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째 도전 또 도전
어찌하다 보니 20년째 대기업을 다니고 있다.
그리고 상담사가 되었다.
인생이 이렇게까지 예상치 못하게 흘러갈 수 있는 것일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상담실에 앉아서 내담자와 상담을 하고 있었다.
대기업의 경영업무를 하는 스태프 부서에서 일하고 있는 내가 어찌해서 상담사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어릴때부터의 스토리를 좀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전자 전기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고등 학교 때는 이과를 나왔다.
이과를 선택한 것은 순전히 아빠의 조언 덕분이였다.
"이과를 선택했다가 문과를 갈 순 있어도 문과를 선택했다가 이과는 가기 어렵다.
그러니 먼저 이과를 선택해서 해 보렴."
그때만해도 내가 뭘 좋아하는지 이런 부분에 대해 별 생각이 없었다.
그냥 엄마 아빠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일 뿐이었다.
하지만 알았다. 난 국어나 영어 쪽은 좋아했지만 수학은 안 좋아했다.
안 좋아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어떤 부분은 잼있는 부분이 있었다.
특히 남들이 싫어하는 미,적분이 난 좋다.
아주 어려운 공식이 쭉 나열 되어도 결국 미적분의 답은 0이나 1일 경우가 많았다.
특히 미분을 하다보면 바로바로 작아져버리고 없어져 버리는 값들을 볼 때의 쾌감이 있었다.
그리고 수학을 풀다보면, 아니 외운 대로 적다 보면 결국 답이 딱 맞아 떨어질 때 기쁨과 환희가 있긴 했다.
그러니 수학이 어렵고 막 좋진 않지만 또 싫지도 않았다.
그것이 내 문제였다. 모든 학문을 어느 정도는 관심을 가지고 해 나간다는 것.
하지만 정말 해도 안되는 과목이 있었었는데, 물리였다. F=ma 그건 정말 이해되지 않는 영역이였다.
그렇게 이과를 가서도 어느 정도 잘 따라갔다.
하지만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한 고3 때 나는 시간을 정말 쪼개서 생활 했는데,
공부 시간 전체의 약 70~80% 사용할 정도로 수학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수능에서는 전체 깎인 점수 중 50%가 넘는 점수가 수학이였다.
수능 영어 듣기 평가 시간에 라디오 방송이 같이 흘러 나왔다.
약 5~6문제가 그렇게 들렸다.
아직도 또렸이 기억한다.
"자, 다음 곡은 컨츄리 꼬꼬의 깁미 깁미 입니다."
영어 듣기 평가와 깁미 깁미가 같이 울려퍼졌다.
"깁미~ 깁미~"
그 와중에서도 난 영어 듣기 평가를 1개만 틀렸다.
어렵풋이 찍어서도 맞추는 감이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게 전기 전자 컴퓨터 공학에 들어가 공부를 하는데 정말 재미없었다.
공부량도 너무 많아서 날을 새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분량이였다.
대학을 들어갔다는 그 해방감에 열심히 놀았기 때문에 공부는 당연히 거의 하지 않았다.
시험 직전 공강시간에도 펌프를 하러 오락실에 갔다.
그래도 그러다가 이렇게 살면 안되지 하고 정신을 차리고
열심히 공부를 해서 공업수학2 중간고사엔 90점 이상을 받아서 교수님께 박수를 받았던 적이 있다.
이게 문제였다. 안될 거면 아예 안 되지, 뭔가 어느 시점에 열심을 하면 되어졌기에 그 길을 계속 갔던 것 같다.
그리고 대학교 시작 무렵 우리집의 경제 형편이 매우 어려워지면서 그 이후 진로에 대해서 고민할 여력이 없었다. 그렇게 방황하며 삶을 살아갈 뿐이였다.
그렇게 우르르르 들어가는 대기업 연구소에 입사를 했다. 그때만 하더라도 대기업 연구소를 몇 백명씩 신입을 뽑을 때였다.
나는 내가 인문학적 성향이 꽤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내가 코딩을 주로하는 연구소에서의 생활은 정말 힘들었다.
하지만 그 당시엔 왜 힘든지도 몰랐다. 내 적성이 안 맞아서일 거라는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다들 대기업이면 좋은 회사인데 나오지 말고 버티라는 이야기만 했다.
4년째 되던 해, 대상포진을 앓았다.
6년째 되던 해, 그때 병원을 8군데를 다니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너무나 아파서 퇴사를 하려고 할 때, 운좋게 알게된 사내공모를 통해 지금일하는 본사 스태프로 직무 변경을 할 수 있었다.
기획서를 작성하고 데이터 기반으로 스토리 라인을 짜는 일이었다. 뭐 등등 잡무도 많았지만 나는 이 일이 재미있었다.
그렇게 약 10년이 흘렀다. 치열하게 회사에서 견디고 버텨왔다.
실은 생계형 직장인에게 적성을 운운한다는 것은 사치였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고 직장을 그만 둘 수 없는 큰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직장을 그만 둘 수 없었던 이유는 머릿속으로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정말 나가서 내가 원하는 것을 찾아서 그것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에 결정내릴 수 없었다.
회사 다닌지 15년차쯤 되자 마음에 여유가 조금은 생겼던 것 같다.
그때 대학원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학교 타이틀이 좋은 교육 대학원을 고민했다. 하지만 그곳을 졸업한 선배님이 관련한 일들을 하고 계시지 않았다.
그러다 친한 친구가 회사를 다니며 나왔던 상담 대학원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거다! 눈이 반짝 였다.
꽤나 오랜기간 동안 Next Step을 놓고 고민했었기에 단번에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대학원 입학 시즌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가 원서를 냈다.
그렇게 상담 대학원에 입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