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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25: 세스 고딘의 주의력은 사치재다 를 보고
기사/인터넷을 보고 생각 정리하기 026: suno 등 AI 를 활용한 플레이리스트 유튜버의 세계 를 보고
2025년,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창작의 주체로 나섭니다. Suno AI나 Udio 같은 생성 AI가 만든 음악이 유튜브와 스포티파이를 채웁니다. 한 유튜버는 하루에 수십 곡의 재즈를 생산해 수익을 냅니다. 챗GPT가 가사를 쓰고 Suno AI가 음악을 만듭니다.
(Suno 로 직접 만들어 본 음악, 조악하지만 15분만에 만들었다는게..)
이 과정은 인간의 고뇌 찬 창작이 아니라 자동화된 생산에 가깝습니다.
이 현상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인간의 창작은 완전한 무에서의 창조였을까요? 아니면 이미 존재하는 무한한 조합의 바다에서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는 행위였을까요? 어쩌면 완전한 무에서의 창조는 신의 영역이거나 인간의 착각일지도 모릅니다. AI가 이 발견의 속도를 무한대로 높인 지금, 인간 아티스트의 자리는 어디에 있을까요?
음악 생성 AI의 작동 원리는 창작이 곧 발견이라는 가설에 강력한 근거를 줍니다. AI는 인류가 만든 방대한 음악 아카이브를 학습합니다. 그 안에 내재된 통계적 패턴과 구조를 압축해 잠재 공간이라 부르는 가능성의 지도를 만듭니다.
"슬프고 느린 피아노 왈츠"라는 요청은 이 지도에서 슬픔, 느린 템포, 피아노, 3/4박자라는 좌표가 교차하는 지점을 찾아내는 탐색입니다. 이 지도는 인간이 지금까지 만든 모든 음악의 패턴이 압축된 가능성의 총합입니다. AI에게 잔잔한 재즈를 만들라는 명령은 이 지도에서 잔잔함과 재즈라는 속성을 모두 가진, 아직 발견하지 않은 좌표를 하나 찍어달라는 요청과 같습니다.
우리가 머니 코드처럼 보편적으로 좋아하는 패턴이 존재하듯, AI는 이 지도를 탐색하며 들을 만한 조합을 발견해냅니다. 이는 수백만 개의 화합물 조합을 시뮬레이션해 최적의 신약 후보를 발견하는 과정과 닮았습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이 나타납니다. 이 발견의 속도가 더 이상 인간의 영감이나 노동에만 달리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GPU의 연산 능력과 알고리즘의 효율이 예술적 탐험의 속도를 결정합니다. 과거의 작곡가가 평생에 걸쳐 탐색해야 했던 가능성의 지도를 AI는 강력한 GPU의 힘으로 단 몇 초 만에 탐색합니다. 반도체가 발전할수록 이 발견의 속도와 효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집니다. 미발견된 패턴을 찾는 일은 공장 자동화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인간의 역할은 장인에서 방향키를 쥔 항해사로 이동합니다. AI가 무한한 가능성을 탐험하면 인간은 그중 단 하나의 발견에 의미와 의도를 부여합니다. 기사에 나온 AI 유튜버는 창작자라기보다 AI라는 고성능 탐험 로봇을 활용해 돈이 될 만한 좌표를 효율적으로 채굴하는 운영자에 가깝습니다.
이 상황을 대항해시대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대항해시대는 유한한 미개척지를 두고 벌어진 제로섬 게임이었습니다. 모든 땅을 발견하자 식민지를 두고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하지만 창작의 영역은 핵심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AI는 가능성의 지도에서 거의 무한한 조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합의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AI는 이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에서 새로운 창작물을 끝없이 발견해낼 것입니다. 이 바다의 미개척지는 고갈되지 않습니다. 이 영역에서는 영토 전쟁이 무의미해 보입니다.
그런데 진짜 전쟁은 다른 곳에서 벌어집니다. 진짜 영토는 창작물이 아니라 대중의 관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관심이라는 자원은 하루 24시간, 인간의 한정된 인지 능력이라는 명확한 한계를 가집니다. AI가 1초에 100만 곡을 발견해도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AI가 들을 만한 음악을 무한정 공급하면서 콘텐츠 자체는 희소 자원의 지위를 잃었습니다. 음악은 공기처럼 흔해졌습니다. 콘텐츠 인플레이션이 발생했습니다. MIT 미디어랩의 셰리 터클 교수가 지적했듯 오늘날의 문제는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주의력의 분산입니다.
대항해시대가 유한한 영토를 둘러싼 전쟁이었다면 지금은 유한한 관심을 둘러싼 대전쟁의 시기입니다.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어떻게든 발견되기 위한 전쟁입니다.
이 관심 쟁탈전에서 승리하는 전략은 더 많은 콘텐츠가 아닙니다. 더 강력한 이야기와 결속력, 즉 커뮤니티입니다. AI는 음악을 만들 수는 있지만 그 음악을 중심으로 모인 팬덤을 구축할 수는 없습니다. 팬덤은 공동의 경험과 인간적 매력을 기반으로 한 사회적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인간 아티스트는 이 관심 쟁탈전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답은 AI가 근본적으로 제공할 수 없는 것에 있습니다. 복제할 수 없는 경험과 대체할 수 없는 서사입니다.
먼저 라이브의 가치를 봅시다. AI 음악은 디지털 데이터로서 무한히 복제됩니다. 그 비용은 0에 수렴합니다. 하지만 라이브 공연은 정반대의 지점에 있습니다.
공연장은 아티스트의 호흡, 관객의 함성, 공기의 진동이 뒤섞이는 단 한 번의 사건입니다. 그 시간, 그 장소, 그 공기의 진동, 아티스트와의 실시간 교감은 복제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경험입니다. 사람들은 기꺼이 비싼 돈을 내고 이 희소성을 소비합니다. Statista의 2024년 분석에 따르면 세계 공연 산업은 팬데믹의 충격을 딛고 오히려 그 이전보다 약 130% 성장했습니다. 데이터가 넘쳐날수록 지금 여기의 아날로그적 현장 경험에 대한 갈망이 커진다는 증거입니다.
더 나아가 라이브의 가치는 완벽함이 아닌 취약성에 있습니다. AI가 통계적으로 가장 완벽한 사운드를 추구할 때, 인간의 라이브는 음 이탈의 위험, 거친 숨소리, 예상치 못한 감정의 폭발 같은 인간적 불완전함을 노출합니다. 팬들은 바로 그 불완전함과 위험을 감수하는 진실한 순간에 열광하고 연결됩니다.
K-Pop의 성공은 AI 시대에 인간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BTS, 세븐틴, 뉴진스 같은 그룹이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음악이 아닙니다. 그 음악을 감싸는 세계관과 성장 서사입니다.
AI가 음악이라는 단일 구성 요소를 만드는 데 집중할 때, K-Pop은 이미 이유와 경험을 설계하고 있었습니다. K-Pop은 단순히 노래를 내는 것이 아니라 세계관이라는 거대한 서사를 깔아둡니다. 팬들은 음악을 소비하는 것을 넘어 그 세계관의 퍼즐을 맞추고 해석하는 경험에 동참합니다. 이는 기획자의 치밀한 의도가 반영된,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장기적인 관계 구축입니다.
하버드대의 이은정 교수는 이를 참여형 서사라 명명했습니다. 팬들은 완성된 음악의 소비자를 넘어 아티스트의 성장 스토리에 참여하고 세계관의 퍼즐을 맞추는 공동 저자가 됩니다. 아티스트는 음악을 전달하는 스피커가 아니라 그 세계관과 서사를 구현하는 매개체이자 살아있는 페르소나가 됩니다.
우리가 아이돌에 열광하는 것은 단순히 그들의 음악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들이 연습생 시절부터 겪어온 과정, 그들이 팬들과 쌓아온 관계, 그리고 그들이 가진 인간적인 서사에 공감하고 열광합니다. 연습생 시절의 고난, 데뷔의 환희, 성장의 아픔이라는 인간의 서사는 AI가 결코 가질 수 없는 자산입니다. AI는 삶을 살아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AI가 아무리 완벽한 음악을 만들어도 이것을 만들기 위해 AI가 겪은 고뇌 같은 서사는 없습니다.
K-Pop은 음악뿐만 아니라 뮤직비디오, 안무, 팬덤 등 모든 감각을 동원하는 종합 예술 패키지입니다. AI가 만든 들을 만한 재즈와는 다른 차원의 상품입니다. 결국 팬이 사랑하는 것은 AI도 만들 수 있는 완벽한 멜로디가 아닙니다. 그 멜로디를 부르는 결함 있지만 성장하는 인간 그 자체입니다.
AI의 발견은 수학적, 통계적 확률에 기반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발견은 삶의 경험과 철학, 의도에 기반합니다. 베토벤이 운명 교향곡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청력을 잃어가는 절망과 그에 맞서는 의지라는 강력한 맥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AI가 만든 비장한 교향곡 412번과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우리는 그 음악뿐 아니라 그 음악을 만든 인간의 이야기를 소비합니다.
AI는 주어진 지도 안에서의 탐색은 누구보다 잘합니다. 하지만 AI는 스스로 지도가 잘못됐다고 말하거나 지도의 규칙 자체를 부수고 새로운 지도를 그리지는 못합니다. 쇤베르크가 12음 기법을 발명한 것이나 존 케이지가 4분 33초를 통해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던진 것은 기존 아카이브의 패턴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시스템 자체를 공격하는 행위였습니다.
결국 AI는 발견의 도구로서 경이로운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하지만 그 발견에 의미를 부여하고, 때로는 발견할 지도 자체를 새로 그리는 것은 여전히 인간의 몫입니다.
AI는 기능적 음악의 영역을 빠르게 잠식할 것입니다. 그랜드 뷰 리서치의 2025년 예측처럼 글로벌 BGM AI 생성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입니다. 배경음악, 광고 음악, 생산성 사운드 등 목적이 분명한 음악 시장이 자동화됩니다.
그러나 이 흐름은 역설적으로 인간의 진정성을 최고의 프리미엄 자원으로 만듭니다. AI가 만드는 음악이 홍수를 이룰수록 대중은 진짜를 갈망합니다. AI로 인해 콘텐츠 자체는 흔해지고 그 가치가 하락할수록, 반대급부로 인간적인 것의 가치는 올라갑니다.
진정성의 프리미엄입니다. 저 아티스트가 직접 겪은 고뇌와 경험이 담긴 가사인가? 저 노래에 아티스트의 철학이 담겨 있는가? AI는 진정성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진짜 진정성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이 진정성이 곧 프리미엄이 됩니다.
AI는 인류의 과거 데이터를 반사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그 거울이 비추는 통계적 평균값은 완벽할지언정 새롭거나 도발적이지 않습니다. 인간 아티스트의 역할은 이제 그 거울에 비친 모습을 답습하는 게 아닙니다. 그 거울에 비치지 않는 자신만의 이야기, 즉 왜 이 음악을 만드는가라는 존재의 이유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아티스트의 가치는 무엇을 발견했는가에서 왜 그것을 발견하려 했는가로 이동할 것입니다. 그 음악에 담긴 아티스트의 철학, 삶의 경험, 그리고 진정성이 AI가 흉내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영역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음악과 음악을 둘러싼 경험을 분리해서 생각해야 하는 시점에 왔습니다. AI가 창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지금, 그 질문의 끝에서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기술의 경이로움이 아닙니다. 그 기술로는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 바로 자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