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플 메가 대가족이어서 먹여살리기 위해 작곡한 바흐

예술가의 이야기

by 레몬푸딩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는
단순히 개인의 천재성으로 설명되는 작곡가라기보다,
여러 세대에 걸쳐 음악가를 배출해 온 **‘바흐 가문의 중심 인물’**에 가까웠다.


바흐 가문은 16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온 음악가 집안이었다.
교회 오르가니스트, 궁정 음악가, 도시 악장들이 대를 이어 등장했고,
그 수가 워낙 많아 당시 독일 일부 지역에서는
“음악가라면 바흐일 것이다”라는 말이 관용구처럼 쓰였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바흐’라는 성 자체가 이미 음악가 집안을 상징하는 이름이었다.


이러한 가문적 전통 속에서 바흐가 음악을 직업으로 선택한 것은
특별한 결단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흐름에 가까웠다.
하지만 그의 음악가로서의 삶은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낭만적 예술가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바흐는 두 차례의 결혼을 통해 총 20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중 상당수는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 있는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은 막중했다.
따라서 그에게 작곡과 연주는
자기표현을 위한 예술이라기보다
가계를 유지하기 위한 전문 노동의 성격이 훨씬 강했다.


실제로 그는 교회와 궁정의 요구에 맞춰
매주 새로운 음악을 써야 했고,
작곡가이자 연주자, 교육자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그의 삶은 영감이 떠오를 때만 음악을 쓰는 자유로운 예술가의 삶이 아니라,
극도로 규칙적이고 성실한 직업인의 일상에 가까웠다.


바흐에게 음악은
낭만 이전에 책임이었고,
현실적인 생계 수단이었으며,
무엇보다도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