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백한 살인. 그 끝

죽은 자는 돌아올 수 없지만 죽인 자는 언제든 돌아온다.

by 월하수희

“피고인, 첫 번째 아내를 살해하고 나오자마자 어디 계셨습니까?.”


“그야.. 갈 데가 없었으니까 부모님 집에..”


“네 맞습니다. 변변한 직업도 없이 부모님 집에 기거하고 계셨죠? 그 집에서 아버지를 때려죽인 것은 출소 후 며칠 만이었는지 기억나십니까?.”


“기억나지 않습니다. 저도 정말 미치겠어요. 그렇게 화가 난 순간엔 기억이 정말 날아가 버린 거 같다니까요.”


나는 이 뻔뻔한 거짓말에 놀아나지 않는다.


“그럼 비교적 최근인 2년 전 임신한 아내를 두들겨 패고 숨이 끊어지자 끈으로 묶어놓고 아내의 돈으로 술을 사서 마신 그날은 기억나십니까?.”


“아 그날도 잘 기억이 안 난다고요. 다 술이 웬수지.”

변호인이 일어나 이 부분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심신 미약을 주장하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모두 들어준 후에 판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 피고인의 심리검사 자료입니다. 증거로 채택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놈의 지독히도 이기적인 심리상태를 내 입으로 천천히 꺼내놓기 시작했다.


“스스로 사소한 일에 자주 화가 난다고 하셨죠? 성격이 급하다고도 하셨고요? 피고인의 심리평가는 이러합니다. 사전 사후 판단 능력 부족. 대인관계의 폭이 좁고 자극 추구 적이며 지루한 것을 못 참음. 과도하게 흥분하는 성향, 알코올 문제가 상당함. 면담 과정에서 수시로 진술을 번복함. 이 얘기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가 아니라 병적 수준의 거짓말이라는 겁니다.”


“이의 있습니다.”


“제 질문 아직 안 끝났습니다.”


“기각합니다. 계속하세요.”


“피고인 부인하실 겁니까?.”


“정말 기억이 나지 않는 걸 어쩌란 말입니까? 그럼 제가 거짓말쟁이라 는 겁니까?.”


“네 맞습니다. 피고인 마지막 피해자 아내분 께서 변대호 씨의 성함을 뭐로 알고 계셨죠? 몇 년 동안 살붙이고 살았고 아이까지 임신한 아내가 변대호 씨를 뭐라고 불렀나요?.”


피고인은 말이 없었다.

“박달호 씨! 그날 일을 제가 상기시켜 드리죠. 피고인 변대호는 자기 아내에게까지 가명을 쓰는 지독한 거짓말쟁이가 맞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그의 진술 무엇을 믿을 수 있을까요? 그의 왔다 갔다 하는 진술 그 마지막을 들어보시죠. 아내에게 아이가 생긴 걸 아시고 화를 내셨다고요?.”


“아니 이 나이에 애가 생기면 좋은 거죠, 분명 그렇게도 말했습니다.”


“갑자기 기억력이 좋아지셨네요. 그렇게 말씀하셨던 분이 그 아이가 누구 아이냐며 폭행하셨죠?. 급기야 아내가 사망에 이르렀던 그날엔. 아무 이유 없이 임신한 아내를 꼴 보기 싫다고 내쫓으셨죠? 그것도 아내 소유의 집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다시 들어온 아내를 어디 나갔다 왔냐며 또 폭행하셨고요. 어떤 폭행에도 정당한 이유는 없지만 대체 어떤 근거로 아내를 의심하고 그렇게 수시로 내쫓고 폭행하신 겁니까? 그것도 죽을 때까지.”


“그건…. 그건. 모두 다 아버지 탓이에요. 저는 불우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폭력 아래서 자랐습니다. 모두 다 아버지의 폭력 때문이에요.”


변대호는 없는 눈물까지 짜내느라 매우 고돼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아버지 이야기가 나온 이상 나는 그 아버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 아버지 말인데요. 피고인이 출소하자마자 몽둥이로 전신을 죽을 때까지 때려죽여 놓고도 상해치사로 3년을 살고 나온 그 사건 말입니다. 정말 살인의 고의성이 없었습니까? 지금 말씀하신 거 보면 오히려 아버지의 폭력에 맞서기 위해서 힘을 기르고 때를 기다린 거 아닌가요? 비겁하게도 아버지가 술에 취해 몸도 못 가눈 그 틈을 타서 말입니다.”


예상했던 데로 변호인이 번쩍 일어나 이의 있음을 주장했고 나 역시 인정한다고 마무리했으나 법원 안에 모든 사람은 이미 변대호를 향해 독한 눈을 뿜어내고 있었다. 예상대로 잘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나 변호인이 써온 시나리오는 꽤 절절하고 그럴싸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은 분명 끔찍한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피고인은 어릴 적부터 일관된 가정폭력의 피해자였습니다.

출소 후, 사회는 그에게 아무런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일자리는커녕 정상적인 대인관계조차 맺지 못한 채, 다시 가해자였던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야 했고, 결국 그 폭력은… 다시 폭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사건에 대해서 피고인은 당시 심각한 알코올 의존 상태였으며, 그것은 이 사람의 인생 전반이 ‘비극의 연속’이었다는 증거입니다. 그가 저지른 행위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존재’는 이해받아야 합니다. 법이 단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피고인에게도 마지막 기회를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개소리 씨불이고 있네. '


그러나 판사의 얼굴이 크게 끄덕인다. 난 한층 목소리를 높여 판사와 청중을 향해 말했다.


“그가 이해받아야 할 인간이라면, 지금 증언하러 나오는 이 여인은… 어떻게 이 자리에 서 있을 수 있었을까요. 살아남았기 때문입니다. 살아남은 자는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들이 외면한 ‘진짜 피해자’를.”

나는 눈을 빛내고 판사를 향해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재판장님 증인 신청합니다.”


초췌하지만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증인석에 서서 선서하고 변대호를 똑바로 바라보며 자리에 앉는 김미진.

그동안의 많은 일들을 진술했고 그녀의 진료기록도 증거로 함께 채택됐다.


나는 사실 막판에 마음을 바꿔준 그녀의 심경변화가 궁금했다.


“김미진 씨 여기까지 와주신 거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 마음을 바꾸신 이유가 있습니까?.”

“검사님께서 마지막에 저에게 말씀하셨죠? 태어날 아기까지 네 명을 때려죽였다고요.”


그녀는 말하는 내내 자기 배를 쓸고 있었다.


“사실 제게도 아이가 있었습니다. 그것도 8개월이나 제 품에 있었어요. 익숙하던 폭력이지만 그날은.. 만삭인 제 배를 그렇게까지 걷어찰 줄은 몰랐어요. 그렇게 아이는 떠났습니다. 그럼 이제 그 아이까지 다섯이나 저 사람이 죽인 거예요.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계속 사람을 죽이는 사람을 계속 풀어주면 안 되는 거잖아요. 흑흑...”


단단하게 자기 말을 이어오던 그녀가 아이의 말을 꺼내고 눈물을 쏟기 시작했다.

나조차도 예상하지 못했던 또 하나의 피해자.

법원은 숙연해지기까지 했다.


“피고인 변대호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한다.”


법정이 술렁였다.


“무슨 사형이야! 말도 안 돼!”


피고인 변대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고 그 옆에 변호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떨군 채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손엔 마지막까지 주장하려 했던 탄원서 사본이 구겨져 있었다.

미진은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싼 채 어깨를 들썩였고,

한쪽 편엔 고 김유진 씨의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자글한 눈가에 피 같은 눈물이 맺히고 그동안의 한 맺힌 가슴을 부여잡고 있었다.

사형이라는 말이, 딸의 억울함을 대신해 줄 수 있을까. 그 복잡한 표정엔 20년을 넘게 삼켜온 울음과 분노, 그리고 허무가 섞여 있었다.

그 모든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조용히 펜을 내려놓았다.


핏자국이 말라붙은 듯한 펜촉은 여전히 차가웠다.

폭력은 때리는 자의 것이 아니라, 참는 자의 것이었다.

사랑은 죄가 아니지만,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맞고 죽는 삶은 죄악이었다.

나는 앞으로도 싸울 것이다. 죽어 마땅한 자에게 그에 합당한 벌을 주기 위해!



작가의 말- 엔딩은 역시 소설입니다. 김미진이라는 여자의 등장조차 소설입니다. 사형은 구형 조차 되지 않았고 이 자는 이 재판에서 15년형을 선고받고 저번 달 출소 하였습니다. 어떤 보호관찰도 전자발찌 부착 명령도 없이 말입니다. 인권위는 말합니다. 이미 형을 다 채우고 나온 사람이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요. 그러나 이 자를 사랑한 사람, 이 자와 가까운 사람들은 모두 죽어야만 했습니다. 심리평가도 교화의 가능성이 없다고 봤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가 어떤 가면을 쓰고 사회에 돌아왔는지도 모른 채 함께 살아가야 할까요? 그렇다면 우리의 인권은 보장받는 겁니까? 최소한의 살 권리는 보장받을 수 있습니까? 그의 나이 만 69세 이제 나이가 많아서 범죄를 저지르기 힘들 거라고요? 보성 어부 살인사건을 기억하십니까? 같은 나이었습니다. 폭력이 습관이고 일상인 이 자가 과연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저 바랍니다. 교화되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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