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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종해 Apr 18. 2017

우리가 쌓아올린 벽




몇 년 전 서울에서 살고 있는 어린 시절 시골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벌써 20년은 더 지났습니다.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지고, 다른 우여곡절 속에서 살다가 

주름이 생긴 어른이 되어서 떡볶이 집에서 사이다 대신 고기집에서 소주를 마실 뿐, 

서로의 손을 잡고 대화를 나누며 장난을 치는 순간 다시 우리는 어린 시절의 꼬마들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꼭 보고 싶었던 친구 k가 있었습니다.









당시 전학을 온 k는 또래 아이들보다 더 성숙했습니다. 콧수염이 자라 있었고, 덩치도 훨씬 컸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힘이 약하다고 괴롭히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약한 아이들에게 먼저 다가가서 금세 그들을 미소짓게 했습니다. 

그리고 춤을 아주 잘 추었습니다. 쉬는 시간만 되면 교실 뒤에서 춤을 추었고, 

아이들은 박수를 치거나 k에게 춤을 배웠습니다.


그런 k를 20년 만에 만났습니다.

그런데 술자리에서 아이들에게 던지듯 말을 내뱉습니다.

“나 커밍아웃했어.”

처음 듣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게 충격적인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그가 그동안 이 말을 꺼내기까지 얼마나 힘들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나는 남자들이 좋았어. 너흰 몰랐겠지만, 

숨기고 살아오다가 나이가 들어서 내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결심이 들었지. 

그리고 지금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고 있어.”

k는 종로에서 작은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고, 놀러오면 머리를 만져주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초등학교 때처럼 나에게 장난을 걸어옵니다.

“너도 잘 생각해봐! 너도 만만치 않아! 우리 과에 가까운 것 같은데?”

“무슨 소리? 난 여자가 더 좋아!”

우린 웃고 넘겼지만, 생각해보면 농담 중에 나는 강한 부정의 반응을 내비친 것을 느낍니다.









가끔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우연한 기회에 만난 누군가에게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대부분은 말을 합니다.

“넌 참 행복하게 살고 있구나.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사니까 말이야.”

“멋진 직업을 가지셨군요!”

반면에 부모님과 가족들은 지금까지 저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대부분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누군가에게는 허용되지만 나에게만은 허용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나의 아이가 ‘미술을 하겠다, 음악을 하겠다, 연기를 하겠다, 글을 쓰겠다’고 하면 대부분의 부모들은 가난하고, 배고픈 직업을 왜 선택하느냐고 극구 말리지요.

그리고 성공확률이 희박하고, 고생길이 훤한 직업이라고 얼음장을 놓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다른 예술가들을 만나면 말합니다.

멋진 직업을 가지셨군요. 저도 한때 그림을 좀 그렸었는데, 음악을 좀 했었는데...

하지만 우리아이에게만은 허용할 수 없겠군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속에 꼭 품고 사는 것이 있습니다.

선입관입니다.

외모, 직업, 인종, 국가, 지역, 남녀, 노소...

많이 열린사회가 되었지만, 우리의 시선은 여전히 선입관의 벽을 깨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게 갈등과 충돌을 야기 시키고 있지요.









중고서점에서 오늘은 무슨 책이 나왔을까 하고 둘러봅니다.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표지와 제목이 저의 시선을 끌어 첫 몇 페이지를 읽습니다.

도서관에서 책 대신 사람을 대출한다는 기발한 이야기가 나를 끌어당깁니다.

“<리빙 라이브러리>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대화하고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서로 잘 알지 못해 가질 수밖에 없었던 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관, 고정관념을 줄이자는 의도로 기획된 행사였다.......... 

‘도서목록’에는 기대했던 것처럼 다양한 인간 군상이 진열되어 있었다. 

전직 노숙자,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정신병 환자...”

책을 펼치는 순간 눈을 떼지 못합니다.

사회 소수자들을 이해하는 것보다 그들에게서 배우는 게 더 많은 책이었습니다.









어른 된 우리는 자신의 서글픈 현실을 보여주면서도, 아이들에게 안전한 길, 모두가 가는 길만을 가라고 전합니다.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 아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묻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가 어른이 되면 또 자신의 아이에게 같은 말을 전할 것입니다. 

그것들이 쌓여 고층빌딩 숲 같은 벽들을 만듭니다.


그 벽들이 우리가 갈망하는 하늘을 막고, 내가 바라볼 길을 가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선입관의 대상들이 아니라 선입관으로부터 해방되지 못하는 우리들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편견, 선입관, 고정관념이라는 벽을 하나씩 쌓고 있는지 모릅니다.

“저 사람 봐! 공부 안하면 너도 저 사람처럼 될 거야.”

“그러니까 그 모양이지.”

“내 그럴 줄 알았어.”

“하나를 보면 열을 알지.”



2017. 4. 18.

-jeongjongha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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