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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과 에이전트

365 Proejct (339/365)

by Jamin

다시 쓰기 005: 의사결정을 위한 가이드 를 다시 쓴 불확실성을 마주하는 태도

다시 쓰기 006: 글쓰기란 무엇인가 를 다시 쓴 글쓰기, 생각의 민주화

다시 쓰기 007: 기술이 인간 조건을 바꿀 수 있는가? 를 다시 쓴 기술 인간조건 그리고 존중

다시 쓰기 008: 플랫폼 시대 를 다시 씀



2017년, 나는 플랫폼을 '연결'과 동일시했다.

그리고 그 연결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통제'라고 보았다.


8년이 지났다.


이 오래된 긴장감이 마침내 폭발하고 있다. 토스와 카카오톡이 이 현상을 정면으로 증명한다. 플랫폼이라는 말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공기처럼 당연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들의 통제 방식이 한계에 부딪혔다는 명백한 신호다.


우리는 본질적인 질문 앞에 섰다.


기술은 '도구(Tool)'인가, '영토(Territory)'인가.


지금 플랫폼들은 노골적으로 '영토'를 선택했다. 그들의 비즈니스 모델이 '시간'을 수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 앱 토스와 커머스 앱 테무가 앱 안에 게임을 심는다. 금융과 상거래라는 본질을 벗어난 행위다. 그들의 목표는 더 이상 사용자의 '목적 달성'이 아니다. 사용자의 '시간 점유'다. 훌륭한 도구는 사용자의 시간을 아껴준다. 훌륭한 망치는 못을 더 빨리 박게 한다. 하지만 지금의 플랫폼은 우리가 못을 박기 전에 광고를 보라고 요구한다.


채팅 도구의 왕좌에 있던 카카오톡은 스스로의 심장을 겨눴다. 핵심 도구인 '친구 목록'을 버리고 '타임라인'을 강요하려 했다. 전화번호부라는 도구의 본질을 배신했다. 사용자는 즉각 저항했다. "도구는 도구일 뿐." 그들의 외침은 명확했다. 그들은 단지 빠르고 정확한 연락처 목록을 원했다. 카카오는 원치 않는 상사와 업체의 일상까지 뒤섞인 시끄러운 광장을 제공했다. "원하지 않는 연결을 통제할 권리"를 돌려달라는 것이 사용자의 요구였다.


사용자는 빠른 송금과 정확한 소통을 원했다.

플랫폼은 더 많은 광고와 더 긴 체류를 원했다.


2017년에 우려했던 "사람보다 플랫폼이 중요해진" 시대가 마침내 도래했다.


플랫폼은 시장 포화에 직면했다. '탈카톡' 같은 외부 위협도 감지했다. 그들은 '도구'로서 쌓아온 신뢰를 버렸다. 대신 '영토'를 지키기 위한 통제를 택했다. 이것은 명백한 방어적 확장이다. 그리고 지금, 사용자가 처음으로 이 거대한 통제에 조직적인 반격을 가하고 있다. 카카오톡이 결국 롤백을 선택했다는 것은, 이 모델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첫 번째 신호다.


플랫폼의 영토 안에서 우리의 주의력은 완전히 파산했다.


우리는 끝없는 알림과 피드의 디지털 빈민가에 살고 있다. 우리의 '집중력'은 플랫폼 기업들의 수익을 위해 무차별적으로 수확당한다.


이 소란 속에서 우리에게 '더 나은 앱'은 필요 없다.

우리에게는 '사라지는 앱'이 필요하다.


여기서 AI 에이전트의 개념이 등장한다.


하지만 우리가 상상하는 에이전트는 또 다른 화면 속 비서가 아니다. 진정한 에이전트는 스스로를 감춘다. 내가 보지 않아도, 나를 위해 작동한다. 이 에이전트는 두 가지 역할을 동시에 수행한다. '방패' 그리고 '검'이다.


'방패'로서 에이전트는 나의 집중력을 보호한다.


모든 플랫폼의 소음을 차단하는 개인 방화벽이 된다. 중요하지 않은 모든 알림을 묶어서 내가 원할 때만 요약해준다. 스팸과 광고, 불필요한 뉴스로부터 나의 의식을 지킨다.


'검'으로서 에이전트는 나의 의도를 수행한다.

"이번 주말, 제주도 1박 2일 일정 짜 줘."


이 명령에 에이전트는 '나의' 의도를 가지고 플랫폼의 영토를 가로지른다. 네이버 항공, 카카오 택시, 야놀자, 아고다, 쏘카를 모두 '도구'로써 비교한다. 그리고 플랫폼의 이익이 아닌, '나의' 이익(최적의 가격, 최소의 동선)에 맞는 단 하나의 결과를 도출한다.


에이전트는 시끄러운 인터페이스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는다. 고요한 결과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한다.


시끄러운 앱은 "2시에 출발하세요!"라고 소리친다.


고요한 에이전트는 내가 출발할 시간에 맞춰 문 앞에 도착한 택시로 답한다.


시끄러운 앱은 광고와 알림으로 내 집중을 깬다.


고요한 에이전트는 모든 소음을 차단하고, 내가 확보한 '방해받지 않은 시간' 그 자체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 에이전트의 성공 척도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혁명적이다.


플랫폼의 KPI는 '체류 시간(Time Spent)'이다.

에이전트의 KPI는 '절약된 시간(Time Saved)'이다. '확보된 집중력(Focus Gained)'이다.


이 에이전트만이 2017년에 우리가 플랫폼에 빼앗겼던 '개인의 통제권'을 되찾아올 유일한 대리인이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이 회의는 정당하다. 이 에이전트가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에이전트는 거대한 LLM 두뇌와 모든 서비스에 접근할 API 통행료가 필요하다. 이 자본을 누가 제공하는가.


만약 에이전트가 플랫폼 안에서 작동한다면, 그는 결국 플랫폼의 하수인일 뿐이다. '카카오 에이전트'는 나에게 가장 빠른 길이 아니라 '카카오 택시'를 부를 것이다. '토스 에이전트'는 나에게 가장 유리한 상품이 아니라 '토스 증권'을 권할 것이다.


이것은 '트로이의 목마'다. 나를 돕는 척하지만, 실제로는 성(플랫폼)의 이익에 복무한다.


이는 2017년의 '스카이넷'보다 더 교활하고 강력한 통제다. 2017년의 페이스북 감정 실험은 우리가 '보는 것'을 조작하는 수동적 통제였다. 하지만 플랫폼의 에이전트는 우리가 '행동하는 것'을 직접 조종하는 능동적 통제다. 우리를 대신해 편향된 결정을 내리고, 편향된 구매를 실행한다.


진정한 에이전트는 반드시 독립해야 한다.


그의 충성심은 오직 나를 향해야 한다. 이를 위한 유일한 방법은 비즈니스 모델을 뒤집는 것이다. 우리가 '상품'이 아니라 '고객'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에이전트에게 구독료를 지불하고, 그 대가로 플랫폼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구매해야 한다.


싸움의 구도가 바뀌었다.


더 이상 [플랫폼 A]와 [플랫폼 B]의 영토 경쟁이 아니다.

[영토가 되려는 플랫폼]과 [도구가 되려는 에이전트]의 문명사적 전쟁이다.


우리는 '도구'를 원했다. 플랫폼은 '영토'를 건설했다.


이제 '고요한 에이전트'가 이 거대한 성벽을 무너뜨릴 차례다. 그가 다시 '긍정적인 인터넷의 미래'를 가져올 수 있을까.


아니면, 이 에이전트마저 가장 강력한 '성주(城主)'가 될 운명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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