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 온도 40도였던 여름날
2024년 여름은 너무나도 더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인류가 살아갈 날들의 여름 중에서는 가장 시원한 여름일 것이라는 - 지구 온난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지표 같았던 그 여름날. 체감 온도가 40도에 이르는 그날, 나는 일본에 있었다. 그것도 사방이 물로 둘러싸여 습도까지 높고 길에 건물도 사람도 없어 그늘 하나 없는 조그만 섬 테시마에.
테시마에는 섬의 양쪽 끝에 보트가 다니는 작은 항구가 두 개 있고 테시마 미술관과 심장소리 아카이브라는 체험형 미술관이 두 개가 있다. 문제는 두 항구 중 이 미술관들과 멀리 떨어져 있는 항구 쪽에 그나마 식당들이 몇 개 위치하고 있으나, 섬 안의 유일한 대중교통수단은 배차 간격 2시간(배차 간격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여러 대의 차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 존재하는 유일한 버스가 섬을 한 바퀴 돌고 좀 쉬고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2시간인지라)인 버스 1대에다 택시도 단 한 대, 그 외에는 걷거나 자전거를 빌려 타는 수밖에 없는데 더운 여름날 그 어느 것도 만만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테시마 미술관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에 가기로 했다. 걸어서 5분 거리.
테시마 미술관에서 나와 5분 정도 도로를 따라 걸어올라 가면 아오이소라라고 하는 고전적인 이름의 식당이 있다. 식당이라 할 수 있을까…? 원래 섬 주민인 식당 주인 할머니 할아버지의 본업은 무화과 농장을 가꾸는 것. 무화과 밭 옆에 조그만 파밭을 일구고 말 그대로 다 쓰러져 가는 오두막 주방에서 열심히 국수를 삶아 주신다. 실내 좌석은 없다. 주방 외엔 모두 야외에 엉성하게 놓인 나무 벤치에 엉거주춤 앉는 수밖에.
이 집의 메뉴는 단일 메뉴다. 간장 국물을 자박하게 부은 소면과 몇 가지 야채와 간장이 들어간 솥밥. 그리고 무화과밭에서 직접 딴 무화과와 우유를 갈아 만든 셰이크가 나오는 세트. 파밭에서 파는 직접 잘라와서 소면에 넣어 먹으면 된다.
테시마에 미술관을 지을 때 이런 사람도 몇 없는 섬에 미술관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지어진 미술관은 그림이 한 점도 걸리지 않고 심지어 지붕에 커다란 구멍이 두 개가 뚫린 하얀 건물이라 어리둥절했다는 할아버지. 이 무화과 밭에서는 테시마 미술관이 바로 내려다 보인다.
근처에는 미술관 말고는 에어컨이 나오는 건물도, 아니, 햇빛을 피할 수 있을만한 건물도 단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국수를 먹고 식당의 차양이 만들어내는 그늘에 의지하여 낮잠을 한숨씩 잘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적응이 되었는지 가끔씩 바람이 불면 너무나 시원했고, 신선한 무화과의 향이 공기를 한 번씩 흔들고 지나갔다. 이렇게 많은 무화과나무에 둘러싸여 있어 본 적이 있었던지.
오랫동안 잊고 있던 여름을 다시 만난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