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살인#2
그녀에게 가는 길. 차가 신호에 걸렸다.
최대한 내 일에 방해하지 않으려는 듯 조용히 운전만 하던 김 수사관이 크게 숨을 내쉬며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검사님. 사람을 둘이나 죽였는데 그때마다 실수였다 하고 3, 4년씩밖에 안 살고 나오는 게 가능합니까? 게다가 친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몽둥이로 전신을 패서 돌아가셨다는데, 보통 그런 패륜범죄는 형이 더 세지 않나요?”
나는 무표정하게 그의 말을 정정하고 답을 들려준다.
“형법 제250조 살인,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 제250조 제2항 존속살해, 사형 또는, 7년 이상의 징역! 의외로 하한이 더 낮습니다. 그러나 말씀하신 것처럼 실제론 정상참작이 어려운 ‘반인륜적 범죄’로 간주하여 훨씬 무겁게 처벌되긴 했죠.”
“그러니깐요, 어떻게 아내를 죽이고도 고작 3년을 살고 나온 놈이 나오자마자 아버지를 때려죽였는데 또 4년, 그것도 형기도 다 안 채우고 내보내 또 이렇게 끔찍한 살인을 저지르게 만드냔 말입니다.”
그의 말에서 진심으로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 순수한 답답함에 나 역시 이해할 수 없었던 그놈의 판결문이 떠올랐다. 나도 모르게 재판장에 판사처럼 그놈의 감경 사유를 읊기 시작했다.
“깊이 뉘우치며 다시는 이러한 범행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한다….”
그가 아예 내 쪽으로 몸을 훽 돌려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뭡니까? 정말 그게 감경 사유였습니까? 이미 사람을 둘이나 죽였는데도요?.”
“상해치사.. 정말 치사 한 변명 아닙니까?
죽을 때까지 때렸으면서, 죽으라고 때렸으면서 살인에 고의성이 없었다니, 정말 죽을 줄 몰랐다니….”
나 역시 의문투성이 인 이 사건으로 말줄임표만 늘어갔다. 그때 그가 운전대를 턱 하고 치더니 그럴듯한 비유를 꺼냈다.
“갑자기 그 말이 떠오르네요. 박종철 고문사건,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죽었다. 그거랑 뭐가 다릅니까?.”
“그러네요. 얼마나 깊이 반성하고 뉘우치는 것처럼 보였으면 판사님의 그 큰 재량으로 악마에게 선처를 베푸신 걸까요? 그만큼 그놈의 말빨과 연기력을 무시하면 안 될 거예요.”
김 수사관은 다시 운전에 집중하면서도 입은 쉬지를 않았다.
“감옥이 비좁아서 그런가? 이런 흉악범들을 왜 자꾸 대책 없이 사회에 풀어놓는지.. 얼마 전에도 두 명을 죽이고 고작 10년 살고 나온 놈이 나오자마자 자기가 죽인 피해자 가족을 모조리 죽여버렸던 거, 기억나시죠? 형량이 턱없이 부족해요.”
나 역시 얼마 전 아내를 죽여 7년을 선고받고 나오자마자 또 자기 형수를 살해한 놈을 떠올렸다.
“그러게요.. 이쯤 되니 지구의 인간이 넘쳐나니까 판사가 악마를 풀어 인간사냥을 하는 중인가 그런 생각마저 드네요.”
나는 법조인으로서 해서는 안 될 말을 스스럼없이 꺼내버렸다. 그가 날 어떻게 생각해도 상관없다.
“제 말이요. 판사가 연쇄살인마나 다름없네.”
그 말을 듣고 나는 이 사람과 오래 같이 일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비죽 웃음이 나왔다.
그가 룸미러 너머로 골똘해져 있는 내 얼굴을 살피더니 조심스레 묻는다.
“그런데 검사님 그 한 사람, 그러니까 또 다른 피해자를 찾을 거라는 확신이 있으셨던 겁니까?.”
“이놈의 살인 쉼표는 감옥이 유일했어요. 나오자마자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때려죽인 아주 잔인하고 폭력적인 놈이에요. 그런 놈이 전국 수배가 내려진 상태에서 2년 동안 경찰 눈을 피해 잘도 숨어있었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 거 같아요?.”
나는 질문으로 다시 답했다.
“그야.. 신창원 같은 놈처럼 신출귀몰하지 않았을까요?.”
코웃음을 쳤다. 그리고 더 생각해 보라고 질문하듯 대답했다.
“널리고 깔린 cctv, 경찰들도 이미 그가 갈만한 곳엔 몇 달 동안 잠복해 있었어요. 요즘 같은 세상에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럼 어떻게?.”
“수사관님, 갑작스러운 질문이겠지만 객관적으로 수사관님, 덩치도 좋은 훈남이시잖아요? 번듯한 직업도 있으시고,”
그의 얼굴에서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비집고 터져 나오려 하자, 난 끝나지 않은 뒷말을 급히 이어 붙였다.
“그런데도 아직 미혼이시고 싱글이시죠? 불혹에 나이를 앞두시고 말이에요.”
입술을 고쳐 물며 굳은 표정으로 대꾸하는 그.
“다 맞는 말씀이긴 한데 그게 그놈 애인 찾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
“그놈은 그 개떡 같은 면상에 직업도 없고, 수사관님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데 여자를 잘도 갈아치웠어요. 심지어 마지막 피해자는 그놈의 애를 갖은 죄로 죽도록 맞고 자기 집에서 쫓겨났다가도 그놈이 있을 집에 다시 들어갔다가 결국엔 기어이,
죽을 때까지 맞았어요. 왜일 거 같아요?.”
대답 대신 내 눈치만 보고 있는 김 수사관을 향해 덤덤하게 대답해 줬다.
“사랑했으니까.”
김 수사관은 침묵을 지키며 미간을 찡그려 답답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다.
“누구나 사랑이라는 감옥에 갇히면 상대가 풀어주기 전에는 쉽게 나오기 힘든 법이에요. 이놈은 또 그 뱀 같은 혀로 어떤 불쌍한 여자를 꼬드겨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감옥에 가뒀을 거예요. 감옥에 갇힌 사람이 신고를 할 수 있었을까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내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조금 언성을 높여 김 수사관이 내게 되물었다.
“그놈 면상 아주 난장판이던데, 그게 가능합니까? 사람을 죽이고 도망 다니는 놈이 그렇게 쉽게 여자를 꼬실 수 있단 말이에요? 검사님은 뭐 그 사랑이란 감옥에 갇혀 보신 거처럼 말씀하시네.”
이번엔 내 미간이 급하게 하나로 모였다. 눈꺼풀이 바르르 떨리고 심장이 요동쳤다. 나는 그 위험한 곳에서 빠져나오려 머리를 잘게 흔들어 쳤다. 그리고 다시 단정한 말투로 대꾸했다.
“법보다 주먹이 빠르다는 거는 아실 테고 주먹보다 빠른 게 뭔지 아십니까? 혓바닥이요. 그 혀로 내뱉는 말은 언제나 법보다 무섭고, 주먹보다 빨라요.”
그래도 뭔가 찜찜함이 남아있는 그의 얼굴을 보고 대답을 이어갔다.
“그놈의 트리거는 믿지 못하시겠지만 믿음이에요. 피해자가 유일한 내 편이며 본인을 사랑하고 있다는 믿음!. 그 믿음이 생기면 지 더러운 본성을 마구 꺼내놓는 거죠.”
엉덩이를 들썩이고 언성까지 높여가며 되묻는 김 수사관.
“아니, 자기를 사랑한다는 믿음이 생기면 더 소중히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나는 깊은 한숨을 꺼내와 뱉었다.
“초등학생도 그런 순수한 질문은 안 하겠네요.
많은 사람이 저지르는 치명적인 실수가 뭔지 아세요?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제일 못되게 구는 거예요.
‘나 원래 이런 사람인 거 네가 제일 잘 알잖아 그러니 너만은 날 이해해야지?’ 또는 ‘난 너에게 이만큼 사랑을 줬어. 근데 너는 그거밖에 못 해?.’ 그런 무의식과 보상심리들이 가까운 사람에게 계속 상처를 주는 거예요.
찔러서 안 아픈 사람, 계속 찔려도 안 죽는 사람 없습니다. 그런 하찮은 말로도 사람은 살고 죽고 하는데 그놈은 그렇게 혀로 감아 꼼짝 못 하게 하고 주먹으로 죽을 때까지 쳐 죽였어요. 이제라도 법이 다가가야죠.”
예상대로 그녀 역시 그놈의 피해자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녀는 그놈의 감옥에서 여전히 갇혀있는지 법정 증언은 거부했다.
“사랑했어요. 그것만큼은 진심이었다고 전 생각해요. 술만 마시면 손버릇이 나빠서 그렇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니었어요.”
예상했던 대답, 나는 그녀의 진료기록을 들이밀었다. 그것으로 그녀가 자신의 감옥을 들여다볼 수 있길 바랐다.
“김미진 씨, 오는 길에 김미진 씨 진료기록 확인하고 왔습니다. 지난 2년 동안 잦은 골절상과 타박상으로 치료를 받으신 거로 아는데. 그 정도면 그냥 손버릇이 나쁜 게 아닙니다. 미진 씨가 정말 운이 좋았던 거예요. 미진 씨처럼 생각하다 그의 폭력에 죽어간 생명만 넷입니다. 배 속의 아기까지요.”
그녀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그래도.. 그래도..”
‘염병.. 그래도는 개뿔..’
우리는 한숨을 늘어지게 쉬며 그녀의 작은 원룸에서 나왔다.
“이제 어쩌죠?.”
“처음부터 기대 안 했어요. 제가 말했잖아요. 기록을 모아쥔 이 펜으로 그놈의 숨통을 그어버릴 거라고.”
2010년 재판 당일. -
'나는 이놈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한다.
그 선고가 내려지는 날, 판사는 반드시 그 형을 선고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마주한 피고인 변대호는 사람을 몇이나 때려죽인 놈치고 너무나 비루하고 초라해 보였다.
이것 역시 이놈의 가면 중 하나렸다.
증인석에 그를 세우고 나는 묻기 시작했다.
“피고인, 피고인의 잔인한 폭력으로 죽어간 생명이 넷이나 됩니다. 모두 피고인의 가족이었죠. 당신을 가장 사랑하고 유일한 편이었을 가족들만 때려죽인 이유가 혹시 이겁니까? ‘당신 편’이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 편인 이유로 그들은 침묵하고 감내하다, 결국 피고인의 손에 의해 끔찍하고 잔인하게 죽어갔습니다. 맞습니까?.”
그동안의 알코올이 수분을 다 빨아먹은 듯 푸석한 얼굴에 노릿한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며 답답한 듯 자신을 변호하는 변대호. 55세
“몇 번을 말합니까? 제가 사랑하는 아내를 왜 죽입니까? 사실 기억도 잘 안 납니다.”
“피고인은 평소에도 그렇게 둔기나 흉기 등을 함부로 사용하시나요? 필요에 의해서나? 화가 나거나?.”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저는 절대 그런 사람이 아닙니다.”
울 듯이 애원하듯이 절절대며 호소하는 변대호.
나는 절대 너의 연기에 넘어가지 않겠어!
“소년부 송치 기록이 있어서 그걸 토대로 묻고 있는 겁니다.”
내 질문이 점점 날카로워진다고 느꼈던지 가까스로 치켜뜨고 있던 눈꺼풀도 접어버리고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기억이 안 납니다. 그때가 언제라고….”
기억이 안 나시겠다? 기억나게 해 드리면 되는 간단한 일.
“그때가 언제냐면요. 1971년 피고인이 16세 시절 흉기를 들고 절도를 저질렀던 그 사건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이의 있습니다. 변호인은 지금.”
“인정합니다. 지금 사건과 관련 있는 얘기만 하세요.”
질 수 없는 게임이었다. 가시와 뼈만 발라내면 되는 도마 위의 죽은 물고기나 다름없는 놈이었다.
나는 반듯한 양복의 넥타이를 고쳐 매고 다시 변대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어린 시절이라 기억이 나질 않으시나 보군요. 그래도 첫 결혼 상대자였던 분과는 십여 년이 넘게 사셨던데 그분을 때려죽였던 건 기억하시겠죠?.”
법원이 술렁였다. 그놈과 그놈의 변호인만 빼고.
변호인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 뻔뻔한 낯짝을 다시 한번 뒤집어 한숨 섞인 말을 뱉는 변대호.
“아이고, 그때도 제가 술을 많이 마셔서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제가 그랬는지 아닌지도 정말 모르겠어요.”
이놈의 수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토록이나 뻔뻔하게 자기 죄를 부인할 줄이야. 나도 모르게 한쪽 뺨이 미세하게 부들거리며 당겨 올라갔다.
“또 기억이 안 나시는군요, 그때도 그렇게 '기억이 안 난다, ' 십 년 넘게 함께 살고 있던 아내를 죽을 때까지 때려죽이고도 '살해의 의도는 절대 없었다.' 그렇게 정말 치사한 변명 ‘상해치. 사!’ 살인이 아닌 치사죄로 고작 4년의 형을 받고 그마저도 모범수로 출소하셨네요?.”
“이의 있습니다.”
“기각합니다. 계속하세요.”
판사의 동의에 탄력을 받은 나는 죽은 물고기의 회를 뜨는 심정으로 썩은 동태눈깔의 피고인을 향해 대답을 들을 필요가 없는 질문을 쏟기 시작했다.
내 도마 위에 네놈이 다시 펄떡일 일은 절대 없게 만들겠어!
작가의 말- 이놈의 이야기는 다음 회로 끝이 나겠습니다. 지금까지는 팩트를 기반으로 한 소설 한 스푼이었으나. 엔딩을 내 맘대로 바꾸고 싶은 마음이 절절합니다.
그러나 정보전달이 목적인 만큼 최대한 자제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