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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쓰기 008: 플랫폼 시대를 다시 쓴 플랫폼과 에이전트
다시 쓰기 009: 진통제와 비타민을 다시 쓴 진통제를 팔 것인가 비타민을 팔 것인가
다시 쓰기 010: 신화에서 콘텐츠로 를 다시 쓴 신화ㅡ 소유에서 공유재로
다시 쓰기 011: 예술 작품 복재의 의미와 가치 를 다시 씀
이전 글은 예술과 복제의 관계를 다뤘다. 벤야민의 '아우라' 상실에서 시작했다. 워홀의 복제미학을 거쳤다. NFT의 디지털 진본성까지 추적했다. 기술이 원본의 가치를 해체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이었다.
21세기 중반, 생성형 AI가 논의를 새로운 국면으로 몰고 간다. 우리는 '복제'가 아닌 '생성'의 시대를 산다. 생성형 AI는 특정 원본 A를 복사하지 않는다. 수십억 개의 데이터에서 패턴을 학습한다. 그리고 이전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결과물 K를 만든다.
벤야민의 '아우라 상실'을 넘어선다. 보드리야르가 예견한 원본 없는 복제, 시뮬라크르가 현실을 압도하는 하이퍼리얼리티가 도래한다.
이 전환 속에서 우리는 질문에 직면한다. 창작자는 대체되는가? 예술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이 글은 '생성의 시대'가 창작자의 역할을 재정의하는 방식을 탐구한다. 예술의 무게중심이 '기술'에서 '의도'로 이동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생성형 AI의 변화를 이해하려면 유튜브 혁명을 복기해야 한다.
과거 고가의 방송 장비와 전문 인력이 영상 제작의 진입 장벽이었다. 스마트폰과 간편한 편집 툴이 이 장벽을 허물었다. 누구나 창작자가 됐다.
결과는 어땠는가? 방송국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기술'의 독점은 해체됐다. 시청자들은 현란한 촬영 기법이나 편집 기술에 열광하지 않는다. 기술이 평준화되자 대중의 관심이 이동했다. '무엇을'과 '왜'로 이동했다. 그 크리에이터가 가진 고유한 기획과 전달하려는 의도만이 콘텐츠의 가치를 결정한다.
생성형 AI는 유튜브가 했던 일을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그림, 음악, 글쓰기 등 거의 모든 창작 영역에서 그렇다. '어떻게 그릴까'라는 기술적 고민을 AI가 대신한다. 인간은 '무엇을, 왜 그리게 할 것인가'라는 '의도'의 영역에 집중한다.
기술의 민주화는 예술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꾼다. '예술가-세상'이라는 낭만적 구도에서 '세상-창작자-소비자'라는 순환 모델로 이동한다.
세상(시장/맥락): 창작의 재료다. AI의 학습 데이터가 여기서 나온다. 창작물이 유통되고 소비되는 시장도 제공한다.
창작자: 더 이상 숭고한 예술가가 아니다. 기획자이자 개념가다. 세상의 재료를 가공한다. '의도'를 주입하여 콘텐츠를 제안한다.
소비자: 완성된 작품을 수동적으로 감상하는 것을 넘어선다. 때로는 '문화 자본'을 획득하기 위해 작품을 소비한다(부르디외).
디지털 시대의 소비자는 프로슈머가 된다. AI라는 민주화된 도구를 손에 쥔 소비자는 다른 창작자의 작품을 소비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즉시 새로운 창작자가 된다. 순환 고리에 개입한다. 리믹스 문화와 카피레프트 정신이 AI를 통해 전 영역으로 확장된다.
결론부터 말하자. 생성형 AI는 창작자를 대체하지 않는다. 창작자의 역할을 재정의할 뿐이다.
AI는 특정 스타일을 구현한다. 기술적 완성도를 높인다. '기술자'로서의 창작자를 대체할 수 있다.
그러나 AI는 고유한 '의도'를 설정하지 못한다. AI에게 방향성을 지시하지 못한다. 결과물에 맥락을 부여하지 못한다. '기획자' 또는 '개념 예술가'로서의 창작자를 대체할 수 없다.
100년 전 마르셀 뒤샹이 소변기를 전시한 '샘'의 논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뒤샹은 변기를 만들지 않았다. 그것을 선택했다. '이것이 예술이다'라는 의도를 부여했다.
생성형 AI는 우리 모두에게 뒤샹이 될 도구를 쥐여줬다. 창작 행위의 본질이 바뀌었다. '손기술'이 아니라 '프롬프트'로 대변되는 '의도의 설계'다.
예술은 세상에 대한 답이다. 동시에 세상에 던지는 질문이다.
생성형 AI 시대의 창작자는 AI라는 도구를 통해 자신만의 답(생성물)을 내놓는다. 하지만 이 생성물은 완결된 답이 아니다. 소비자(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것은 예술인가?",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창의성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복제의 시대'를 지나 '생성의 시대'로 진입한다. '기술의 시대'를 지나 '의도의 시대'로 진입한다.
예술의 가치가 바뀐다. 캔버스 위의 물감 자국이나 정교한 테크닉이 아니다. 그 창작물을 세상에 존재하게 만든 인간의 '의도'가 얼마나 독창적인가, 깊이 있는가, 시의적절한가가 가치를 결정한다.
이 새로운 시대는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유튜브의 민주화는 가치 있는 콘텐츠와 무가치한 콘텐츠의 홍수를 동시에 가져왔다. AI가 연 '의도의 민주화' 시대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가치 있는 의도'를 분별할 것인가?
만약 AI가 인간의 '의도'마저 학습하고 시뮬레이션하기 시작한다면? 그때 우리는 무엇을 '인간 고유의 것'이라 부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