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을 진다는 것에 대한 소고
너 인마,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야.
일하는 기분을 내고 있지.
일이란 책임이야.
근데 너는 아무것도 책임지고 있지 않아.
드라마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에서 상무가 김 부장에게 내뱉은 이 한마디는 단순한 직장 상사의 폭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2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대기업'이라는 견고한 궤도 위를 의심 없이, 성실하게만 굴러온 한 인간의 삶을 단번에 관통하는 차가운 메스였습니다. 그 순간, 화면 속 김 부장의 흔들리는 동공은 그 말을 듣는 우리 모두의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김 부장은 억울했을 겁니다. 상사의 기분을 살피느라 식은 밥을 먹은 횟수가 얼마이며, 휴일을 반납하고 회사를 위해 갈아 넣은 시간이 또 얼마입니까. 그런데 그 모든 치열함이 고작 ‘일하는 척’이었다니, 그는 분노했고 허탈해했습니다. 그러나 비명처럼 터져 나오는 억울함 뒤편, 마음 가장 깊은 어두운 곳에서는 그도 이미 알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 말이 뼈아픈 진실임을 말입니다.
엄밀히 말해, 그는 지난 25년간 단 한 번도 ‘결정’이라는 것을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결정은 언제나 위에서 내려왔고, 시대가 정해주었으며, 남들이 하는 대로 따라갔을 뿐입니다. 그는 그 결정들을 충실히 이행하는 도구였습니다. 문법으로 치자면 그는 늘 타인이 주어인 문장 속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술어(Predicate)’였지, 단 한 번도 자기 삶의 ‘주어(Subject)’였던 적이 없습니다. 주어가 빠진 술어는 아무리 화려하게 움직여도 문장을 완성할 수 없는 법입니다.
우리는 흔히 책임을 ‘맡은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는 것’이라 착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책임이 아니라 ‘복종’에 가깝습니다. 진짜 책임은 수동적인 완수가 아니라 능동적인 선언입니다. “내가 이렇게 하겠다”고 세상에 공언하고, 그 선택으로 인해 몰려올 불확실한 폭풍을 온몸으로 받아내겠다는 태도입니다. 실수했을 때 “내 판단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용기, 실패했을 때 “이것은 나의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배포. 안타깝게도 김 부장의 지난 삶에는 성실함은 있었을지언정, 이 '배포'가 빠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책임의 부재는 의사결정을 대하는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김 부장에게 인생의 선택은 백화점에서의 ‘쇼핑’과 같았습니다. 진열된 옵션 중 남들이 좋다는 것, 가격표가 적당한 것을 골라 값을 치르면 안전하게 내 것이 된다고 믿는 행위 말입니다. 하지만 인생은 반품이 가능한 쇼핑이 아니라, 불확실한 미래에 내 삶의 일부를 거는 ‘배팅(Betting)’에 가깝습니다. 진짜 어른은 잃을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겁니다. 그러나 김 부장은 늘 ‘무른 카드’만 골랐습니다. 남들이 다 가는 대기업, 남들이 다 사는 아파트, 남들이 다 하는 방식의 삶.
그렇게 남의 답안지를 베껴 쓴 인생은 위기가 닥치면 속수무책으로 무너집니다. 스스로 배팅하지 않았기에, 결과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억울해합니다. “집값이 떨어진 건 정부 탓이야”, “회사가 어려워진 건 경영진 탓이야”, “내 인생이 꼬인 건 시대 탓이야.” 상황을 탓하는 순간, 우리는 영원한 피해자가 됩니다. 반면, “그 상황 속에서 내가 그것을 선택했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내 삶의 주어가 됩니다. 주어는 핑계를 대지 않습니다. 오직 감당할 뿐입니다.
그렇다면 상황을 감당하고 책임을 지는 ‘진짜 어른’의 태도는 무엇일까요? 역설적이게도 가장 뜨거워야 할 때와 가장 차가워야 할 때를 구분하는 능력입니다. 김 부장은 이것을 정반대로 했습니다. 보고서의 폰트 크기나 줄 간격 같은 수단(How)에는 목숨을 걸고 집착했지만, 정작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라는 목적(What) 앞에서는 한없이 우유부단했습니다. 껍데기에는 비장했고, 본질에는 비겁했습니다.
진짜 리더, 진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은 다릅니다. “우리는 반드시 저곳으로 간다”는 목적에는 바보처럼 고집을 피우되, “이 길이 막혔네?”라는 현실의 증거 앞에서는 누구보다 냉정하게 돌아설 줄 압니다. 목적에 대한 광기 어린 믿음과 수단에 대한 차가운 유연성. 이 두 가지가 공존할 때 인간은 비로소 불확실성이라는 파도를 타고 원하는 곳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주어가 되어 산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매일 흔들립니다. 새벽에 눈을 뜨면 어제 세운 원칙이 초라해 보이고, SNS 속 타인의 화려한 쇼핑 목록에 배가 아프고, 당장 눈앞의 안락함이 달콤해 또다시 주저앉고 싶어집니다. ‘내가 과연 맞게 가고 있는가’라는 의심이 꼬리에 꼬리를 뭅니다. 하지만 그 흔들림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멈춰 있는 나침반이 고장 난 나침반입니다. 진짜 나침반의 바늘은 북쪽을 가리키기 위해 쉴 새 없이 파르르 떨립니다. 김 부장의 비극은 그가 평생 흔들리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관습과 욕망, 타인의 시선이라는 강력한 자석에 딱 붙어 미동조차 하지 않았고, 그것을 ‘안정’이라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인생은 끝내 자신의 북쪽을 찾지 못했습니다.
지금 당신이 느끼는 불안, 갈등, 그리고 가슴 한구석의 미세한 떨림은 무엇을 말합니까. 그것은 당신의 내면이 여전히 자북(Magnetic North)을 향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당신의 영혼이 아직 관습에 녹슬지 않았다는 신호입니다.
떨리는 나침반만이 살아있는 나침반입니다. 그러니 그 떨림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신이 떨리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당신만의 방향을 찾고 있다는 뜻이며,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북쪽을 향해 가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니까요.
오늘도 마음껏 떨리십시오.
그 치열한 떨림의 끝에서, 당신은 비로소 누군가의 ‘김 부장’이 아니라,
당신의 이름 석 자를 가진 온전한 주인으로 우뚝 서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