맥락'이 핵심이다. AI는 현장을 보지 못했고, 당신의 노트를 쓰지 않았으며, 동료와 논쟁하지 않았다. AI 시대의 글쓰기는 문장 생성이 아니다. 도구를 활용해 '나만의 경험'을 '가장 명료하게' 벼리는 기술이다.
트위터의 140자로 시작된 변화는 글쓰기의 진입장벽을 무너뜨렸다. 이제 우리는 술자리에서 말하듯 글을 쓴다. 생각이 완성되지 않아도, 문장이 다듬어지지 않아도 괜찮다. 카톡 대화, 슬랙 메시지, 트윗은 말하기와 글쓰기의 경계를 지웠다.
이것은 분명 진전이다. "틀려도 된다"는 메시지가 현실이 되었다. 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글쓰기는 일상이 되었다.
하지만 가벼움은 충분조건이 아니다. 생각하는 힘이 중요한 시대에, 술자리식 글쓰기만으로는 부족하다. 우리는 이제 쉬운 글쓰기 다음을 상상해야 한다.
리모트 근무가 잘 안 되는 이유를 생각해보자. 화상회의 도구의 문제인가? 업무 도구의 부족인가? 아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명료하고 명확하게 내 생각을 전달하는 능력, 그리고 그것을 정확하게 받아들이는 능력 두 가지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프로토콜이 명확한 업무는 리모트가 가능하다. "A 데이터를 B 포맷으로 변환해서 C 시스템에 입력" 같은 작업은 비대면으로도 문제없다. 하지만 생각과 사고가 빠르게 바뀌어야 하는 협업은 다르다:
제품의 방향을 논의할 때
복잡한 문제의 원인을 함께 찾을 때
전략적 의사결정을 내릴 때
새로운 아이디어를 구체화할 때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막힌다. 슬랙 메시지를 10번 주고받아도 의도가 전달되지 않는다. 결국 "미팅 잡을까요?"라고 말한다. 왜? 우리의 글쓰기가 사고의 복잡성을 담아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술자리식 글쓰기는 감정과 분위기를 전달한다. 하지만 논리 구조, 전제와 결론, 맥락과 제약사항, 대안과 트레이드오프를 담아내지 못한다.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이 실패하는 지점은 바로 여기다.
Paul Graham이 말한 "글을 잘 쓰려면 명료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개인의 사고력 문제를 넘어선다. 조직의 협업 방식 문제다.
명료한 사고의 글쓰기는:
1) 맥락을 명시한다 "이 기능 어때요?"가 아니라 "우리가 Q2에 해결하려는 이탈률 문제와 관련해서, 사용자가 첫 화면에서 길을 잃는다는 데이터를 고려할 때, 이 온보딩 기능이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2) 전제를 밝힌다
"이 방식이 맞습니다"가 아니라 "A팀이 6개월간 유지보수할 수 있고, 성능이 현재보다 2배 이상 나빠지지 않으며, 비용이 월 $500 이하라는 전제 하에, 이 방식이 최선입니다"
3) 대안을 제시한다 "B안을 선택했습니다"가 아니라
"A안(빠르지만 기술부채 큼), B안(느리지만 확장성 좋음), C안(절충)을 비교했고, 현재 우리의 우선순위가 속도라는 점에서 A안을 선택했습니다. 3개월 후 재검토 예정"
4) 구조를 만든다 생각의 흐름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이해 순서로 쓴다. 배경 → 문제 → 제안 → 근거 → 다음 단계. 혹은 결론 → 근거 → 상세. 독자가 길을 잃지 않게 한다.
이런 글쓰기는 '말하듯 쓰기'보다 어렵다. 하지만 이것이 비동기 협업이 작동하는 조건이다.
Zoom보다 노션 문서가 효율적인 조직이 있다. 회의보다 RFC(Request for Comments) 문서로 의사결정하는 팀이 있다. 그 차이는 구성원의 글쓰기 능력에서 온다.
리모트 워크를 넘어, 이것은 모든 지식 노동의 본질이다. 코드 리뷰, 제품 기획서, 전략 문서, 고객 응대, 심지어 채용 면접—우리는 생각을 글로 주고받으며 일한다.
Graham의 경고를 다시 읽어보자. "기술이 발전할수록 글을 쓰는 사람과 쓰지 않는 사람의 격차는 더 커질 것." 이제 이 말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글을 못 쓰는 사람은 비동기 협업에서 배제된다. 회의실에 있어야만 일할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리모트 시대의 사무실 출근 의무자가 된다.
반대로 명료한 글쓰기를 하는 사람은:
시간대가 달라도 협업한다
한 번의 문서로 열 번의 회의를 대체한다
결정의 맥락을 기록으로 남긴다
새로운 팀원이 빠르게 온보딩한다
자신의 생각을 스케일한다
글쓰기는 개인의 사고 도구를 넘어 조직의 협업 프로토콜이 되었다.
우리에게는 두 가지 글쓰기가 필요하다:
가벼운 글쓰기 (Casual Writing)
트위터, 슬랙, 댓글
말하듯 쓰기, 완벽하지 않아도 됨
참여의 도구, 대화의 시작
진입장벽 낮추기, 민주화의 첫 단계
명료한 글쓰기 (Clear Writing)
문서, 제안서, 분석 보고서
사고의 구조화, 맥락과 논리
협업의 도구, 결정의 기록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의 조건
가벼운 글쓰기만 있으면 생각은 흩어진다. 명료한 글쓰기만 강요하면 참여는 줄어든다. 둘 다 필요하다. 그리고 둘 사이를 오갈 수 있어야 한다.
슬랙에서 시작된 아이디어가 노션 문서로 정리되고, 그 문서가 다시 트위터 스레드로 대중에게 전달된다. 이 순환이 원활한 사람이 생각을 만들고, 조직을 움직이고, 사회를 바꾼다.
현대 사회에서 글쓰기는 선택이 아니다. 만민의 필수 교양이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더 정확히 말할 수 있다:
가벼운 글쓰기는 모두의 권리다. 틀려도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참여하는 것 자체가 가치다.
명료한 글쓰기는 지식 노동의 조건이다. 협업하고, 기록하고, 스케일하려면 필수다.
AI가 문장을 다듬어줄 수 있다. 하지만 무엇을 말할지, 어떤 구조로 전달할지, 어떤 맥락을 명시할지는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오히려 AI 시대에 이 능력은 더 중요해진다. AI가 생성한 유창한 문장 속에서 진짜 생각을 가려내려면, 우리 스스로 명료하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공론장은 편집실에 있었다. 지금의 공론장은 각자의 메모장에 있다. 하지만 미래의 일터는 문서에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이다. 명료하게 쓰는 사람은 협업하는 사람이다.
글쓰기는 사유의 민주화를 위한 가장 강력한 도구다. 그리고 명료한 글쓰기는 비동기 시대를 살아가는 생존 기술이다. 글을 쓰는 자가 생각을 만든다. 명료하게 쓰는 자가 조직을 움직인다. 생각을 만드는 자가 사회를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