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사육.

손녀를 낳은 이유?

by 월하수희

“엄마.. 일 안 가면 안 돼?.”


“왜? 학교 마치고 집에서 할아버지랑 잠깐만 놀고 있어. 엄마 금방 맛있는 거 사가지고 올게.”


내 말이 끝나자마자 딸은 누가 꼬집기라도 한 거처럼 온몸에 경기를 일으키며 눈을 피했다.

그때라도 알았어야 했다.

아니, 그때 알았어도 늦은 거였다.


그날 난 평소보다 일찍 집으로 향했다. 불길한 생각들로 심장이 요동을 쳤고 미세하게 경련하는 몸을 진정시키고 단번에 문을 열어젖혔다.


‘하나님 맙소사.’


나는 이 장면을 본 적이 있다.

멧돼지가 늙은 당나귀가 되었을 뿐이지, 당황한 듯 바지춤을 추스르는 저놈은 변함없는 악마다!


난 본능적으로 떨고 있는 딸을 향해 미끄러지듯 달려갔다.

“할아버지가.. 할아버지가..”


죄인처럼 두 손을 모으고 울먹이는 딸을 힘껏 끌어안으며 악마의 얼굴을 죽일 듯 쏘아보며 외쳤다.

“할아버지 아니야! 네 아빠야!.”


내 품에서 바둥대는 작은 아이는 충격으로 몸도 마음도 상처투성이지만 뻔뻔한 늙은 악마는 늘어진 내의를 바지춤에 쑤셔 넣으며 소리친다.


“확! 이게 어디서 개수작이야? 증거 있어? 니들 쓸데없는 짓 했단 봐! 동네가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게 해 줄 거야 알겠어? 콱 씨 재수가 없으려니까.”


저놈의 말이 무슨 말인 줄 안다. 그래서 나는 40년 동안 지옥구덩이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엄마 이제 어떡해…. 엉엉..”


듣지 않아도 내 딸에게 어떤 짓을 했을지 알 수 있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뭘 어떡해! 넌 엄마 있어. 엄마가 지켜줄 거야.”


나는 이제라도 내 딸을 지켜야 했다. 그때는 보호받지 못해 지옥 불로 태워버렸던 시간을 대물림시킬 수 없다. 증거? 있다!


나는 서랍을 뒤져 언제부턴가 잊고 있던 케케묵은 수첩들을 꺼내어 펼쳤다. 그것들을 뒤적이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알았어야 했다. ‘참 잘했어요’ 도장이 언제부터 찍히지 않았는지.


내가 왜? 어떻게 잊을 수 있었을까? 저놈이 악마라는 사실을!

40년이라는 세월은 저 악마가 악마로 태어났다는 것마저 잊고 살게 했나 보다.


41년 전 1986년 봄. 저놈에게도 다정한 이름이 있었다. 내 손을 잡고 초등학교 입학식에 데려가 주었던 다정했던 ‘아버지’. 그게 그놈의 이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내려다보는 그놈의 기분 나쁜 눈빛을 마주하며 맞잡은 손에서 끈적이는 땀이 배어 나왔던걸 기억한다.


그렇게 1년 후 나는 그놈의 여자가 됐다.

작고 힘이 없던 나는 도망칠 곳도 없었다.


어느덧 아이에서 소녀로, 소녀에서 어른이 되어 몸집이 자라고 도망칠 곳도 생긴 나는 아버지라는 더럽고 끔찍한 몸뚱이 밑에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써왔다.


그러나 그래봤자 그놈 손아귀였다.

뱀같이 영악하고 멧돼지같이 탐욕적인 그 짐승에게서 나는 번번이 벗어날 수 없었다.


평범한 일상. 평범한 학창 시절. 평범한 연애.

그 어떤 평범한 것도 내겐 허락되지 않았다.


결국 몇 번이나 그 악마의 아이를 갖게 되었고 그때마다 그놈은 강제로 낙태시켰다.


그놈은 그렇게 내 몸의 아이를 지우고 자기 죄책감도 지웠나 보지만 나는 지울 수 없었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그놈의 여자가 된 순간을 지운 적 없었다.

1985년 겨우 아홉 살이던 그 날밤부터 그놈을 견뎌내고 나면 나는 수첩에 ‘참 잘했어요’ 도장을 찍어왔다. 그게 300개가 다다를 때까지…. 그렇게 꾸역꾸역 숨만 쉬고 살아왔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도장을 찍는 날이 줄어들었다.

곧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 걸까? 조금씩 나도 평범한 날들을 기대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 방심했던 어느 날 중 하루였을까?

나는 또 그놈의 아이를 갖게 됐고 이번에는 딸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낳아 기르라고 허락했다.

그 모든 시작은 어쩌면 악마의 끔찍한 계획이었을지도….


나는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이 수첩들을 보면서 그것을 확신하게 됐다. 더 이상 도장이 찍히지 않게 된 날을 거슬러 보니 그날은 내 딸이 처음으로 그놈에게 당한 날이다.


완전한 사육.

짐승도 이런 짓은 안 한다. 아니, 못한다.


결국 나는 칼을 뽑아 들었다. 저놈을 난도질하고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 것이다.


그렇지만 나까지 감옥에 들어가면 내 딸은 어쩌란 말인가? 법대로 한다면 어떤 처벌이 합당할까?

사형이 집행은 되는가? 나의 지옥 같던 40년과 내 아이의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보상하겠는가?

놈의 죽음으로 되겠는가?


법정 소송이 이어지자,

놈이 발악한다.

“그깟 도장 같은 게 무슨 증거가 돼? 니네 말뿐이잖아 대충 합의해 줄 테니까 닥치고 있으라고.”


나는 웃었다.


“당신, 눈앞에 있잖아 살아있는 증거. DNA.”


내 딸이 말한다.


“마지막으로 한번 불러드릴게요, 아버지.”




뒷이야기-


실제 뉴스보도中-


-40년간 친딸을 성폭행하고 생물학적 친딸인 손녀까지 성폭행 한 70대 남자에게 25년이라는 중형이 선고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뉴스에서 틀린 말을 찾아보세요.

분명 있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그래요.


평생을 악마와 지옥에서 살아야 했던 그녀들의 고통을 가늠하실 수는 있겠습니까? 앞으로의 인생도 어쩔지 모르는 겁니다. 그런데 고작 저자가 25년 동안 감옥에서 편히 먹고 자고 하는 것이 중형입니까? 저 짐승만도 못한 놈을 먹이고 재우는 것이 중형이라고 떠들어대는 게 정말 맞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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