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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더스 게이트 3》가 가르쳐 준 삶의 태도
우리는 게임을 할 때 자신을 전지전능한 존재로 착각한다. 가장 효율적인 선택만 골라 적을 쓰러뜨리고, 최고의 엔딩만 추구한다. 실패하면 바로 ‘불러오기’로 그 순간을 지워버린다. 수백 번 반복하다 보면 자연스레 세상이 내 의도대로 움직여야 한다고 믿게 된다.
《발더스 게이트 3》는 그 믿음을 정면으로 부순다. 게임은 플레이어의 통제권을 빼앗고, 그 자리에 20면체 주사위를 내려놓는다. 주사위는 단순한 확률 계산기가 아니라 세계를 경험하는 새로운 방식 자체가 된다.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거대한 드래곤이 불을 뿜는 장면이 아니다. 화면이 어두워지며 중앙에 주사위가 천천히 떠오를 때다. 그때 플레이어는 지금까지 쌓아 온 모든 것을—능력치, 스킬, 장비, 관계, 설득의 논리, 지난 선택—한 번에 건다. 그 한 번의 굴림이 세계의 방향을 결정한다. 성공하면 기적, 실패하면 전혀 다른 길이 열린다.
이 순간 플레이어는 깨닫는다. 나는 서사를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서사와 함께 굴러가는 존재일 뿐이라는 것을.
비디오 게임은 본질적으로 결정론적이다. 모든 대사와 장면은 이미 코드 속에 정해져 있다. 《발더스 게이트 3》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결정된 구조 위에 확률의 층을 한 겹 더 얹는다. 개발자는 수십 가지 분기를 미리 만들어두고, 주사위가 그중 어느 문을 열지 결정한다. 그래서 플레이어는 모순된 체험을 한다—세계는 이미 정해져 있지만, 동시에 끝없이 열려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 모순은 곧 철학의 오래된 질문으로 이어진다. 삶이 처음부터 끝까지 정해져 있다면 우리는 왜 책임을 져야 하는가. 반대로 모든 것이 우연이라면 선택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인간은 어느 한쪽 극단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다. 우리는 결정론과 자유의지 사이, 그 좁은 틈에 살고 싶어 한다.
주사위는 바로 그 틈을 눈에 보이게 만든다. 능력치는 내가 통제한 영역이고, 주사위 눈은 내가 도저히 손댈 수 없는 영역이다. 둘의 결합이 하나의 사건을 낳고, 그 사건이 이후 모든 것을 바꾼다.
그래서 이 게임에서 실패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다. 다른 게임들이 실패를 ‘성공으로 가는 도중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보는 동안, 《발더스 게이트 3》는 실패를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점’으로 만든다. 설득에 실패하면 평화는 날아가고 전투가 벌어진다. 그런데 그 전투 끝에 만나는 인물, 듣게 되는 대사, 드러나는 비밀은 성공 루트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것들이다. 실패는 낮은 길이 아니라 그저 다른 길이다. 삭제할 오류가 아니라 세계를 확장하는 층이다.
플레이어는 언제든 ‘불러오기’를 눌러 실패를 지울 수 있다. 대부분 그렇게 한다. 하지만 실패를 지우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게임은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그때야말로 진짜 모험이 시작된다.
삶은 불러오기 기능이 없다. 한 번 굴러간 주사위는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 실수한 결정, 깨진 관계, 놓친 기회는 그대로 남아서 이후의 모든 가능성을 바꾼다. 우리는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가정 속에서만 산다. 하지만 현실은 그 가정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직 남은 것은 그 실패를 어떻게 서사의 일부로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태도뿐이다.
주사위는 처음엔 억압처럼 느껴진다. 수십 시간 준비한 계획이 ‘1’이라는 숫자 하나에 무너지는 순간, 우리는 좌절한다. 그런데 그 좌절은 사실 통제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된다. 주사위는 개발자가 설계한 ‘정답 루트’의 독점적 지위를 깨부순다. 정답이 있어도 항상 그 정답에 도달할 수는 없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준비된 길에서 밀려나 예상치 못한 풍경과 마주한다.
그제야 주사위가 자유의 장치였음을 깨닫는다. 통제를 잃는 순간 시야가 넓어진다. 한 가지 정답만 추구하던 태도가 다양한 세계를 받아들이는 태도로 바뀐다.
야스퍼스는 인간이 죽음, 죄책, 실패 같은 한계상황에 부딪힐 때 비로소 진정한 실존적 성찰이 시작된다고 했다. 주사위가 만들어내는 작은 실패들은 바로 그런 한계상황의 모형이다. 그 순간 기존의 자아 이미지와 계획이 산산이 부서진다. 그 파편 위에서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하고, 동시에 조금 더 유연한 태도를 배운다.
문학은 늘 이 지점을 다뤄왔다. 소설 속 인물은 자신이 세계를 통제한다고 믿지만, 독자는 작가가 설계한 구조를 안다. 《발더스 게이트 3》는 그 문학적 경험을 인터랙티브하게 옮겼다. 플레이어는 동시에 인물이기도 하고 작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사위가 굴러가는 순간, 플레이어는 그 둘 다 아닌 제3의 존재—구조와 우연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는 존재—가 된다.
그 경험은 곧 삶의 태도로 이어진다. 우리는 계획과 목표와 지표로 삶을 완벽한 프로젝트처럼 관리하려 한다. 하지만 현실은 늘 계획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때 중요한 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이 일이 일어난 지금,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이다.
게임은 그 질문을 끝없이 연습하게 한다. 실패 후 불러오기를 반복하는 사람은 완벽한 서사에 집착하는 사람이고, 실패를 끌어안고 계속 나아가는 사람은 불완전한 세계 속에서도 의미를 만들어가는 사람이다. 게임은 거울이 된다. 주사위를 대하는 태도가 곧 삶을 대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현실에서도 보이지 않는 주사위와 함께 산다. 준비하고, 계산하고, 리스크를 줄이려 애쓴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엔 늘 알 수 없는 면 하나가 남는다. 그 면이 드러내는 숫자는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태도가 모든 것을 바꾼다. 실패와 우연은 더 이상 낭비가 아니라 서사의 전환점이 된다. 그 속에서 우리는 예상치 못한 인연, 일, 생각을 얻고, 결국 내가 설계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만난다.
《발더스 게이트 3》는 주사위를 화면 정중앙에 올려놓고 조용히 묻는다.
세상은 네 뜻대로만 굴러가지 않는다.
그래도 계속 굴릴 것인가.
어떤 세계를 살아갈 것인가.
플레이어는 숨을 고르고, 다시 주사위를 굴린다.
그 행위 자체가 이미 대답이다.
우리는 매일 그렇게, 보이지 않는 주사위를 굴이며 산다.
그리고 그 굴림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가
결국 우리의 이야기를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